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범곤 사건이 실린 신문(왼쪽)과 김동민 일병 뒷모습. | ||
‘건국 이래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으로 불리는 우 순경 사건은 내연녀와 심하게 다툰 우 순경이 술에 취해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 2정과 실탄 180발, 수류탄 7발을 들고 나오면서 시작됐다. 우 순경은 우체국에서 일하던 전화교환원을 살해해 외부와의 통신을 단절시킨 뒤 불이 켜져 있는 집마다 찾아다니며 미친 듯이 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우 순경은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광란의 총질을 계속하다가 다음날 새벽 한 농가에 숨어들어 수류탄으로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인근 4개 마을 주민 56명이 숨졌고 3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해자 중에는 생후 1주일 된 영아와 칠순이 넘은 할머니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경찰은 내연녀와 갈등을 빚던 우 순경이 술에 취해 동네사람들이 자신의 험담을 한다고 여기고 저지른 우발적 범행으로 사건을 결론지었다.
김동민 일병 사건은 최전방 군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던 김 일병이 일부 상급자의 언어폭력 등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살상극. 당시 GP(감시초소)에 투입됐던 김 일병이 ‘교대 근무자를 깨우러 간다’며 실탄 25발이 든 탄창 2개와 수류탄을 지니고 내무반으로 내려가면서 비극의 막이 올랐다. 다른 장병의 K1 소총을 집어 숨겨온 탄창을 끼운 김 일병은 내무반 침상에 수류탄을 투척한 뒤 건물 안에서 총기를 난사해 소초장 김종명 중위 등 8명을 살해하고 장병 4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김 일병은 실탄이 떨어지자 다시 GP로 돌아가 태연히 근무를 하기도 했으나 그가 다른 장병의 총기를 들고 있던 사실이 파악돼 체포됐다. 김 일병에겐 상관살해 등 7개 혐의로 보통·고등 군사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같은 다중살인이라도 김동민 일병 사건은 우 순경 사건과 적잖은 차이가 있다. 우 순경의 범행이 치정에 의한 우발적 성격을 띠었다면 김 일병의 그것은 피해의식과 복수심에서 빚어진 계획적 살인의 모습을 지녔다. 일부 네티즌들은 김 일병이 부대에서 외톨이처럼 지냈고 상급자(주류 사회)에 대한 불만이 컸으며 깊은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서 버지니아 공대 학살의 장본인 조승희 씨와 유사한 성향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