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유승민 원내대표, 최경환 경제부총리.
현시점에선 유승민 원내대표가 앞서 있다. 박 대통령과의 거리, 맡은 직책을 떠나 TK 정서가 그렇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TK의 지지 철회가 커졌고 최 부총리는 동반 하락하는 모습이다.
TK의 다선 기초자치단체장은 “유 원내대표는 점수 딸 일이, 최 부총리는 잃을 일이 많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84 대 65의 득표에서도 나타났지만 증세를 두고 논란이 된 ‘거짓말 정부’를 두고 당내 의원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누구도 하지 못하던 말을 했고 당 소속 의원들과 당원, 국민의 분노를 어루만져줬다”며 “정치는 신뢰를 얻는 싸움인데 유승민은 얻고 있고 최경환은 잃고 있다”고 했다. TK에서 내로라하는 마당발인 그는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 세간의 평”이라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가 등장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정책에서도 최 부총리가 다소 꺾인 모습이다. 최 부총리는 ‘증세 없는 복지’라는 현 정부의 복지 기조를 꺾고 최근 “증세 여부와 적정 복지 수준에 대해 국회가 논의해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주면 정부는 이에 따르겠다”고 선회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연말부터 “있는 사람이 더 내는 방향에서 단계적으로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정치는 당과 국회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증세에 대해서만큼은 “따르겠다”며 최 부총리가 백기를 든 셈이다.
한 대구지역 의원실 관계자는 “경제에서만큼은 좌클릭하고 있는 유 원내대표와 단기부양책으로 상징되는 ‘초이노믹스’의 최 부총리는 건건이 부딪칠 일만 남았다. 이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지역 정치권에선 흥미롭게 보고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TK 의원들은 ‘유냐, 최냐’ 선택지를 들고 둘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유 원내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최 부총리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통상 둘 다 당내 경제통으로 불린다. 또 둘은 위스콘신대 경제학 박사로 ‘위스콘신 라인’에 속해 있고 동창회도 함께한다. 정치권에선 유 원내대표가 선배다. 지난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있던 유 원내대표를 여의도연구소장에 앉혔다. 2002년 이회창 대선 후보의 경제특보로 최 부총리가 영입됐다. 이 과정에서 유 원내대표의 천거가 있었다고 알려졌다. 그 뒤 박 대통령을 도운 부분은 같다.
하지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 대통령과의 거리에 괴리가 생긴다. 유 원내대표는 박근혜 당시 후보의 보좌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고(이는 후에 문고리 권력 3인방, 십상시 등 ‘인의 장막’의 서두였다),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과 당색 변경을 반대했다. 반면 대선전에서 최 부총리에 대해선 “자기 논밭 팔아가며 박 대통령을 도왔다”는 출처 불명의 말이 크게 회자했다. 둘은 공사석에서 라이벌 관계를 부정한다. 그런데 자의든 타의든 최근 둘의 견제나 신경전은 곳곳에서 포착됐다. 세 장면을 모아본다.
[장면#1] 지난 연말, 친박계 몇몇 의원들의 만찬이 있었다. 친박 핵심들이 빠지지 않고 모인 자리에서 원내대표 경선 이야기가 나왔다. 유 원내대표가 김무성 대표의 당 사무총장직을 고사하면서까지 올인하고 있다는 대화가 오갔고 최 부총리도 “잘 될 것이다. 돕겠다”는 등의 취지로 덕담을 건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완구 전 원내대표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면서 조기 경선에 돌입하자 여의도 정가에서 “박심을 팔아 BH(청와대)의 의중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 회자했다. 그 지휘자로 최 부총리가 거론됐다.
경선 막판, 의원들 사이에서 “유승민이 까칠하다. 뻣뻣하다”, “이주영 의원은 이번이 마지막인데 다음에 원내대표 해도 되는 유승민이 너무 서두른다”, “김무성 대표도 유승민을 마뜩찮아 한다” 등등의 품평이 확 돌았다. 그러면서 C, Y, K 등의 친박 의원 이름이 거론되며 친박이 조직적으로 ‘반유(승민)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장면#2] 요즘 TK 정치권은 ‘유 라인’과 ‘최 라인’을 구분한다. TK 맹주 자리를 두고 집합을 만드는 게 유행이다. 일부는 교집합에 속하며 철저히 이중생활(?)을 하는 모습이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TK 27명 의원 중 6표가 이주영-홍문종 조를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이 6명이 최 라인으로 분류되고 있다.
의원직을 겸하곤 있지만 최 부총리가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모습이 옳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국무회의 일정이 조정되면서 박심 논란도 일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친박에서는 한 표가 아쉬웠겠지만 특히 최경환 황우여 부총리가 경선장에 와 표를 행사한 것은 친박과 비박의 긴장 관계를 더욱 고착화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했다.
[장면#3]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최경환 당시 원내대표는 TK 지역 언론사 데스크와 만난 자리에서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대항할 후보로 새누리당 예비후보군(서상기 조원진 주성영 권영진 이재만 등)을 뺀 거물급 인사 투입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 거물급 차출론의 주인공으로 유 원내대표가 회자되면서 정치권에선 “TK에서 경쟁자인 유 의원을 광역단체장으로 보내고 본인이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흘러나왔다.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유 의원 측에선 상당히 불쾌해했다고 전해졌다.
정가에서 오가는 둘의 신경전은 최 부총리나 그 측근발로 유 원내대표를 향한 것이다. 유 원내대표는 2012년 대선 직후부터 정치적 칩거 상태로 국회 국방위원장 등 의정활동에만 전념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19대 국회 2기 원내대표 이후 엘리트 대로를 걷고 있다. 최 부총리가 원내대표를 역임할 당시 원내부대표단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데 그 건배사도 ‘최경환을 위하여’다. 정치적 함의가 듬뿍 담긴 의미심장한 건배사란 해석이 많다.
“식자층, 오피니언 리더그룹 등 소위 먹물들 사이에선 누가 거짓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탓하는지 알고 있다. 담뱃값을 올리면서 증세는 아니고, 연말정산을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세금 올린 것은 아니라는 정부에 분노를 넘어 치를 떤다. 특히 정치깨나 안다는 TK 당원들은 각자의 인연으로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진(문고리 3인방)을 잘 알고 있어서 실망이 훨씬 큰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 주변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둘에 대한 지지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시·도당 인사들이 지역 여론을 수렴해 내놓은 총평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TK는 최고권력 배출의 요람이었다. 박정희, 노태우, 전두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까지, TK가 뭉치면 정권이 교체됐고 재창출됐다. 80% 이상 투표율에 80% 이상 득표율을 뜻하는 ‘8080’이 유행했다. 이를 두고 ‘꼴통 TK’라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지만 정작 TK에선 그런 비난에 시샘과 질투가 녹아 있다고 우쭐해 한다.
지역주의 선거가 깨지지 않은 유일한 곳. TK가 옹립하면 큰 꿈을 꿀 수 있고 TK가 외면하면 꿈의 실현은 어려운 것이,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었다. 국회의원 물갈이 비율이 가장 높은 이유도 누굴 내세워도 당선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점지한 ‘포스트 박근혜’는 최 부총리에 가깝지만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있다. TK는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