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17대국회의원 당선자 연찬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전여옥 대변인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종현 기자
1979년 청와대를 나왔던 박 대통령은 1998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할 때까지 칩거하는 동안 아버지를 따랐던 수많은 측근들이 자신을 모른 체했던 것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섭섭함을 토로한 바 있다. 지난 2007년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읽어보면 배신과 관련된 박 대통령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내용 일부다.
“퍼스트레이디 대행으로 있는 동안 나는 나라 전체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권력의 상층부에 있었지만 아버지 사후에는 밑바닥까지 경험했다. 수많은 매도 속에 몇 년의 시간을 버티며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쓰디쓴 경험이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값진 교훈이었다.”
1993년 출간된 저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났더라면>에 실린 1989년 11월 3일자 일기에서도 박 대통령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소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친근감을 갖고 대하게 된다”고 기록했다.
1991년 2월 20일 일기에서는 “옛 사진을 정리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던 그들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이 한결같은 경우가 그야말로 드물었다. 지금의 내 주변도 몇 년 후 어찌 변해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허무하게만 느껴진다”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박 대통령 인사 스타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측근들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구조를 선호한다. 자연스레 인재 풀은 좁아들 수밖에 없고 ‘밀봉인사’로 일컬어지는 폐쇄적인 인선이 이뤄지게 된다. 현 정권 내내 인적 쇄신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문고리 권력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 역시 박 대통령 용인술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이 특정 참모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이들에게 과도한 힘이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정치 입문할 때부터 주변 관리에 각별히 공을 들였지만 배신을 피해갈 순 없었다. 이번에 취임하자마자 박 대통령을 향해 비수를 들이댄 유승민 원내대표와 비박계를 이끄는 김무성 대표 모두 한때는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원조 친박’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김 대표는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아 좌장 역할을 했다. 유 원내대표는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이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기도 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 박 대통령과 친박에 있어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한때 박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혔던 그는 지난 2012년 1월 <i 전여옥>에서 박근혜 후보에 대해 ‘대통령감이 아니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전 전 의원은 박 대통령과의 여러 일화를 소개하며 ‘인간미가 없다’, ‘비민주적이다’ 등과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비박’ 수준이 아니라 아예 ‘안티 박근혜’로 돌아섰던 것이다. 또 현 정부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진영 의원 역시 지금은 박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통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