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7일 새벽 12시 20분경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라에 거주하는 여성으로부터 경찰에 다급한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이 동네엔 유흥업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탓에 다른 지역에 비해 새벽시간대 유동인구가 많았으며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다세대 가구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 특성상 관할 지구대에는 다툼을 벌이는 당사자들이 시비를 가리기 위해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가 종종 걸려오곤 했다.
하룻밤에도 수십 통씩 걸려오는 신고전화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전화 한 통이 크나큰 참극을 막기도 하고 또 숨겨질 뻔한 사건이 드러나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이번에 서울 강남경찰서 지능1팀 김맹호 반장이 전하는 사건 또한 이웃집의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한 주민의 신고로 인해 꼬리를 밟히게 된 잔혹 살인극이다. 투자금 문제로 불만을 품은 두 직원이 회사 경영진 두 명을 연달아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끔찍한 사건이었다. 이들의 엽기행각은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정확한 상황 판단과 민첩한 대처로 인해 그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강남경찰서 역삼지구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김 반장은 “형식적으로 현장을 둘러보고 철수했더라면 살인범들을 눈앞에 두고 놓치는 우를 범할 뻔했다. 경찰로서의 직감과 상황판단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 사건이었다. 현장에서 범인들을 검거했다는 사실 외에도 추가 피해자를 막았다는 사실에 더욱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사건 당일 정황에 대한 김 반장의 설명.
“지구대에 돌아와서 교대 준비를 하고 있는데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받고 막상 출동해보면 술김에 취객 간에 시비가 벌어졌다거나 단순폭력 사건일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에도 보나마나 단순폭력사건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신고를 받은 이상 묵인할 수는 없었다. 즉시 문제의 장소인 역삼동의 ○○빌라 3층으로 출동했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리는커녕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사방이 조용한 게 아닌가.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집 안에서는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문을 두드렸는데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빌라 주변을 살펴봤지만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나는 신고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이 집이 맞느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인가’라고 재확인을 요청했다. 신고자는 ‘분명히 그 집이 맞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남자들끼리 당장 무슨 일이라도 낼 것처럼 싸우고 있었다. 단순히 시끄럽다고 해서 신고를 했겠느냐’고 말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불과 10여 분 사이였는데 모든 상황은 신고내용과는 너무도 달랐다. 이어지는 김 반장의 설명.
“아무 문제점이 확인되지 않은 터라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단순한 싸움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뒀다가는 뭔 일이 날 것 같다’는 신고자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신고가 또 들어올 것 같더라. 나는 이왕 온 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확실히 매듭을 짓기로 했다.”
특히 좀 전까지 이웃집에서 신고를 할 만큼 생난리를 치던 집에서 아무 인기척이 없다는 점과 불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이상했다. 불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집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김 반장은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무려 40분 동안이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도대체 집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급기야 사이렌을 울리고 마이크로 방송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119에 문을 열어달라는 협조요청까지 했다. 그래도 집 안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때 한밤중의 소동에 놀란 빌라 주인이 내려왔고 김 반장은 주인의 협조를 얻어 문을 열고 문제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거실과 방으로 이뤄진 집이었는데 회사 사무실로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집 안에는 건장한 체격의 청년 두 명이 있었다. 그렇게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던 이들이 멀뚱하게 서 있더라. ‘이 사람들이 장난치나’ 하는 생각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씩씩거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죄송합니다. 좀 싸웠습니다. 그냥 가세요’라고 하더라. 정말 심하게 싸운 듯 둘은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땀까지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신경이 쓰였는지 두 사람은 ‘우리끼리 좀 심하게 싸웠다’며 경찰을 무조건 돌려보내려고 했다.”
집 안에 있던 청년은 회사원 정 아무개 씨(31)와 강 아무개 씨(32)로 하나같이 다부진 체격이었다. 그런데 단순히 좀 크게 다퉜다는 이들의 눈빛은 왠지 불안해 보였다.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한 척했지만 거친 숨소리는 이들의 심리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또 두 사람의 안색이 좋지 않고 미세하게 어깨가 떨리는 것도 이상했다. 특히 방금 전까지 큰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기에는 집 안이 너무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무언가를 급히 수습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상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야밤에 경찰이 수십 분 동안 문을 두드리고 급한 마음에 신발도 벗지 않고 구둣발로 성큼성큼 집 안에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들의 신경은 온통 경찰이 들이닥쳤다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듯했다. 또 집 안에서는 처음 들어올 때부터 락스나 신나 같은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황을 좀 더 파악하기 위해 김 반장은 일단 둘 중 한 명인 정 씨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정 씨를 방에 앉혀놓고 차근차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좀 전의 상황에 대해 꼬치꼬치 묻자 정 씨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왜 싸웠냐’ ‘그렇게 심하게 싸운 이유가 뭐냐’고 물었는데도 정 씨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기만 했다. 다음은 김 반장의 설명.
“그때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곁눈으로 슬쩍슬쩍 방안을 둘러봤는데 저쪽 침대 밑에 무언가 있는 게 보였다. 뭔가를 급히 감추기 위해서 대충 침대 밑에 밀어 넣어둔 모양이었다. 나는 정 씨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대화를 이어가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팔이었던 거다. 일반인들이 보면 그게 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체를 수없이 봐온 경험상 그것은 분명 사람의 맨살이었고 팔 부분이었다. 순간 ‘아 벌써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이건 분명 살인사건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섣불리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김 반장과 다른 경찰관 한 명밖에 없었다. 자신들의 범행을 경찰이 알아챈 것을 이들이 알게 되는 순간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어지는 김 반장의 설명.
“‘이거 잘못하면 우리가 당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살인범이었다. 이미 살인을 저지른 이들이 경찰 두 명을 추가로 해치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상대는 건장한 청년들인 데다 흉기까지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또 여러 명이 모여 사는 빌라의 특성상 자칫 이들이 뛰쳐나가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무작정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정 씨가 돌변해 나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여러모로 다급한 상황이었다. 또 어떻게 하든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순간적으로 수없이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정 씨가 눈치 채지 못하게 한 뒤 갑자기 제압하는 수밖에 없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아무것도 못 본 채 태연히 행동하던 김 반장은 그만 돌아가려는 듯 슬쩍 일어났다. 등 뒤에서는 정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느껴졌다. 김 반장은 문을 열고 나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정 씨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 씨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이어지는 김 반장의 얘기.
“수갑을 채운 후 정 씨에게 ‘야, 너 왜 그랬어’라고 물었다. ‘왜 죽였어’도 아닌 ‘왜 그랬어’라고 물었는데 정 씨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고개를 숙이더라. 살인을 인정하는 표정이었다. 당시 나는 침대 밑에 있는 것이 진짜 사체인지 확인조차 안 한 상태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침대 밑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정 씨는 이미 내가 모든 것을 알았다고 판단한 듯했다.”
정 씨에 이어 거실에 있던 강 씨마저 체포한 김 반장은 강남경찰서 강력반에 상황보고를 했고 즉시 현장검증이 이뤄졌다. 아니나 다를까. 김 반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침대 밑에서는 죽은 남성의 사체가 나왔다. 침대 밑에 삐죽이 나와 있던 것은 김 반장의 판단대로 사람의 팔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사체 옆에서 뭔가가 가득 담긴 커다란 여행용 가방이 발견됐다. 무심코 가방을 열어본 형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채 가방에 들어 있던 것은 목이 절단된 중년 남성의 사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분씩 절단된 사체토막이 쏟아져 나왔다. 피가 흥건한 사체의 상태로 보아 범행이 이뤄진 지는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범행은 집 안에서 이뤄진 듯 화장실에서는 루미놀시험(화학약품을 이용한 혈흔 검사법) 결과 양성 반응이 나왔다. 집 안 전체에 풍기던 락스 냄새는 피 냄새를 지우기 위해 화장실을 청소하면서 밴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두 사람을 끔찍하게 살해한 까닭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정 씨와 강 씨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직장 동료로 밝혀졌다. 살해된 두 남성은 정 씨 등이 다니던 회사의 사장인 전 아무개 씨(당시 35세)와 본부장 이 아무개 씨(당시 41세)였다. 사건이 일어난 빌라는 본부장 이 씨가 사무실로 사용하기 위해 빌린 곳이었다.
사건은 회사 사장 전 씨와 피의자 정 씨의 악연에서 시작된다. 2004년 구치소에서 알게 된 두 사람은 나중에 사회로 나가면 사업을 같이 해보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출소 후 이들은 계획대로 뭉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자금이었다. 그간 전 씨를 큰형처럼 따랐던 정 씨는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등 간신히 5000만 원을 마련해 투자금 명목으로 전 씨에게 건넸다. 그러나 ‘사업’은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고 회사 사정은 점점 어려워졌다. 급기야 정 씨 등 직원들의 급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은 점점 심해졌다. 다음은 김 반장의 설명.
“사건 당일인 9월 5일 새벽 정 씨는 본부장 이 씨와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사장이 돈을 갚지 않아 빚 독촉에 시달리느라 힘들어 죽겠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씨의 반응은 냉담했나 보더라. 오히려 이 씨는 ‘회사 사정이 어렵다. 네가 투자한 것이니 돈 받을 생각 마라. 너도 곧 퇴출될 거다’라고 말했다는 거다. 어렵게 끌어 모은 거금을 투자했던 정 씨는 본부장 이 씨가 노골적으로 사장 편을 들자 격노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고향으로 내려가 다른 일자리나 알아보라’는 이 씨의 말은 정 씨의 눈을 뒤집히게 만들었다. 심하게 싸우던 중 정 씨는 이 씨의 목을 조르고 흉기로 찔러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다툼 끝에 벌어진 우발적인 살인이었다. 피를 본 정 씨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장 급한 것은 사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정 씨는 사체를 화장실로 끌고 가 토막을 내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정 씨는 피살자의 신원을 감추기 위해 사체의 손가락 일부를 도려내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장 상사를 살해한 자신의 범행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생각 끝에 정 씨는 평소 절친했던 직장동료 강 씨를 불러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강 씨 역시 정 씨와 마찬가지 처지로 회사 경영진에 대해 원한이 컸던 상태였다. 수습책을 의논하던 두 사람은 우선 쓰레기봉투에 본부장의 사체를 담고 이 봉투를 여행용 가방에 넣어 침대 밑에 숨겨두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범행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급기야 이들은 본부장의 ‘실종’을 제일 먼저 알아챌 수 있는 사장마저 해치우기로 결심한다. 이왕 일이 이렇게 커진 마당이니 사장까지 처리하고 남은 돈이라도 되찾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날 밤 11시 50분경 이들은 사장 전 씨를 사무실로 불러냈다. 본부장이 살해됐다는 것을 알 리 없던 전 씨는 아무 의심 없이 사무실로 왔다. 이들은 전 씨를 앉혀놓고 돈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전 씨 역시 본부장의 반응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전 씨는 ‘돈 없다. 난 모르니 니들이 알아서 해라’며 발뺌을 했다.
사장 전 씨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정 씨 등은 전 씨와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된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이들은 미리 준비해 둔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전 씨를 기절시킨 후 컴퓨터 선으로 목을 졸라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김 반장이 들이닥쳤을 때 이들은 사체들을 유기할 방법을 논의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수십 분간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것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경찰이 출동한 것을 알고 ‘친구끼리 싸움을 했다’고 급하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미처 감추지 못한 사장의 사체를 침대 밑으로 밀어넣어 두었던 거다. 집 안에 진동하던 냄새는 피 냄새를 없애기 위해 뿌린 락스 냄새였다.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나름대로 완벽하게 뒷정리를 했다고 생각했겠지만 경찰인 내가 볼 때엔 모든 것이 왠지 어설펐다. 특히 안절부절못하고 긴장하는 기색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결국 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 씨와 강 씨는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