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인 나이트 클럽 사진으로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계없음. | ||
당시 사건은 단순 변사로 처리됐지만 약 한 달 만에 이면에 감춰진 ‘무서운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현장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한 베테랑 형사가 비밀리에 진행한 수사의 결실이었다. 이번에 서울 금천경찰서 강력2팀 주만수 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이것. 유흥비를 마련하고 빚을 갚기 위해 남편 명의로 거액의 보험을 든 뒤 남편을 살해한 ‘독부’에 대한 얘기다.
주 팀장은 “평범하던 주부가 돈 때문에 ‘남편 살인범’으로 전락한 과정을 보면서 더없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면서 사건의 뒤안길을 거슬러올라갔다.
“아내가 30년을 같이 산 남편을 상대로 수차례 살해를 시도하다가 결국 살해한 이 사건은 당시 우리 수사팀에게도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우리 바깥양반이 자살을 했어요!”
연일 30℃가 넘는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8월 7일 금천경찰서 강력반으로 다급한 사망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한 사람은 김 아무개 씨(여·56). 남편인 A 씨(당시 59세)가 오전에 갑자기 목을 매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A 씨가 자살을 했다는 것에 가족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주 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기억을 떠올렸다.
“보통 멀쩡하던 사람이 자살을 하거나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망했을 경우 유가족들이 먼저 이의를 제기하고 수사를 의뢰해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예외였다. 신고를 한 사람이 부인인 데다 가족 누구도 부검을 원치 않았다. 가족들이 원치 않는데 우리가 굳이 수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이 사건은 종종 발생하는 자살사건과 다름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 변사로 처리됐다.”
그러나 수많은 변사사건을 담당해왔던 주 팀장은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뭔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주 팀장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다른 사건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지만 결국 주 팀장은 이 사건을 다시 검토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주 팀장은 현장 기록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의문들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음은 주 팀장의 얘기.
“사람이 죽으면 119나 경찰에 먼저 신고하는 것이 보통인데 아내 김 씨는 경찰에 신고하기에 앞서 장례식장에 전화를 걸었더라. 남편이 갑자기 자살을 한 급박한 상황에서 일부러 장례식장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또 발견 당시 A 씨는 목욕탕에 너무도 반듯하게 엎어져 있었다. 마치 사망 후 목욕탕으로 옮긴 듯한 냄새가 났다. 결정적으로 ‘타살’에 대한 심증을 굳힌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분명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하는데 자살에 사용한 끈이 보이지 않는 거였다. 집안을 아무리 뒤져봐도 끈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미스터리였다.”
가장 큰 의문은 A 씨가 자살을 한 이유였다. 수사팀은 우선 죽은 A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A 씨의 성격이나 신상, 최근 근황 등에 대해 탐문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A 씨가 자살할 만한 이유를 들을 수는 없었다. 운전 기사로 일하고 있던 A 씨는 평소 얌전한 성격으로 일만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술을 좋아했지만 밖에서 소주 한잔을 하지 않고 집에서 마실 정도로 알뜰하고 성실한 생활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A 씨가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 더욱 의문을 품은 수사팀은 우선 아내 김 씨에 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김 씨가 2004년 4월부터 최근까지 남편 명의로 총액 2억 4000만 원 상당의 종신보험 6개에 가입해 둔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의 전력을 알아보니 보험회사에서 설계사로 근무한 경험도 있었다. 따라서 김 씨가 보험 약관을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금융조회를 해보니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빚도 있더라. 남편 A 씨의 성격상 본인이 직접 그렇게 많은 종신보험에 가입했을 리가 없었다. 또 김 씨가 지고 있는 채무관계도 소심한 남편이 모르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뭔가 희미하게나마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수사팀은 김 씨와 자녀들을 상대로 의문점에 대해 조사를 했다. 하지만 이들은 펄쩍 뛰며 타살 의혹을 부인했다고 한다. 주 팀장의 얘기.
“수사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진행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타살 의혹에 대해 너무도 완강히 반발했다. 그래서 나는 김 씨에게 ‘끈이 어디 있느냐. 끈으로 목을 맸다고 했으니 끈이 있을 거 아니냐. 끈을 가져와봐라’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횡설수설하는 거다. 김 씨가 아무렇게나 둘러대는데 말의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았고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끈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은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갖고 범행 후 현장을 정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 이건 분명히 살인사건이다’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자녀들도 뒤늦게 어머니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아내 김 씨의 미심쩍은 행적은 금융조회에 이어 통신사실 조회에서도 속속 드러났다. 통화 내역을 조회해보니 사건 바로 전날과 당일 오전에 누군가와 자주 통화한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김 씨와 통화한 인물은 같은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B 씨(여·59)와 한 이웃 여인이었다. 주 팀장은 사망한 A 씨의 사체가 끌린 흔적도 없이 화장실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던 것으로 보아 범행에 가담한 공범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여자 혼자 힘으로 죽은 성인 남성을 흔적도 없이 옮기기란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수사팀은 우선 B 씨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일대에서 폐휴지를 주우며 빈곤하게 살고 있던 B 씨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B 씨는 ‘모르는 일’이라고 펄쩍 뛰며 부인했다. 하지만 김 씨와의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계속되는 수사팀의 추궁과 회유에 B 씨는 심경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다음은 주 팀장의 얘기.
“B 씨를 상대로 3시간 정도 설득을 계속하던 때였다. 갑자기 B 씨가 ‘앙!~’ 소리를 내며 우는 거다. 별 기대없이 B 씨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던 수사팀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B 씨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A 씨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부인 김 씨와 같이 양쪽에서 목졸라 같이 살해했다는 자백이었다.”
김 씨가 무려 3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온 ‘성실한 남편’을 살해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더구나 B 씨를 유력한 공범으로 추측하고 조사를 벌여온 수사팀이었지만 B 씨가 남의 남편을 살해하는 데 가담한 이유는 더욱 의문이었다.
B 씨의 자백과는 달리 부인 김 씨는 처음부터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정황은 자살이 아닌 타살을 가리키고 있었다. 게다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A 씨의 위에서는 다량의 수면제 성분이 발견됐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는지 김 씨는 힘겹게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밝혀진 사건의 정황은 이렇다.
세 살 터울의 남편과 부부의 연을 맺은 김 씨는 자녀를 키우며 30여 년간 평범한 주부로 살아왔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150만 원 정도의 넉넉하지 않은 수입으로 생활해왔지만 바르게 자라준 자녀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단란한 가정을 꾸려오던 김 씨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약 5년 전. 카바레에 드나들게 되면서부터였다. 간간이 보험설계사로 일하며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오던 김 씨는 소위 ‘춤바람’이 나면서부터 점점 가정에 소홀하게 된다. 다음은 주 팀장의 설명.
“김 씨는 한 달에도 수차례 카바레에 드나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성들이 카바레에 출입하려면 술값보다 ‘치장비’가 많이 든다는 거였다. 매번 미용실에 들러 화장을 하고 머리를 해야 하고, 옷도 괜찮은 걸로 입어야 하고…. 그 돈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돈도 빌리고. 수년간 이런 생활을 하다보니 남편 모르는 빚이 수천 만원에 달했다는 것이다. 빚은 늘어나는데 도저히 갚을 길은 없으니 결국 생각해낸 것이 자신이 보험설계사로 일하면서 익힌 약관이었다. 김 씨는 남편 모르게 여러 곳에 종신보험을 들어놓은 후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게 된다.”
그렇다면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던 B 씨가 이 무서운 범행에 가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사 결과 B 씨는 파란만장한 가정사를 겪어온 인물로 당시 재활용품을 팔아 월 15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간신히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오랜 세월 홀로 자식을 키우며 열심히 살아온 B 씨. 하지만 수십년간 죽자살자 모은 돈 2000만 원을 김 씨에게 빌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B 씨의 상환 독촉이 이어지자 김 씨는 ‘남편을 같이 없애자. 남편 앞으로 보험을 들어놨는데 보험금을 타서 빚을 갚겠다’는 말로 꾀었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처음 범행 제안을 받았을 때는 무서워서 안하려고 했다. 하지만 김 씨에게 빌려준 돈은 내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돈을 받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가담하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B 씨의 자백을 시작으로 속속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에 수사팀원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김 씨의 ‘남편 죽이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또 다른 범행 가담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의 범행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인물은 B 씨를 제외하고도 2명. 역시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던 박 아무개 씨(여·57)와 이 아무개 씨(여·46)가 그들이었다. 이들 역시 김 씨와 돈거래가 있었던 이들로, B 씨와 마찬가지로 ‘범행에 가담하면 보험금을 타서 나눠주겠다’는 김 씨의 제안에 응한 것으로 알려진다.
수년 전부터 남편 살해를 마음에 품고 있던 김 씨가 이들과 함께 ‘남편 죽이기’를 본격적으로 모의한 시기는 지난해 4월. 그러나 차마 직접 남편을 죽일 엄두를 내지 못했던 김 씨가 떠올린 첫 번째 방법은 청부살인이었다.
김 씨는 평소 이웃 박 씨와 알고 지내던 박 아무개 씨(43)에게 착수금 300만 원 등 수천만 원을 주고 남편 청부살해를 의뢰했다. 하지만 동네건달에 불과했던 박 씨는 ‘남편을 죽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돈만 갖고 잠적해버렸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거액만 날린 김 씨는 다급해졌다. 결국 김 씨는 직접 남편을 살해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김 씨는 이웃 박 씨가 구해온 독초를 한약에 타서 남편에게 먹였다. 예상대로라면 남편은 고통을 호소하다 사망해야 했지만 웬일인지 아무런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비슷한 시도를 했으나 남편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 씨의 범행은 멈출 줄 몰랐다. 자칫하면 남편이 눈치챌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오히려 범행수법이 갈수록 대담해졌다. 특히 김 씨의 ‘남편 죽이기’는 남편 A 씨가 살해된 바로 전날까지 시도됐던 것으로 밝혀져 수사팀을 경악케 만들었다. 김 씨는 범행 전날인 6일 오후 5시경 무려 수면제를 60알이나 탄 소주를 남편에게 먹여 살해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부살해와 독초, 수면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된 ‘나쁜 아내’의 집요한 범행은 결국 수면제를 먹고 깊이 잠이 든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하는 참극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살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