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행에 사용된 무쏘 차량. 청부업자 안 씨는 피해자의 시신을 실은 채 차를 낭떠러지로 밀어 교통사고로 위장했다. | ||
경찰 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장 씨의 남편 A 씨가 죽을 경우 받게 될 보험금 5억 원을 노리고 한 달간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했다고 한다. 이들의 살인청부를 받고 직접 A 씨를 살해한 안 씨 역시 9월 1일 이미 살인 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상태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비교적 평탄한 가정을 꾸려왔던 장 씨가 이렇게 끔찍한 보험 청부살인극을 저지르게 된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단지 보험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곡절이 있었던 걸까. 그 비극의 시나리오를 파헤쳐봤다.
사건은 초등학교 동창인 장 씨와 이 씨가 2005년 여름에 열린 한 동창모임에서 30여 년 만에 재회하면서 시작된다. 학창시절엔 그저 얼굴만 아는 사이였지만 성인이 된 후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이후 두 사람은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만날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당시 장 씨는 결혼을 해 1남 1녀를 두고 있었지만 이 씨는 미혼 상태였다.
두 사람의 만남이 거듭되면서 이들의 ‘우정’은 어느 순간 ‘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주부였던 장 씨는 가정을 지키려 이 씨를 멀리하려고도 했지만 이미 이 씨에게 너무나 깊게 빠져 버린 후였다. 장 씨는 남편 A 씨가 일하러 나가면 어김없이 이 씨를 만나 사랑을 나눴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언제나 불안하기만 했다. 언제 발각될지 모르는 불륜관계였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장 씨에게 아예 A 씨와 이혼하고 자신과 새로운 삶을 살자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씨의 끈질긴 구애에 장 씨는 흔들리게 됐고 결국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한다. 그래서 A 씨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A 씨는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둘의 만남을 한순간의 불장난 정도로 여겼던 A 씨는 아내가 곧 가정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그것은 A 씨의 착각에 불과했다. 장 씨는 더욱 이 씨에게 빠져들어 가정까지 소홀히 했고 이 씨는 이 씨 나름대로 장 씨에게 이혼을 재촉하며 새 가정을 꿈꿨다.
그러나 A 씨가 쉽게 이혼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장 씨와 이 씨는 ‘특단의 대책’을 세우기로 한다. 그때 우연히 이 씨는 장 씨의 남편 A 씨가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장 씨로부터 듣게 된다. 당시 사업을 준비 중이던 이 씨는 결국 돈도 얻고 사랑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A 씨를 죽이는 것뿐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이미 ‘사랑’에 눈멀었던 장 씨도 남편을 죽이자는 이 씨의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만약 A 씨를 죽이는 데 성공하면 아무 장애 없이 둘이 같이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액의 보험금도 챙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살해 계획은 2007년 6월 초 더 구체화됐다. 일단 A 씨를 살해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하기로 마음먹은 그들은 자신들이 일을 직접 처리하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를 것을 우려해 범행을 대신할 사람을 찾았다. 이 씨는 인터넷을 이용해 ‘킬러’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무엇이든 도와 드립니다’라는 글을 보게 됐다. 바로 이 사건의 또 다른 피의자인 안 씨가 올린 글이었다.
이 씨와 안 씨는 6월 25일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의 한 커피숍에서 조우했다. 이곳에서 A 씨를 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작성된다. 안 씨는 이 씨에게 A 씨를 살해하는 대가로 1억 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씨가 난색을 표하자 8000만 원으로 ‘가격’을 내렸고 이 씨도 이를 받아들였다.
착수금 200만 원으로 범행준비를 마친 안 씨는 7월 4일 저녁 장 씨를 찾아가 A 씨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물에 타 마시게 하라며 가루로 된 수면제를 건네줬다. 경찰에 따르면 수면제의 양은 치사량에 가까울 만큼 많았다고 한다. 장 씨는 안 씨가 건네 준 수면제를 미리 건강음료에 타놓고 A 씨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시각 안 씨는 장 씨의 아파트 근처에서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장 씨와 안 씨 사이에서 연락을 맡은 이는 다름 아닌 내연남 이 씨였다. 이 씨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대구의 한 여관에 머물면서 집 안의 상황을 장 씨로부터 보고받아 안 씨에게 시시각각 알려주었다. 이때 이 씨는 혹시 나중에 자신이 의심받을 가능성을 감안해 안 씨로 하여금 휴대전화가 아닌 공중전화를 이용해 자신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게 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이기도 했다.
살인극의 희생자인 남편 A 씨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시각은 이날 밤 9시께. 장 씨는 A 씨가 오기 무섭게 건강음료를 건네주며 마시기를 권했다. 오랜만에 살갑게 구는 아내를 보며 A 씨는 아무 의심 없이 음료를 마셨다. 많은 양의 수면제가 들어간 음료를 마신 A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졌다.
안 씨는 사체를 넣을 대형 가방 등을 들고 장 씨의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A 씨가 자고 있던 방으로 들어간 안 씨는 미리 준비해간 야구방망이를 꺼내들었다. 차마 남편이 죽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던지 장 씨는 방 밖으로 나갔다. 안 씨는 이불로 A 씨의 온몸을 감싼 후 사정없이 방망이로 내리쳤다. 이미 치사량의 수면제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A 씨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A 씨의 목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안 씨는 A 씨의 사체를 대형 가방에 넣어 자신이 타고 온 무쏘 차량으로 옮겨 실었다. 그런 후 A 씨의 시신을 가방에서 꺼내 차량 조수석에 눕혔다. 안 씨는 이 차를 미리 봐둔 국도변 낭떠러지로 몰고 갔다. 계획한 대로 이번 사건을 교통사고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그 자리에서 이 씨는 차를 경사진 곳 아래로 밀었다. 장 씨와 이 씨, 안 씨가 A 씨를 살해하기 위해 작성한 시나리오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안 씨는 이 씨로부터 600만 원을 현찰로 받았다. 나머지 7200만 원은 보험금을 타고 난 후 받기로 약속된 상태였다.
이날 아침 7시쯤 성주경찰서에는 한 건의 교통사고가 접수됐다. 한 차량이 길가에 전복된 것을 인근 주민들이 발견해 신고한 것이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일반 교통사고로 보기엔 석연찮은 점들을 발견했다. 조수석에 혼자 시신이 눕혀진 채 있었을 뿐 아니라 머리 뒷부분에 심한 상처가 있었던 것. 경찰은 시신에 대한 부검을 의뢰했다. 그 결과 사체의 위에서 다량의 수면제가 검출됐을 뿐만 아니라 온몸에 가격당한 흔적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경찰은 즉시 숨진 A 씨의 주변인물에 대한 탐문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던 중 A 씨의 부인 장 씨가 2년 전부터 다른 남자와 불륜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남편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이 가입돼 있는 것도 드러났다. 경찰은 여러 정황상 장 씨와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하고 둘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것은 맞지만 A 씨가 죽은 것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또 조사 결과 이들의 알리바이도 확실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날 장 씨는 집에 있었고 이 씨는 대구에 있었던 것이 확인된 것. 특히 장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방에서 자고 있는 줄알았다. 언제 나가서 그런 봉변을 당했느냐’라며 오히려 울먹이기까지 했다.
수사에 난항을 겪던 경찰은 차량이 발견된 곳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전화기지국에서 사건이 발생한 날 그곳에서 이뤄졌던 모든 통화내역을 입수해 조사하던 중 그 날 새벽 그곳에서 서울로 전화를 건 내역이 나왔다. 확인해보니 전화를 받은 곳은 택시회사였다.
늦은 새벽에 외진 곳에서 서울의 택시를 부른 것에 의문을 느낀 경찰은 즉시 그 휴대전화의 주인인 안 씨를 찾아냈다. 또 안 씨의 통화내역을 조사한 결과 장 씨의 내연남인 이 씨와 두 달 전부터 계속 통화를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안 씨의 범죄기록을 조회해본 결과 절도 혐의로 한 차례 감옥에 들어갔었다는 것도 밝혀냈다. 이때부터 수사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안 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하던 경찰은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사건이 발생한 5일 오전 안 씨의 계좌로 누군가로부터 600만 원이 입금된 사실이 확인된 것. 이것은 내연남 이 씨가 4일 자신의 계좌에서 인출한 금액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안 씨를 용의자로 확신한 경찰은 9월 1일 오후에 안 씨를 그의 집 앞에서 체포해 연행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안 씨는 경찰이 계속 정황 증거를 들이대며 추궁하자 결국 범행을 시인했고 장 씨와 이 씨가 시켰다는 자백을 하기에 이른다. 경찰은 안 씨가 체포된 다음날인 2일 12시쯤 장 씨와 이 씨를 살인 및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했다.
그러나 장 씨와 이 씨는 먼저 붙잡힌 안 씨를 보고서도 범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히려 두 사람은 유치장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A 씨가 죽고 난 후 거의 매일 만나며 사랑을 나눠 주위의 눈총을 받았다고 한다. 또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보험사에 제출하기 위한 사망확인증을 써달라고 경찰 측에 끊임없이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번 수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조신해 보이는 장 씨가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는 쉽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지 하루도 안 돼 내연남과 태연히 데이트를 즐겼다는 것에 섬뜩함마저 느꼈다”라고 밝히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관계자는 “살인을 청부받은 안 씨의 범행 수법이 너무 잔인하고 대담해 전문 킬러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안 씨가 추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그의 DNA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해놓은 상태다. 아직 풀리지 않은 사건들에서 발견된 DNA와 비교해 볼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