▲ 잉붕어는 인위적으로 교잡해 생산한 중국산 어종으로 외래 병해충이나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이식이 금지돼 있다. | ||
인천 앞바다에서 발견된 토막 사체 사건 등 인천 해경이 해결한 숱한 강력·엽기 사건들을 뒤로하고 안 반장은 왜 하필 붕어 얘기를 꺼내든 것일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꼭 피를 흘리는 엽기 살인사건만이 ‘공공의 적’은 아니다. 환경은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환경이 망가지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사람 아닌가. 생물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진부한 얘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잉붕어 등의 무단 방출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우리 국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꼭 한번 거론하고 싶었다.”
주말마다 전국의 낚시터에는 ‘손맛’을 즐기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월척’을 낚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는 일도 이런 곳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몸집이 큰 물고기가 잘 잡힐수록 손님들이 몰려드는 탓에 낚시터에서도 낚싯감에 적잖이 신경을 쓰게 마련. 실제로 허리가 휘청할 정도로 큰 월척이 잘 잡히기로 소문난 유명 낚시터들은 불황이 없을 정도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국내 유료 낚시터에서 최고 인기 어종은 ‘잉붕어’였다. 낚시터 관계자들은 “잉붕어는 저항하는 힘이 커서 손맛이 좋다는 점과 입맛이 까다롭지 않아 입질이 잘 된다는 점 때문에 베테랑 낚시꾼들은 물론 초보자나 여성, 어린이 조사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고 말했다. 머리가 긴 데다가 밝은 황금색을 띠고 있는 잉붕어는 낚싯대에 걸려 올라오는 순간 시각적으로도 낚시꾼들에게 최고의 만족감을 준다는 것. 그래서인지 ‘잉붕어 다량 방출’ 같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영업을 하는 낚시터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 잉붕어는 중국에서 잉어와 붕어를 교배해 만들어낸 잡종. 그렇다면 중국산 잉붕어는 과연 무엇이 문제인 걸까.
안 반장이 잉붕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6년 4월경 해양 관련 기획수사를 진행하던 중 낚시광인 고향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뜻밖의 얘기를 듣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국내 낚시터에 방류된 어종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산 잉붕어인데 사람들은 낚은 잉붕어를 식용으로 쓰지 않고 다시 낚시터나 인근 하천 등에 방류하고 있으며, 낚시터 측에서도 낚시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잉붕어들을 인근 하천이나 저수지로 유출시킨다는 것이었다.
안 반장은 “잉붕어는 육질이 약하고 기름기가 많아 한국인 식성에는 맞지 않아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일반 붕어에 비해 손맛이 좋아 낚시객들에게 낚시용으로만 선호되고 있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며 “문제는 잉붕어가 식용 용도로만 수입이 가능하고 낚시터 반입은 금지돼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안 반장팀이 국립수산과학원과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에 자문을 구한 결과 “1998년 향어의 가두리 양식이 금지된 이후 수입되기 시작한 잉붕어는 전량이 식용으로만 수입되며 낚시터 등에 이식용으로 사용되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잉붕어는 왜 이식용으로 금지되고 있는 것일까. 안 반장은 “이식수산물 승인기관에 확인한 결과 잉붕어는 중국에서 잉어와 붕어를 인위적으로 교잡하여 생산한 변형 어종”이라며 “외래 어종 유입과 외래 병해충, 바이러스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잉붕어의 이식을 금지하고 있다. 잉붕어의 국내 이식시 토종 어류와 교잡하여 또 다른 변종 어종이 생산되고 그럴 경우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해경의 확인 결과 2002년부터 2006년 4월까지 인천항을 통해 수입된 잉붕어는 무려 5700톤에 달했다. 안 반장은 잉붕어가 낚시터 등에서 불법으로 이식되고 있는 정황을 잡기 위해 지난해 4월 중순부터 경기도와 인천지역의 낚시터와 건강원 등을 상대로 잉붕어 유통 과정을 추적해나갔다. 하지만 수사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어지는 안 반장의 이야기.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되자 잉붕어 수입업체에서는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수입상 대표를 붙잡고 잉붕어의 불법유통으로 인한 폐해와 수사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토종 붕어는 가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성어가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월척을 원하는 낚시꾼들의 입맛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먹고 살려는데 왜 이러냐’며 항의하는데 정말 난감하더라.”
▲ 충북 영동군 황간면 하천에 유출된 잉붕어로 피부병 때문에 움직임이 거의 없다. | ||
수입업자들을 상대로 한 수사가 난관에 봉착하자 안 반장은 낚시터에 낚시꾼으로 위장해 잠입함으로써 잉붕어가 유통되는 시스템을 파악하고 공급업자를 역추적하는 방식으로 수사방법을 바꿨다고 한다. 안 반장은 해당 지역에서 영업하고 있는 낚시터 현황을 파악하여 수사관들을 파견, 낚시터에 잉붕어가 이식되는 과정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다.
“해당 지역 낚시터에 배치된 수사관들이 수십 일 동안 잠복근무를 하고 현장 채증을 실시해 불법 행위를 포착하고 증거를 확보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잉붕어는 당초 수입용도인 식용으로 판매되지 않고 이식용으로 불법 공급되고 있었다.”
문제는 잉붕어가 낚시터에 이식용으로 유입되는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잉붕어가 생태계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생각지 않고 눈앞의 이윤만 좇는 비도덕적인 낚시터 관리자로 인해 다량의 잉붕어가 하천 등으로 유출되고 있었다. 현장 확인 결과 충북 영동군의 하천에까지 피부병 등으로 인해 움직일 수 없게 된 잉붕어가 다량으로 유출되어 서식 중인 사실이 드러났다.”
잉붕어는 낚시터에 무단으로 방류할 경우 수산 질병의 전파와 생태계 파괴의 우려를 안고 있었다. 시민들이 방생한 이 같은 외래 어종이 토종 물고기를 잡아먹고 대량 번식해 생태계를 교란시킬 우려도 다분했다. 잉붕어를 사용하는 불법 낚시터가 서울과 수도권 인근에만도 250곳이 넘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국내 하천에 토종 어종이 사라지고 붕어도 잉어도 아닌 정체불명의 대형 물고기가 활개치고 다닌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실제로 방류된 잉붕어들의 상당수가 병이 든 상태로 곳곳에 서식하고 있는 상황이 목격됐다. 잉붕어 자체가 생태계에 미치는 악영향도 있지만 교잡종 잉붕어가 토종 붕어와 섞일 경우에는 심각한 유전자 교란이 일어날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 유입된 외래어종인 블루길과 베스에 의한 하천 생태계 파괴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 잉붕어 불법 이식 및 잉붕어의 무단 방류는 하천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을 안겨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생태지뢰’였던 셈이다. 또 낚시터에서 사용된 후 방류된 병든 잉붕어를 모르고 식용으로 사용했을 경우 발생할 파장 또한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안 반장은 그간 확보한 증거를 토대로 잉붕어를 수입하는 업자의 사무실과 수산물 보세창고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해 거래처 명함과 거래장부, 보세창고 출입차량 명부와 사업거래 내역이 적힌 메모지 등을 입수했다. 결국 안 반장팀은 5개월에 걸친 기획 수사 끝에 지난해 8월 11일 중국산 잉붕어를 수입해 국내 낚시터 등에 팔아 온 수입업자 이 아무개 씨(50) 등 세 명에 대해 관세법 위반 및 수산물품질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이 검거되기까지 1년 동안 수입한 잉붕어는 1700여톤으로 무려 67억여 원어치에 달한다는 것이 해경 관계자의 말이다. 조사 결과 이 씨 등은 식용으로 위장해 잉붕어를 들여올 경우 통관절차가 쉽고 국내 낚시터의 수요상 단기간에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 전문적으로 잉붕어를 유통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잉붕어는 국내 낚시객들의 기호에 맞춰 중국에서 특별 양식된 것으로 토종 어종에 비해 성장속도가 월등히 빠를 뿐 아니라 몸집이 2~3배가량 크기 때문에 낚시터 업자들에게도 환영을 받았다는 것.
“실제로 일반 붕어가 20㎝가량까지 성장하는 데 5년에서 10년이 걸리는 반면 인위적인 교잡으로 탄생한 잉붕어는 2~3년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심지어 40㎝가 넘는 것도 수두룩했다. 낚시터 업주들은 큰 이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토종 어종이 아닌 값싸고 생명력이 강한 중국산 잉붕어를 들여놨다. 너도나도 잉붕어를 사용하는 탓에 수요가 급증했고 수입상들이 잉붕어를 대량으로 불법 유통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식용으로 사용되지도 않는 중국산 잉붕어가 ‘식용’으로 수입된 데에는 통관절차상의 ‘용이함’도 한몫했다는 것이 해경 관계자의 지적. 식용으로 수입될 때에는 전염병 등의 복잡한 검사과정을 거치지 않고 육안검사를 거쳐 단 하루 만에 통관되기 때문에 업자들이 편법으로 식용으로 들여오고 있었던 것.
안 반장은 “잉붕어를 수입해 이식용으로 팔아온 이들은 당장 눈앞에 이윤에만 관심이 있을 뿐 생태계의 질서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었다”면서 “대체 2세들에게 뭘 물려주려는 건지 모르겠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