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살해’로 가닥을 잡은 관할 경찰서가 초동수사에 나섰지만 별다른 단서가 없는 데다 목격자조차 나타나지 않아 수사는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게다가 고 씨가 안고 나간 아기의 행방 또한 묘연하기만 했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했고 결국 이 사건은 미제로 남은 채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 씨의 사체가 발견된 지 약 8개월 뒤 교통사고 차량을 추적하던 경찰이 피의자들의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끈질긴 수사를 편 덕분에 끔찍한 전모가 드러나게 된다. 한 여인으로부터 신생아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심부름센터 직원들이 모자를 납치해 영아는 팔아넘기고 아이의 친모를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강남경찰서 기동순찰대에 근무하던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강남서 생활안전계 최운성 형사는 아직도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은 어이없게도 ‘거짓임신’을 빌미로 결혼을 한 한 여인이 자신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돈을 주고 아기를 구하려 했던 과정에서 시작됐다. 연하남에 빠진 유부녀의 잘못된 욕망과 집착 그리고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황금만능주의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인명경시 풍조와 불륜, 가정해체 등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복합적으로 드러난 사건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건은 한 유부녀와 총각의 잘못된 만남에서 시작된다. 지난 90년대 초 결혼한 김은숙 씨(가명·38)는 어린 남매를 둔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던 김 씨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초. 반복되는 일상과 결혼생활에 권태를 느끼기 시작한 김 씨는 그 무렵 생활능력이 없던 남편과 잦은 불화를 겪고 있었다.
김 씨는 ‘일상탈출’의 수단으로 나이트클럽에 출입하게 됐고 그해 3월 서울 중화동의 한 클럽에서 최준식 씨(가명·33)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날 최 씨와의 만남은 평범한 주부였던 김 씨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계기가 된다. 다음은 최 형사의 설명.
“운전기사인 최 씨는 준수한 외모에 어느 정도 재력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김 씨는 다섯 살이나 어린 최 씨에게 완전히 빠져버리게 된다. ‘불같은 사랑’에 빠진 지 두 달 만에 김 씨는 결국 남편과 자녀를 버리고 가출해 그해 5월부터 최 씨와 동거에 들어간다.”
이미 법적으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던 김 씨. 하지만 최 씨가 이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김 씨는 자신의 처지와 신분을 속이기 위해 갖가지 거짓말을 늘어놓게 됐고 또 이를 감추기 위해 더 큰 거짓말을 일삼게 된다. 온통 거짓으로 점철된 동거생활은 아슬아슬했지만 최 씨를 향한 김 씨의 광적인 집착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마침내 김 씨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 씨에게 ‘임신했다’고 속이고 결혼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다음은 최 형사의 설명.
“김 씨가 임신을 빌미로 결혼약속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정작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임신을 위장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나. 특히 최 씨가 ‘왜 배가 불러오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김 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나보다. 무엇보다도 김 씨는 ‘거짓임신’이 탄로 날 경우 최 씨가 떠날까봐 두려워했다. 시간을 지체할 경우 더 이상 최 씨를 속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하던 김 씨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김 씨가 세운 계획은 바로 남의 아기를 데려온 뒤 ‘해외 원정출산’을 한 것처럼 꾸미는 일이었다. 김 씨는 일단 최 씨와 결혼을 한 후 날짜상으로 출산시기가 가까워 올 무렵 원정출산을 빌미로 당분간 집에서 떠나 있을 요량이었다. 그 뒤 출산 예정일이 지나 최 씨 앞에 아기를 데리고 나타나면 아무 탈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은 문제는 자신이 낳은 것처럼 꾸밀 수 있는 신생아를 어디서 구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최 씨와의 결혼식을 한 달 앞둔 10월의 어느 날 김 씨는 심부름센터 직원인 정 아무개 씨(40)에게 착수금 4000만 원을 주고 ‘아기를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성공할 경우 3000만 원을 더 주기로 약속했다. 빚에 쪼들려 거액의 돈이 필요했던 정 씨에게는 솔깃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씨는 고액의 착수금을 ‘해외 원정출산’ 비용 등을 핑계로 ‘시댁’에서 타냈다. 그동안 김 씨가 떠벌려놓은 온갖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최 씨네 집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김 씨의 사기극이라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최 씨의 부모는 ‘며느리’의 출산을 위해 기꺼이 거액의 돈을 건네주었다.
정 씨와 접촉하면서 모든 사전준비를 마친 김 씨는 철저히 ‘임산부’ 행세를 했고 한 달 뒤인 11월 초 예정대로 최 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다음은 최 형사의 설명.
“김 씨는 ‘진짜 남편’과 법적으로 이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따라서 새신부로 위장하고 결혼식을 치러야 하는 일은 김 씨에게 또 한 번 넘어야 할 힘든 고비였다. ‘다행스럽게도’ 김 씨는 이미 수년 전부터 친정은 물론 진짜 시댁과도 거의 교류를 끊고 살아온 인물이었다. 거짓이 탄로 날까 두려웠던 김 씨는 최 씨에게 가족과 가까운 친지만을 초대하는 ‘조촐한 결혼식’을 요구했고 결혼식 당일에는 대행업체를 통해 1인당 5만 원씩 주고 가짜 친지와 하객들을 동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리고 결혼식을 치른 후에도 김 씨는 유부녀 신분이 들통 날 것을 우려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혼인신고도 미루는 등 철저히 최 씨를 속여왔다.”
결혼 3개월 후인 이듬해 2월 김 씨는 ‘친정이 있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오겠다’고 한 뒤 서울 천호동에 있는 자신의 친구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3월 말쯤 ‘출산을 했다’며 홀로 집에 돌아온 김 씨는 최 씨에게 ‘신생아라 조만간 미국에 있는 삼촌이 데리고 올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이 엄청난 사기극은 김 씨의 능수능란한 ‘연극’ 때문에 가능했다. 김 씨의 가족 등 주변 인물들은 온통 베일에 싸여 있었지만 김 씨는 적절한 거짓말로 매번 위기를 넘겼다.
한편 이 무렵 심부름센터 직원인 정 씨는 신생아를 구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도박과 사업 실패 등으로 거액의 빚에 시달리고 있던 정 씨는 돈이 절실했다. 결국 정 씨는 비슷한 처지에 처해 있던 자신의 처남과 친구까지 끌어들여 아기를 구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신생아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이들 3인조는 6개월 동안이나 전국의 보육원과 신생아들이 있는 병원 등을 돌아다니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지만 삼엄한 경비를 뚫고 아기를 훔치기란 불가능했다. 김 씨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들은 초조해졌다. 결국 이들은 아기를 납치하기로 마음먹는다.
5월 24일 경기도 평택 일대를 돌아다니던 정 씨 일당은 한 주택가에서 생후 두 달 남짓 된 아들을 안고 걸어가던 주부 고 씨를 발견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고 씨 모자를 납치한 이들은 고 씨로부터 아기를 빼앗고 차량에 감금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아기의 ‘삼촌’으로 위장한 정 씨는 ‘의뢰자’인 김 씨의 집을 방문해 고 씨의 아기를 건네고 돌아갔다. 그후 ‘아기를 돌려 달라’며 울부짖는 고 씨를 목 졸라 살해한 일당은 고 씨의 사체를 차에 싣고 하루 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강원도 고성의 한 야산에 암매장하기에 이른다.
이로써 모든 범행은 완전범죄로 묻혀지는 듯했다. 아들을 갓 출산한 새댁으로 철저히 위장한 김 씨는 그동안의 ‘속앓이’에서 벗어나 최 씨와 행복한 신혼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정 씨 일당이 협박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 씨 일당은 “우리는 범행 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매일 고통스럽게 지내는데 당신만 그렇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냐.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남편에게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했다. 비밀이 탄로 날 것이 두려웠던 김 씨는 정 씨 일당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이런 식으로 이들이 김 씨에게 뜯어낸 돈은 5회에 걸쳐 총 1억 4000여만 원에 달했다.
공교롭게도 김 씨와 정 씨 일당의 범행이 꼬리를 밟히게 된 것은 정 씨가 저지른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2005년 1월 22일 정 씨 등은 교통사고 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하던 경찰을 보고 도주를 했고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범행의 전모가 드러나게 됐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최 형사의 회고.
“그날 오전 11시 10분께 강남구 삼성동 노상에서 순찰 도중 ‘교통사고 도주’로 수배된 차량을 발견했다. 당시 차량에는 정 씨 등 두 명이 타고 있었는데 경찰을 보자마자 검문에 응하지 않고 그냥 내빼는 게 아닌가. 차라리 순순히 조사에 응했더라면 이들은 무면허운전에 교통사고 야기 도주 혐의 정도로만 처리됐을 터였다. 그런데 무조건 죽자 살자 도망부터 치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정 씨 등을 붙잡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사무실에 데려다놓고 차량을 수색했다.
그 결과 차 안에서는 3대의 휴대폰이 발견됐다. 하나는 정 씨 것, 또 하나는 여자친구 것이었는데 조수석 서랍 서류봉투 사이에서 발견된 망가진 제3의 휴대폰이 왠지 수상하더라. ‘누구 휴대폰이냐’고 물으니 ‘아는 여자 것인데 두고 갔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 여자 전화번호와 인적사항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더니 ‘한 번 만난 여자라 모른다’고 얼버무리는 게 아닌가. 한 번 만나 아무런 인적사항도 모르는 여자가 차 안에 휴대폰을 두고 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렇듯 정 씨 일당의 진술에는 신빙성이 없었다. 또 차량에 지저분하게 흙이 묻어 있었을 뿐 아니라 트렁크에 삽과 장갑 등이 너저분한 상태로 흩어져 있는 점도 이상했다. ‘아, 이거 뭔가 있다’ 싶었다.”
따지고보면 유일한 단서는 주인도 번호도 알 수 없는 고장 난 휴대폰일 뿐이었다. 하지만 최 형사는 휴대폰 안에 범죄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망가진 휴대폰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고 한다. 최 형사는 휴대폰 회사에 망가진 휴대폰의 메모리 복구 작업을 의뢰했고 그 결과 휴대폰에 저장돼 있던 13개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휴대폰 주인의 신원확인을 위해 내장된 번호로 일일이 전화를 걸었지만 상당수의 전화번호는 결번이었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어지는 최 형사의 설명.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분명 의심스럽긴 한데 일당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런데 ‘부재중 전화’ 표시를 봤던지 한 여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인데 주인에게 휴대폰을 찾아주려고 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상대방이 나를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확 들더라.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망가진 휴대폰의 주인은 바로 2004년 6월 살해된 채 발견된 주부 고 씨였고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고 씨의 친구였다. 고 씨 친구의 입장에서는 죽은 지 한참 지난 사람의 휴대폰을 돌려주겠다고 하니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겠나. 내가 경찰인 것조차 의심받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내 소속과 이름을 알려준 뒤 확인해보고 다시 전화해 달라고 했더니 잠시 후에 전화가 오더라. 고 씨의 친구는 ‘휴대폰 주인이 죽은 것 모르냐’며 ‘고 씨 모자가 실종된 후 고 씨만 고성에서 사체로 발견됐다’고 전해줬다. 평택경찰서에 고 씨의 실종신고 건에 대해 확인한 나는 정 씨 일당이 고 씨의 죽음과 분명 연관이 있다고 판단했다. 모든 정황을 파악한 후 나는 정 씨를 붙잡고 이렇게 물었다. ‘…대체 아기는 어떻게 했어?’”
전모를 파악한 듯한 최 형사의 추궁에 정 씨 일당은 순순히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사랑’에 눈이 먼 한 주부의 의뢰를 받고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른 이들의 범행이 8개월 만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한 남자를 붙잡기 위해 시작된 김 씨의 사기극 역시 1년 6개월여 만에 막을 내렸지만 그녀의 집착과 탐욕이 초래한 결과는 너무나 끔찍했다.
당시 김 씨는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싶었다. 나는 정말 그 사람 없이는 안 될 것 같았다. (정 씨 일당이) 그렇게까지 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죽을죄를 졌다”며 대성통곡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자신의 일그러진 행복을 위해 타인의 가정과 행복을 무참히 짓밟은 김 씨와 정 씨 일당의 범행에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들의 얘기였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