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내에서는 이주영 의원보다 유승민 의원을 더 위험한 원내대표 후보로 보고 있었다. 새정치연합 지도부에 속한 한 의원은 지난해 11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원내대표 선거에 유승민 이주영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유승민 의원이 조금 더 지지도가 높은 상황이다. 유 의원이 되면 우리(지도부)로서는 힘들다. 그는 신념 있는 보수로, 누구처럼 박근혜 대통령 말만 듣는 사람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친박 의원들과 달리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뜻을 같이하는 친박 지도부의 경우 야당이 각을 세우며 당 지지도를 올릴 수 있지만 혁신적인 여당 지도부가 등장하면 싸우지 못하고 끌려가는 형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유 원내대표가 당선된 후에도 감돌았다. 무엇보다 유 원내대표가 혁신적인 아젠다를 선점할 경우 차기 총선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전당대회 선거운동 중이던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당선을 축하한다. 우리가 할 말을 그분이 선점할 것”이라며 당대표 선거의 중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 측이 ‘경제민주화’,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하며 야당의 아젠다를 선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20대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여야 지도부간 아젠다 선점 싸움에서 밀릴 경우 그 영향이 그대로 선거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 지도부 관계자도 “지난해 여야 협상에서 우리는 법인세 2%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아예 불가능한 제안이 아니었는데도 여당 지도부가 정부의 지시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도통 통하지 않았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그들과 다르다. 증세 논란 속에서 법인세 인상 등 야당 아젠다를 선점당할 가능성도 있다”며 “지난 대선 당시 아젠다를 새누리당에 뺏기고 우리는 차별화를 위해 더 좌편향적으로 나아갔다. 그것이 중원을 잃은 원인이 됐는데 이번에도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야당에게 ‘위협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혁신적 아젠다를 실천할 당내 세력을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법인세 인상 등의 문제는 보수 세력의 기조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난항이 예고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증세는 최후에 할 일”이라며 선을 긋기도 했다. 유 원내대표의 혁신적 아젠다가 새누리당에 통할지는 미지수라는 얘기다. 김상진 뉴코리아정책연구소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야당에 유 원내대표가 불편한 존재인 것은 맞다. 그의 주장을 보면 야당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야당이 주장하고 싸울 수 있는 내용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다. 여야가 협상해 성과가 생기면 자기정치를 시작한 유 원내대표의 공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너무 혁신적으로 나아갈 경우 당내 반발이 만만찮을 것이다. 야당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지, 안 될지는 유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