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경매팅’ 사기극을 벌인 이들 일당은 박 아무개 씨(여·49)와 그의 두 아들 장 아무개 씨 형제(27, 23세)를 포함한 14명.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해 6월부터 유명 채팅 사이트를 통해 경매팅에 참여할 남성들을 모집한 후 박 씨가 운영하던 호프집에서 성매매를 미끼로 한 여성 경매를 벌여 ‘낙찰가’로 1억여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일당은 남자회원을 유인하는 유인책, 경매가 이루어질 때 낙찰 호가를 높이는 바람잡이 역, ‘노예’ 역을 맡을 여성들을 공급하는 공급책 등으로 각자 역할을 분담하고 합숙 생활까지 해왔다고 한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4월 6일 노예경매팅이 벌어지는 현장을 급습해 사기단 전원을 검거하고 박 씨 등 3명에 대해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서울의 한 호프집에서 벌어진 ‘노예경매팅’ 사기극 속으로 들어가보자.
주범 격인 박 아무개 씨는 장성한 아들들과 함께 지난해부터 구로공단 인근에서 호프집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다소 한적한 위치에 자리 잡은 호프집은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 특별한 직업이 없던 아들들은 호프집이나마 잘되게 하려고 갖가지 사업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러던 중 인터넷세대답게 채팅 사이트를 이용해 남성 손님들을 끌어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이들은 며칠 후부터 세이클럽, 한게임, 버디버디 등 유명 사이트에 ‘단체미팅, 구로공단 PM 8시’라는 제목의 채팅방을 만들어 채팅방에 들어오는 남성들을 상대로 경매를 통해 ‘짝짓기’를 해준다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미모의 여성들과 레크리에이션도 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경매로 사서 달콤한 밤을 즐길 수 있다며 남성들을 모은 다음 자신들의 호프집으로 유인했던 것.
처음에 이들은 알고 지내던 한 여성을 통해 주변 동생들을 동원하는 식으로 ‘경매녀’를 조달했다. 그러다 ‘사업 규모’가 점점 커지자 채팅방 등을 통해 대놓고 경매녀들을 모집했고 이들 여성에겐 노예경매팅 1회당 4만 원가량의 사례비를 지급했다. 마침내 이들은 ‘뉴 페이스’에겐 웃돈을 얹어주고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소개하는 식으로 30명이 넘는 경매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노예경매팅은 매일 밤 한두 차례씩 5~10명의 단체미팅 형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자기소개, 개인기 자랑 등으로 어색함을 풀고 각종 스킨십을 유도하는 러브게임으로 은밀한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여성들을 차례로 경매에 부쳐 짝을 짓는 방식이었다. 경매녀들은 “뜨겁고 멋진 밤을 함께 보내길 기대한다”는 등의 멘트로 성매매를 은근히 암시했다. 실제로 성매매를 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경매 분위기를 띄우고 경매가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경매는 대개 여성의 외모가 뛰어난 순서대로 진행됐다고 한다. 인기 있는 여성이라야 첫 경매가가 높이 책정되고 다음 경매 때도 그 영향을 받아 적정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노예경매팅이 인기를 끌자 이들 일당은 채팅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대학생 등 20대 청년들을 ‘팀원’으로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전문적으로 사회를 보게 하거나 손님인 척 늦게 참석해 경매가 진행될 때 낙찰 호가를 높이는 바람잡이 역할 등을 맡겼다. 특히 바람잡이들은 경매에 선뜻 나서지 않는 남자 손님들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몇만 원씩을 먼저 ‘베팅’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매녀를 사이에 두고 남성들 사이에 경쟁의식이 슬슬 발동되기 시작하면 점차 금액을 높여 부르고 경매 막판에 이르러 꼬리를 내리는 식으로 최대 50만~60만 원까지 경매가를 부풀렸다.
이들 일당은 ‘최종 선택은 여성이 직접 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바람잡이가 만약 최고 호가를 부를 경우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그 바로 밑 호가를 부른 남성을 경매녀가 지목하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움직였다. 이런 내막도 모르고 경쟁자를 제치고 경매녀를 ‘산’ 남성들은 호기롭게 카드를 긁거나 현금 다발을 내밀었고 이는 고스란히 박 씨 모자의 수입이 되었다.
늘상 경매는 경매녀의 숫자와 비슷한 횟수만큼 진행되었으나 실제 경매로 짝이 지어지는 것은 하루 평균 5건 꼴이었다고 한다. 매번 최소 5만~10만 원, 최대 60만 원가량의 경매 수익이 생겼다고 하니 박 씨 모자로서는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해왔던 셈이다.
낙찰된 경매녀들은 ‘주인’이 된 남성들과 호프집에서 나온 다음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집에 급히 가봐야 한다”는 등 핑계를 대고 가짜 휴대전화번호를 남긴 채 사라졌다. 간혹 남성 파트너가 마음에 들 경우 함께 2차로 술을 마시기도 했지만 남성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그 이상이었을 터. 하지만 경매녀들은 술을 함께 마시다가도 적당한 때가 되면 결국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 이런 식으로 이들 사기단은 지난해 6월부터 4월 초까지 카드 매출로만 1억여 원을 챙겼다.
이들 일당은 그동안 합숙까지 하며 사기를 ‘기획’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 씨의 아들들이 거주하고 있던 신림동의 한 오피스텔이 바로 이들의 요새였다. 이곳은 사기단의 고정 맴버들과 경매녀들이 ‘영업’을 마치고 모이거나 숙식을 해결하는 장소 등으로 활용됐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 중에는 미성년자를 갓 넘긴 ‘막내’도 있었는데 막내는 온종일 채팅을 하며 호객행위를 해왔다고 한다. 다른 팀원들도 낮에는 대개 호객행위에 동원됐다고. 경찰이 급습했을 때 오피스텔에는 노트북을 비롯한 컴퓨터가 8대나 가동되고 있었다고 하니 이들의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였을지 쉽게 짐작이 간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피해 남성들은 주로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군인, 대학생, 은행원, 일반 회사원 등이었는데 이들 중에는 부모나 가족 명의의 카드로 몇십만 원씩 결제한 남성들도 꽤 된다고 한다. 또한 카드가 없는 대학생이나 휴가 나온 군인 들은 부모로부터 용돈으로 받은 현금 뭉치로 경매낙찰가를 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현금 수입까지 포함할 경우 박 씨 모자가 챙긴 실제 수익이 현재 파악된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카드 매출 기록 등을 토대로 추정한 이번 사건 피해자의 수는 200여 명. 그런데 뜻밖에도 이들 가운데 피해를 당했다며 사전에 경찰에 신고를 한 남성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대개의 남성들이 나중에는 노예경매팅이 사기임을 알았지만 5만 원 정도의 비교적 적은 피해 금액은 ‘술 잘 먹은 값’으로 쳤고 큰돈을 냈더라도 성매매를 기대했던 자신들에 대한 반성(?)의 의미인지 대개는 그저 잊어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덕분에 박 씨 모자는 지난 10개월 동안 한 장소에서 매일 밤 노예경매팅을 인기리에 치를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비로소 자신들이 피해자임을 자각하고 제보 전화를 해오는 남성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성매매를 전제로 한 노예경매팅이었다 보니 당당하게 피해를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현재 ‘사기 혐의’로 입건되었지만 성매매가 있었는지도 추가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유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