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드물기는 하지만 스스로 경찰에 찾아와 과거의 범행사실을 털어놓는 이들도 있다. 피해자가 드러나지 않거나 아예 신고조차 되지 않아 경찰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들은 수사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 당연히 범인이 입을 다물고 있는 한 그 진실은 밝혀지기 어려운 셈이다. 하지만 완전범죄로 남을 뻔한 이러한 사건들이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던 범인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번에 익산경찰서 교통사고조사계 권영목 형사가 전하는 사건이 이러한 특이한 케이스다. 한 집안의 동생들이 친형을 살해한 뒤 21년 가까이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희대의 사건. 같은 경찰서 강력2팀에 근무할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권 형사는 “한 집안에 오랫동안 묵혀져 있던 형제간 갈등이 빚어낸 참극이었다”며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생전에 집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살해된 형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살인을 하게 된 동생들. 어찌 보면 그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사건이었다.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처벌은 면했지만 그간 피의자의 삶은 한마디로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법적 처벌보다 무서운 것은 양심이라는 것, 죄 짓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지난 2004년 12월 21일, 전북 익산경찰서에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며칠간 끼니조차 거른 듯 야위고 초췌한 얼굴이었다. 행색이 어찌나 남루한지 마치 노숙자를 방불케 했다.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형사과 주변을 서성거리던 이 남자는 익산시 동산동에 살던 C 씨(46세). 한참을 머뭇거리던 C 씨는 이내 결심한 듯 형사과로 들어갔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제가… 형을 죽였습니다.”
C 씨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을 담담하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C 씨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21년 전에 자신의 큰형을 둘째형과 함께 살해하고 사체를 암매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자수를 생각했지만 지금에서야 용기를 내어 경찰서를 찾게 됐다는 C 씨. 기나긴 세월 그가 가슴에 담아뒀던 비밀스러운 사연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C 씨의 큰형 A 씨(사망 당시 27세)는 6남매 중 맏이로 아버지가 없던 집안의 가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C 씨에 따르면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을 끌어가야 할 A 씨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존재였다고 한다. 이어지는 권 형사의 설명.
“A 씨는 한마디로 문제가 심한 인물이었다. 어릴 적부터 워낙 주먹이 세고 주먹질을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집에서도 아예 내놓은 자식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네에서도 ‘○○’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무슨 일이든 성질대로 되지 않으면 온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곤 했는데 특히 그가 술을 마신 날은 그야말로 온 집안에 ‘비상’이 걸리는 날이었다. A 씨는 자기 밑에 있는 남동생들에게 유독 심한 주사를 부렸다고 한다. C 씨와 C 씨의 둘째형은 아무 이유도 없이 맏형인 A 씨로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고 폭행을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거의 매일같이 이어지는 A 씨의 난동으로 집안은 한시도 잠잠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 간에 일어난 일인지라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이들 형제는 속만 끓여 왔다고 한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무려 10여 년 동안 계속된 큰형의 행패는 피를 나눈 가족들로서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A 씨는 20대가 된 후에도 자신의 ‘주먹’을 관리하지 못했다. 폭력 등의 혐의로 교도소를 밥 먹듯이 들락거리던 A 씨는 결국 젊은 나이에 전과 9범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형의 탈선을 참다 못한 C 씨 등은 A 씨에게 ‘새 삶을 살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A 씨가 동생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귀담아 들을 리 만무했다. 결국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지막지한 폭행뿐이었다. 철없는 형을 바라보는 동생들의 불만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그날’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권 형사의 설명.
“83년 2월 초순의 어느 날, 그날도 흥건히 술을 마시고 돌아온 A 씨는 잔뜩 취해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고 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참기 힘든 욕설과 폭행이 두 남동생들에게 가해졌다. 아무 이유도 없이 시작된 형의 폭행은 한 번 시작하면 몇 시간이나 이어졌던 것 같다. 이유 없는 폭행에도 이렇다 할 반항 한 번 못해보고 묵묵히 견뎌왔던 C 씨와 그의 둘째형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C 씨에 따르면 평소에도 A 씨의 망나니 같은 행동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긴 했지만 사전에 살인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자신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형을 본 순간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가 폭발하게 된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산다’고 뜻을 모은 두 동생은 약속이나 한 듯 A 씨에게 동시에 덤벼들었다는 것이다.”
A 씨가 아무리 힘이 세고 포악하다지만 건강한 청년 두 명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A 씨를 양쪽에서 제압한 두 동생은 홧김에 A 씨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형을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당시 C 씨의 나이는 22세, C 씨의 둘째형은 25세였다.
이들은 형의 사체를 집에서 50m쯤 떨어진 곳으로 옮겨 땅을 파고 묻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 두 형제는 굳게 손을 걸고 맹세한다. ‘이건 우리 둘이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다.’
이날 이들이 저지른 살인행각은 그로부터 무려 21년 동안 형의 사체와 함께 땅 속에 파묻히게 된다. 어떻게 이들의 범행이 그간 드러나지 않았을까. 이어지는 권 형사의 얘기.
“갑작스레 A 씨가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그의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던 탓인지 가족들조차 ‘또 가출했겠거니’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확인 결과 A 씨는 21년 동안 사망신고는커녕 가출신고조차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집에서 키우던 개가 사라져도 찾게 마련이거늘 A 씨의 행방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하지만 그간 C 씨네 집안 사정을 들어보니 어느 정도 이해도 가더라. A 씨가 오죽 자주 문제를 일으켰으면 가족들이 찾아볼 생각도 안 했을까 싶다. C 씨가 직접 말은 안 했지만 모두 ‘골칫덩어리 하나 사라졌다’는 식으로 오히려 안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나 싶었다. 즉 A 씨가 사라진 후 집안은 평화를 되찾았고 A 씨의 죽음에 대해 그 누구도 의혹을 갖지 않았던 셈이다.”
형제간에 벌어진 끔찍한 살인사건은 이렇게 ‘완전범죄’로 묻혔다. 하지만 두 형제의 삶은 생각처럼 편치 못했다. 다음은 권 형사의 설명.
“그날 이후 이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큰형만 없어지면 살만 하겠거니’ 싶었던 건 이들의 엄청난 착각이었다. C 씨 형제에겐 그날의 악몽이 매일같이 되살아났다. 또 자신들의 범행이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더욱 끔찍한 것은 사건 이후 A 씨가 이들의 꿈에 매일같이 나타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죽은 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C 씨와 둘째형은 매일밤 계속되는 지독한 악몽으로 발을 뻗고 잘 수 없었으며 일상생활 중에도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제로 C 씨는 ‘숨통을 조여오는 죄책감에 그동안 단 하루도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특히 마음이 약했던 C 씨의 둘째형은 서른 중반이 될 때까지 가정을 이룰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거의 폐인 같은 삶을 살아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C 씨의 둘째형은 날로 심해지는 죄책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나머지 지난 1994년께 형을 살해했던 그 집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만다.
둘째형이 자살하자 C 씨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유일한 공범인 둘째형이 곁에 없다는 것은 C 씨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다. C 씨가 털어놓은 그간의 생활은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다음은 권 형사의 설명.
“C 씨는 숨을 쉬고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둘째형과는 달리 결혼을 하고 자식까지 낳았지만 ‘살인자’라는 비밀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이 계속됐다. 특히 둘째형이 자살한 후에는 환각증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형이 매일 밤마다 나타나니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게다가 환청까지 들리니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환각증세가 얼마나 심했던지 실제로 C 씨는 단 하루도 술 없이는 잠을 청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 제대로 끼니조차 챙겨먹지 않은 상태에서 매일 술로 연명을 하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생계는 뒤로하고 매일 술만 마시는데 어느 여자가 버티겠는가. 결국 C 씨의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가출해 가정마저 풍비박산이 나고 만다.”
가까스로 꾸린 가정마저 잃게 되자 C 씨는 폐인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게 된다. C 씨는 간간이 막노동을 하면서 폐가에서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끼니는 매일 라면과 술이었다.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해버린 C 씨에게는 아무런 삶의 의욕도 없었다. C 씨의 뇌리 속에는 21년 전 그날의 기억들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견디다 못한 C 씨는 결국 자수를 결심하게 된다.
“‘범행을 털어놓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오게 됐다’고 하더라. 경찰서에 찾아왔을 때 C 씨의 심신은 이미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또 21년 동안 가슴 깊이 담아둔 엄청난 비밀과 그것으로 인한 죄책감, 형의 원혼이 복수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인해 그는 사실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환상과 환청에 시달린 탓에 C 씨는 정상적인 사고도 어려운 상태였다. 형제간에 일어난 끔찍한 살인사건이 결국 범행 당사자들이 자살을 하거나 폐인이 되어버리는 등 한 집안 전체의 비극으로 막을 내린 셈이다.”
C 씨의 자백을 토대로 형사들은 사체를 암매장했다는 곳으로 가서 사체발굴을 시도했다. 그 결과 그곳에서는 옷이 입혀진 백골 상태의 유골이 나왔다. 21년 만에 자수한 C 씨는 살인혐의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됨에 따라 조사 후 귀가조치됐다. 그러나 아마도 C 씨의 ‘양심의 시효’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게 권 형사의 얘기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