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장동 대통령’ 강 아무개 씨가 탈세와 횡령혐의로 구속됐다. 그가 27년간 장기집권한 마장동 축산물시장 내부. | ||
서울 우시장 일대에서 소위 ‘마장동 대통령’으로 불렸던 강 아무개 씨(66)가 바로 그 장본인. 성동경찰서는 지난 9월 11일 마장동 우시장 내에 있는 ‘서울특별시 식육부산물 납세조합’의 조합장 강 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횡령) 및 조세범처벌법(탈세)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정 아무개 씨(65) 등 납세조합 직원 4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조합원들의 매입매출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해 탈세를 일삼고 거액의 조합비를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강 씨는 27년간 조합장으로 재직하면서 3000여 개의 점포로 구성된 국내 최대의 축산물 유통시장인 마장동 우시장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한 사람이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까. 또 과연 어떤 방법으로 거액의 돈을 빼돌렸던 것일까.
지난 8월 30일 성동경찰서 지능범죄 수사1팀으로 한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세무사라고 밝힌 익명의 제보자는 “억울합니다. 제가 ○○ 납세조합에 취업을 요청하러 갔더니 3억 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그곳뿐만 아니라 다른 상당수 납세조합에서 일하는 세무사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조합장에게 하수인 취급을 받고 있더라고요”라며 경찰관에게 하소연했다.
경찰은 혹시 이와 비슷한 일이 관할 구역에 있는 마장동 우시장에서도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경찰은 놀라운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우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모든 매매의 계산서를 상인이 아닌 조합에서 발행하고 있었던 것.
이러한 사실은 조합 사무실에 있던 수많은 매출전표양식과 컴퓨터 등을 확인하면서 드러났다. 조합 사무실에선 상인들의 개인 도장과 상호명이 적힌 스탬프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즉 조합 관계자들이 매출전표를 직접 수기로 작성하거나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로 작성한 후 자신들이 보관 중인 도장과 고무인 등을 날인하는 방법으로 허위 매출전표를 작성했던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납세조합은 상인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매출전표)를 가지고 세금을 책정해 납부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1980년에 재정경제부가 조세를 공평히 과세하고 성실납부를 유도하고자 납세의무자가 20명 이상만 되면 비영리단체인 납세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인가하고 조합원은 세무서가 아닌 이 조합을 통해 세금을 납부토록 한 것에 근거한다. 즉 소상공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세금징수가 어려우니 대표기관을 정해 납세를 대신토록 한 것이다. 이 같은 배경 아래 마장동 우시장의 ‘식육부산물 납세조합’도 1980년에 설립됐고 같은 해에 강 씨는 선거를 통해 초대 조합장에 선출됐던 것이다.
경찰은 조합장 강 씨가 허위 매출전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장기간 돈을 착복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수사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강 씨는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 동안 무려 187억 원의 허위 매출전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그 이전의 기록은 찾을 수 없어 조사하지 못했지만 납세조합이 이렇게 임의로 매출전표를 작성한 것은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관행일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임직원은 모두 5명인데 이들은 조합 설립 초기부터 장기간(조합장 27년, 전무 27년, 과장들 20년, 경리 15년) 세무 업무를 맡아오면서 세금 문제에 정통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조합 측은 자신들이 허위로 만든 매출전표를 토대로 상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조합원들은 주민세, 소득세, 원천징수세, 세무사의 기장료 등이 포함된 ‘적립금’을 매월 조합에 납부해야 했다. 적립금은 상점의 크기나 매출 규모에 따라서 그 금액이 매번 달라져야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항상 일정했다. 이미 조합 측에서 자체적으로 맞춰 놓았던 매출액에 따라 세금이 책정됐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5년에 월 2만 원을 납부한 조합원은 2006년에도 실적과는 상관없이 매월 2만 원을 납부해야 했다.
경찰이 조합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결과 ‘조합카드’라는 것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조합원들의 개인 신상뿐 아니라 각 조합원이 운영하는 점포에서 내야 할 세금 액수도 같이 기재돼 있었다. 즉 이미 각 조합원이 내야 할 적립금 액수는 사전에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상인들은 한 달에 1만~3만 원 정도 부과되는 적립금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었다. 일단 세무신고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령 세무에 대해 안다고 해도 직접 신고하는 것이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조합을 통해 내는 것이 세금을 보다 적게 내는 방법이라고 판단한 탓도 컸다.
경찰에 따르면 조합장 강 씨는 소득세법에 따라 주민세 및 소득세를 납부할 필요가 없는 ‘1년 매출 7000만 원 이하’의 영세 상인들에 대해서도 이러한 사실을 숨긴 채 적립금을 부과해왔다.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점포는 납세조합에 가입돼 있는 960여 개의 점포 중 400여 개로 추산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들은 애초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는 상인들이었지만 강 씨는 허위 매출전표를 작성해 이들에게서도 세금을 거둬들인 것이었다. 물론 이들이 낸 금액은 고스란히 강 씨 등의 몫이었다.
이렇게 해서 조합 측이 모은 적립금이 2006년 한 해에만 약 21억 원에 달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 금액 중 5억~6억 원가량이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올 것을 알았던 강 씨는 차명계좌를 만들어 놓고 적립금에서 미리 일정액을 빼내 그것을 계좌에 넣어두고 마음대로 사용했다.
강 씨의 비리는 이것뿐이 아니었다. 국세청은 세금업무를 처리하는 납세조합에 한 해 총 세금납부액의 8%를 납세조합의 운영비 등의 명목으로 환급해줬다. 또 특별히 납세조합공제라는 것을 만들어서 일정액의 세액을 공제해왔다. 이러한 환급액과 공제액은 조합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제외하고는 세금을 납부한 조합원들에게 돌려주는 게 원칙. 하지만 이 돈은 대부분 강 씨가 따로 만들어 놓은 제2의 차명계좌로 들어갔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적립금의 일부를 환급받은 상인은 17명에 불과했다.
강 씨가 20년 넘게 조합 내부를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돈줄’을 혼자서 틀어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강 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두 개의 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으로 그야말로 ‘돈 파티’를 벌였다. 경찰 조사에서 강 씨는 “나를 포함해 직원들 모두 생활이 어렵다. 영세상인들 세금 거둬서 빼돌리면 얼마나 빼돌렸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 씨는 현재 강변에 위치한 H 아파트 171.6㎡형(52평형·시가 11억 원)에 거주하고 있다.
강 씨는 자신의 배만 채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비리를 눈감아 주거나 도와준 직원들의 공로(?)도 잊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나오는 급여 이외에도 휴가비나 상여금 명목으로 수시로 1000만 원가량의 돈을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또 조합과 직원이 반반씩 내도록 돼 있는 주민세 등도 조합에서 전액 내 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직원들 중 자신과 27년간 같이 생활해온 전무 정 씨와 15년 전부터 실질적인 세무업무를 처리해온 경리 김 아무개 씨(36)에게는 그 씀씀이가 더욱 후했다.
경찰에 따르면 올해 3월 퇴직을 앞두고 있었던 조합의 전무 정 씨는 퇴직금으로 강 씨에게 2억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조합정관에는 6000만 원의 퇴직금을 지불하도록 돼 있었다. 더군다나 정 씨는 95년 한 차례 퇴직금 중간정산을 통해 이미 3000만 원을 지급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은 3000만 원뿐이었다. 그러나 조합장 강 씨는 상인들이 낸 적립금 중 2억 6000만 원을 빼서 그중 1억 5000만 원은 정 씨에게 주고 나머지 1억 1000만 원은 자신이 챙겼다고 한다.
조합의 경리인 김 씨는 처음 경찰조사를 받았을 때 강 씨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씨의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을 조사한 경찰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다. 한 달 월급이 140만 원이라고 밝혔던 김 씨의 최근 한 달 카드 사용 금액이 200만 원을 훌쩍 넘었던 것. 이상하게 여긴 경찰은 김 씨의 계좌를 추적했는데 2005년 1월부터 2007년 3월까지 ATM기에 입금된 현금의 액수만 무려 1억 9000만 원에 이른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사실을 근거로 계속 추궁하자 김 씨는 “가끔씩 조합장이 용돈을 준 것”이라고 강 씨가 돈을 줬음을 자백했다. 강 씨 역시 경찰 조사에서 “김 씨에게 다른 직원에 비해 과하게 용돈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현금 이외에도 자신의 명의로 된 주택 2채와 상가 건물 1채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편 경찰은 강 씨가 어떻게 해서 27년간 조합장 직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도 병행했다. 조합정관에 따르면 2년에 한 번 조합장과 전무를 선거로 선출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강 씨는 조합원들로부터 모은 도장을 임의로 사용해 조합원 투표에 의해 선출된 것처럼 조작함으로써 ‘장기집권’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데는 조합원들의 무관심도 한몫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얘기다. 조합 설립 초기엔 조합원들에게 선거공고를 하기도 했었지만 점점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자 강 씨가 아무런 제약 없이 조합장직을 계속 연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강 씨는 조사과정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담담히 시인했다고 한다. 그는 “나를 믿어줬던 상인들에게 정말 죄송스럽다. 그동안 세금에 대해 잘 모르는 상인들을 위해 노력했던 것을 감안해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하지만 그의 비리가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 씨가 지난 91년 횡령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서 조사를 받았던 경력이 조사 도중 밝혀진 것. 경찰은 이것이 그의 ‘마장동 대통령’ 임기 중 최대의 위기였다고 전했다. 당시 강 씨가 구속될 것이라고 여겼던 전무가 새로운 조합장을 뽑기 위해 선거를 준비했었는데 강 씨가 나오면서 무산됐다는 것이다. 강 씨는 그 이후 더욱 철저히 내부단속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의 비리 행각은 꼬리를 잡히고 말았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한 관계자는 “상인들이 협조를 해주지 않아서 수사에 애를 먹었다. 조합장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것 같았다. 익명을 전제로 하고서야 겨우 강 씨에 대한 이런저런 말을 들을 수 있었다”라며 수사 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것이 강 씨만의 잘못이겠느냐. 지난 27년간 아무런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거나 알면서도 묵인한 상인들도 방조범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들이 평소에 조금만 조합에 관심을 가졌더라면 강 씨가 우시장에서 ‘대통령’이라고 불리면서 아무런 제약 없이 돈을 횡령할 수 있었겠느냐. 세금을 덜 낼 수 있다고 믿은 상인들과 이를 이용해 돈을 챙기려는 조합 측의 이익이 합치돼 발생한 사건이다. 그래도 자신을 믿고 모든 것을 맡겼던 상인들의 뒤통수를 친 강 씨의 행동은 용서받기 힘든 것이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