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광주행 기차 안에서. | ||
“나하고 둘이서 세상을 바꾸어 봅시다.”
노 대통령과 염 의원의 첫 인연은 지난 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지난 93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는 염 의원이 직접 나서서 노 대통령을 돕기도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이 ‘대망’을 품으면서부터 이들의 관계가 급속도로 끈끈해졌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전언.
2000년 노 대통령은 염 의원에게 대선캠프의 좌장격인 ‘자치경영연구원’ 사무총장을 맡아주길 요청했다. 이를 수락한 염 의원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 2001년 노무현 캠프에 합류해 이광재·안희정 등 386 참모들과 함께 대선 가도에 나섰다. 지난 92년부터 95년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청년조직인 ‘연청’ 사무총장을 맡았을 만큼 ‘조직의 귀재’로 불리는 그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특히 염 의원은 2002년 초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노풍’의 진원지였던 광주지역에서 노 후보가 1등에 오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진은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와 함께 광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것이다. 염 의원은 “이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며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속이 상하거나 마음이 울적할 때는 염 의원과 통음하기도 하기도 했다. 당시 염 의원은 자신이 가진 신용카드가 모두 거래정지가 될 정도로 뛰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