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력 7팀 조동희 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8개월여 동안 수십 명의 부녀자들을 유린한 ‘두 얼굴의 전도사’에 대한 것이다. 전도사의 신분으로 같은 교회의 교역자를 성폭행한 사실만도 충격적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수사 결과 밝혀진 그의 꼬리를 문 강도강간 행각이었다.
조 팀장은 “피의자는 낮에는 전도사로, 밤에는 강간범으로 철저한 이중생활을 영위해온 인물로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 할 만큼 치밀했다. 이번 사건을 되짚어봄으로써 날로 급증하는 성폭행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한다”고 밝혔다.
영하를 밑도는 강추위가 이어지던 지난해 12월 22일, 한 대형 교회가 운영하는 경기도 파주의 유명 기도원에 느닷없이 한 무리의 강력반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기도원에 중범죄자가 은신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밤새 기도원 내에서 무슨 사건이라도 터진 것일까. 갑작스러운 형사들의 ‘출현’에 신도들은 잔뜩 긴장했다.
잠시 후 기도원에 있던 사람들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은밀하게 눈짓을 교환하던 형사들이 접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이 교회 소속 교육전도사 M 씨(32)였다. 기도원에서 숙식하며 사역활동을 담당해오던 M 씨가 전도사 가운을 입은 채 형사들에게 연행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M 씨의 혐의가 ‘강간’이라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조 팀장에 따르면 수사팀이 희대의 강도강간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부터. M 씨의 행각이 꼬리를 잡히기까지는 대략 7개월여가 걸렸다고 한다. 다음은 조 팀장의 얘기.
“당시 관내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흉흉한 성폭행 소문 때문에 연일 심기가 불편했다. 수많은 강도강간 사건을 다룬 경험을 토대로 범인의 윤곽을 그려보려 했지만 무성한 소문과 달리 정작 접수된 피해건수는 단 몇 건에 불과했다. 피해자들은 경황이 없어 사건 당시의 정황이나 범인의 인상착의 등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무엇보다 피해자들은 ‘수치심’ 때문에 형사들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진술을 꺼리기 일쑤였다. 관내를 휘젓고 다닌다는 강간범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신중히 내사에 나섰지만 접수된 사건 기록만으로 범인을 특징짓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수사팀이 몇몇 피해자에게서 가까스로 얻어낸 정보들을 종합해볼 때 일련의 강간 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엇비슷한 수법 이외에 다른 단서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12월 중순께 한 여성으로부터 강간 피해 신고가 들어왔다. 서울의 한 교회에 소속된 여성 교역자 A 씨가 교회 사무실에서 몹쓸 짓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A 씨가 화를 입은 것은 12월 10일 새벽 4시 40분경. 교회 교육자실에서 홀로 남아 야간업무를 보고 있던 A 씨 앞에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나 입을 막고 흉기를 들이대며 위협,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조 팀장의 설명.
“A 씨는 죽을힘을 다해 반항했지만 작정하고 덤벼드는 남자를 막을 수 없었다. 남자는 반항하는 A 씨를 무려 1시간 반 동안이나 폭행하며 강제로 유린했다. 이날 폭행으로 A 씨는 턱뼈가 나가는 등 안면부위를 크게 다쳐 수개월 동안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해를 입었다.”
성스러운 교회 안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사건. 하지만 당사자인 A 씨에게 이날 사건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비밀’일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피해자였지만 행여 소문이라도 날까 전전긍긍해야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혼자 속앓이를 해오던 A 씨는 결국 용기를 내 경찰을 찾게 됐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A 씨는 범인이 교회에서 ‘전도사님’으로 불리던 M 씨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A 씨의 용기는 수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정보 부족으로 답보상태에 머물던 수사에 물꼬를 트게 된 것이다. 수사팀은 A 씨 사건 범인의 DNA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보냈고 그 결과 지난해 10월과 11월에 발생한 두 건의 강간사건 범인과 DNA가 일치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조 팀장의 추측대로 범인은 초범이 아닌 상습범이 틀림없었다.
수사팀은 동일수법 전과자를 상대로 용의자를 좁혀나갔고 그 결과 이미 강도강간 전과가 있던 M 씨가 주요 용의자로 떠오르게 됐다. 그런데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M 씨가 A 씨와 같은 교회에 소속된 전도사였다는 점이다. 서울과 경기도 파주 기도원에 번갈아 머물던 M 씨는 자신이 소속된 교회 사역자로 근무하는 A 씨를 상대로 몹쓸 짓을 벌였던 것.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더욱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졌다. A 씨 사건으로 인해 M 씨의 엽기적인 강도강간 행적이 줄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음은 조 팀장의 설명.
“A 씨 사건을 포함해 총 3건의 혐의가 밝혀졌지만 우리는 수법이 비슷한 미해결 사건들이 남아 있다는 점을 주목했다. M 씨의 여죄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수사를 계속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달쯤 지나서 국과수에 추가로 의뢰한 유전자 감식결과가 나왔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이전에 이태원과 마포 용강동을 비롯, 경기도 파주 일대에서 발생했던 6건의 강간사건 역시 M 씨의 소행으로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드러난 M 씨의 범행이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M 씨는 다른 사건에 대해선 무조건 범행을 부인했다고 한다. 다시 조 팀장의 얘기.
“M 씨는 무조건 입을 닫았다. 심지어 꼬박 하루 동안은 묵비권을 행사해 수사팀의 애를 먹이기도 했다. 우리는 M 씨를 일단 A 씨 건으로 구속시켰다. 그 후에도 우리는 구치소로 찾아가서 추가범행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M 씨는 ‘모른다’ ‘할 말 없다’로 일관했다. 무려 세 번을 찾아갔지만 M 씨는 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모든 정황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해라. 난 모르는 일이다’라고 잡아떼는데 참 답답하더라.”
그러던 중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1월 중순께 수사팀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다. 발신인은 바로 M 씨였다.
“M 씨는 자필로 쓴 서신을 통해 ‘자백하겠다.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털고 가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간 형사들의 추궁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던 M 씨가 갑작스런 심경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M 씨의 자백과 그간의 수사결과를 종합해볼 때 M 씨의 범행은 6~7개월간 20여 건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전도사’의 탈을 쓰고 수많은 부녀자들을 농락해온 M 씨는 대체 어떤 인물었을까.
M 씨는 편모슬하의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알려진다. 16세 때엔 3명의 여성을 강간한 혐의(특수강간)로 15년을 복역, 2005년 8월 출소했다. 사회적응이 쉽지 않은 장기수들에 비해 M 씨는 복역 당시 기독교에 귀의해 성경공부를 한 것을 계기로 출소 후 유명 교회가 운영하는 신학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교육전도사’라는 신분으로 착실히 교역활동을 해온 M 씨는 과오를 털어버리고 완전히 새사람이 된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개과천선은 몇 개월 지속되지 못했다. M 씨는 범행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또 다시 ‘강간범’으로 전락하고 만다. 국과수 감식결과로 확인된 M 씨의 첫 범행시기는 지난 2006년 10월이지만 수사팀은 M 씨가 출소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지난해 5월경부터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있다.
“M 씨가 추가로 자백한 건을 합하면 범행 건수는 20~30여 건에 달하는데 피해자의 진술 거부 등으로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더 있을 것으로 본다. 범행을 했다는 피의자의 자백이 있는데도 피해자가 나서지 않는 거다. 피해자를 기껏 찾아내면 ‘그런 일 없다’고 하거나 무조건 피하더라. 피의자는 맞다고 하는데 정작 피해자는 아니라고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드러난 범행만으로도 M 씨는 분명 위험한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수사팀을 더욱 경악하게 만든 것은 M 씨가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은 이중생활을 해왔다는 점이다.
“M 씨는 자신의 전력을 감추고 출소 후 신학대학교에 등록해 다니고 있었다. 교회 측에 따르면 M 씨는 착실하게 맡은 사역을 담당해왔다고 한다. 말쑥하고 준수한 외모에 말수도 적고 성실해 교인들로부터 평판이 좋았다는 것이다. 인상 좋고 얌전해 보이는 M 씨가 부녀자들을 상대로 그렇게 파렴치한 행각을 벌이고 다닐 거라고는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에서도 M 씨의 전력이나 실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따로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채용시 구체적인 신원조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정황을 잡은 형사들이 파주의 기도원으로 검거하러 갔을 때도 M 씨는 태연히 사역활동을 하고 있었다.”
낮에는 전도사로 성실한 생활을 했던 M 씨였지만 밤이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곤 했다. M 씨는 주로 기도원에 머물며 사역을 담당해왔는데 늦은 밤이면 교회를 빠져나와 방범이 삼엄하지 않은 다세대주택이나 침입하기 쉬운 집을 골라 범행을 저질러온 것으로 밝혀졌다.
“M 씨는 새벽시간대 여성들만 있는 집에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는데 집안에 남자가 있으면 그냥 나오거나 강간은 포기하고 돈만 훔쳐나오곤 했다. 하지만 여성들만 있을 경우에는 달랐다. M 씨는 수건으로 복면을 하고 집안 부엌에 있는 흉기로 위협해가며 무차별적인 강간행각을 벌였다. M 씨는 열네 살짜리 소녀부터 일흔이 넘는 노인까지 그야말로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욕정을 푸는 대상으로 삼았는데 심지어 모녀를 차례로 강간하기도했다. 그뿐이 아니다. M 씨는 한 번 범행을 했던 여성의 집에 며칠 후 또다시 들러 강간을 하는 엽기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 여자가 자꾸 생각나서…’라는 M 씨의 말에 수사팀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면 M 씨가 이토록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의 첫 범행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수사팀의 견해다. 다음은 조 팀장의 설명.
“강간범에게 특별한 이유가 있겠는가.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본인도 자세히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조사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추측해볼 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더라. 우선 그가 16세라는 나이에 특수강간으로 15년간이나 복역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창 성적 호기심과 욕망에 들끓을 나이에 장기 수감생활을 했으니 M 씨로서는 보통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M 씨는 평탄치 않은 가정에서 자랐지만 사회에 대한 이렇다 할 적개심이나 큰 불만은 없는 인물이었다. 장기 수감으로 인해 여성을 제대로 사귀어보거나 결혼생활을 해본 적도 없기에 여성에 대한 증오심도 있을 리 없었다. M 씨는 성적 욕구를 정상적으로 분출할 길이 없었던 인물로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성적 욕망이 비뚤어진 방법으로 분출된 것 같다. 또 성적 정체성이 미처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기에 강간을 저지른 것으로 보아 그는 정상적이고 건전한 성의식이 부재한 인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조 팀장은 M 씨의 범행이 오랫동안 갇혀 지냈던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M 씨는 보통 성범죄자나 장기출소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왔다는 점에서 분명 독특한 인물이다. M 씨의 범행을 분석해보면 단지 성욕해소 차원에서 범행을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중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범행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 모녀를 차례로 강간한 점 등으로 볼 때 M 씨는 이미 범행의 맛에 젖어 있던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회에 특별한 불만이 없었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M 씨의 범행은 한창 혈기왕성한 20대를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데 대한 일종의 피해보상심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별다른 수입도 없던 M 씨로서는 강도강간 범행이 돈도 훔치고 성욕도 해결할 수 있는 적당한 범죄로 여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M 씨는 뒤늦게나마 ‘하나님 앞에서 죄를 털겠다’며 피해자들에게 참회의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특수강도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그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수향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