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김 씨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김 씨가 사라지기 직전에 가게를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 씨 스스로 자취를 감췄을 가능성도 대두됐다. 하지만 김 씨의 ‘실종’ 뒤에는 어둡고 무서운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이번에 대전 동부경찰서 강력3팀 이송기 형사가 전하는 사건은 이렇게 한 여인의 미스터리한 실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5일 만에 내연남에 의해 저질러진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밝혀지게 된다. 특히 피의자는 김 씨를 살해하기에 앞서 김 씨의 남편까지 무참히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주었다. 사건을 담당한 이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각자 가정이 있었던 두 남녀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 것이 화근이었다. 불륜관계가 들통 나자 이 사실을 덮기 위해 내연녀의 남편을 살해한 피의자는 완전범죄를 위해 범행 일체를 알고 있던 내연녀까지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두 달 만에 아까운 두 명의 목숨을 빼앗은 한 남자의 무모한 살인행각을 되짚어보며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인명경시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자 한다. 아울러 날로 문란해져가는 요즘의 성 세태를 돌아보고 부부간의 윤리와 신뢰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당시 김 씨의 ‘실종’ 상황에 대한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수사팀에 들어온 제보 내용으로나 정황상으로 볼 때 분명 가출은 아니었다. 김 씨가 가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것으로 볼 때 분명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다분했다. 수사팀은 김 씨가 실종되기 전의 행적들을 훑어가는 한편 김 씨와 가까이 지내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채무·치정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김 씨와 갈등을 겪고 있던 인물이 있는지 여부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조사하던 중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은 당연히 함께 살던 김 씨의 남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김 씨의 남편 역시 몇 달째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 씨의 남편 A 씨(당시 68세)는 과거 김 씨가 직장 생활을 하던 당시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김 씨와 A 씨는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었지만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딸과는 평소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또한 다른 친척들과도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았던 탓인지 A 씨의 행방이 묘연해진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실종신고조차 돼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어지는 이 형사의 얘기.
“A 씨는 부인 김 씨가 사라지기 전부터 이미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다. 그런데 부인조차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점이었다. 주변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그간 A 씨는 아내가 운영하던 가게에 나와 문을 열어주고 가게도 같이 봐주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사팀은 김 씨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면밀히 수사를 진행하던 중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바로 김 씨가 남편 몰래 따로 만나던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수사는 의외로 쉽게 풀려나갔다. 며칠 후 은밀히 수사를 진행하던 수사팀의 레이더에 김 씨의 내연남 조성국 씨(가명·44세)가 포착된 것. 유부남이었던 조 씨는 부인은 물론 자식까지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는데 그해 봄부터 김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당시 특정한 직업이 없던 조 씨 또한 김 씨가 사라진 이후 행적이 묘연한 상태였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조사 결과 내연관계였던 두 사람은 김 씨가 실종되기 얼마 전부터 동거를 해온 사이였다. 정황으로 보아 조 씨는 김 씨의 행방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이었다. 김 씨가 실종될 당시 조 씨의 행적과 통화기록 등을 분석한 수사팀은 조 씨가 김 씨의 실종과 관련돼 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단서들을 취합했고 그것을 근거로 조 씨를 찾아내 추궁했다. 처음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던 조 씨였지만 그동안 수사팀이 수집한 증거들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조사 결과 조 씨는 동거 중이었던 김 씨를 살해하고 사체를 야산에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충북 옥천의 한 야산에 사체를 유기했다는 조 씨의 진술에 따라 현장으로 출동한 수사팀은 그곳에서 김 씨의 시신을 발굴했고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했다. 김 씨가 실종된 지 5일 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하지만 수사팀에게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이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꺼림칙했던 것은 김 씨 남편의 행방이 여전히 묘연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김 씨의 남편 A 씨가 사라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부인 김 씨와 조 씨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는 것도 뭔가 석연치 않았다. 수사팀은 A 씨 역시 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내연녀 김 씨를 살해한 조 씨가 A 씨의 실종에 연관돼 있을 가능성을 놓고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사팀이 조 씨가 추가 범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판단한 것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당시 수사팀에 첩보가 들어왔다. 피의자 조성국의 친구 최달수(가명·45세)가 지인에게 한 얘기가 형사의 귀까지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최 씨는 사실 이 사건의 첫 제보자였다. 최 씨에 따르면 조 씨가 김 씨를 살해하기 약 두 달 전에 이미 그녀의 남편 A 씨를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최 씨가 두 건의 살인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는 자신이 A 씨의 사체를 유기하는 데 가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조 씨가 김 씨의 남편 A 씨를 죽일 당시 김 씨와 사전 모의가 있었다는 것이 최 씨의 얘기였다. 김 씨는 사건 당일 남편이 가게에 나와 있다는 정보를 조 씨에게 알려주고 범행 현장에 함께 있는 등 범행에 공조했고 역시 함께 있던 최 씨 자신은 조 씨를 도와 A 씨의 사체를 같이 유기했다는 것이었다.”
“A 씨를 죽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씨가 최 씨에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여자(김 씨)도 죽여버려야겠다’고 하더라는 거다. 당시 조 씨와 김 씨는 적잖은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김 씨가 자신의 범행 사실을 폭로할 것을 우려한 나머지 조 씨가 김 씨마저 없애버려야겠다고 마음먹은 듯했다는 거다. 이 같은 조 씨의 얘기를 듣는 순간 최 씨는 머리끝이 쭈뼛했다고 한다.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자신도 죽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조 씨가 실제로 김 씨까지 살해한 사실을 알게 된 최 씨는 고민 끝에 결국 그간의 일을 털어놓기에 이른 것이었다.”
하지만 수사팀의 추궁에도 불구하고 조 씨는 김 씨의 남편 A 씨를 살해한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가 진행될수록 범죄 정황이 드러나는 등 더 이상 발뺌할 방도가 없자 조 씨는 A 씨마저 자신이 살해했다는 것을 실토하기에 이른다.
조 씨가 내연녀 김 씨의 남편을 살해한 것도 모자라 동거하던 김 씨까지 살해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사 결과 사건의 발단은 두 사람의 잘못된 만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조 씨와 김 씨는 그해 5월경 우연히 성인오락실에서 만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각자 가정이 있는 유부남·유부녀였지만 평소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두 사람은 이내 정을 통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각자 배우자가 있었던 두 사람의 ‘비밀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먼저 김 씨의 남편인 A 씨가 이상한 낌새를 챈 것이었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A 씨가 보기에 언제부터인지 부인의 행동이 이상했던 것 같다. 평소 안 그러던 부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니 A 씨가 금방 눈치를 채고 따라 붙은 거다. 그리고 결국 김 씨와 조 씨의 관계는 탄로나게 된다. 두 사람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A 씨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한다.”
후환을 두려워했던 두 사람은 논의 끝에 A 씨를 없애버릴 위험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A 씨만 없애버리면 모든 일이 조용히 무마될 것이라는 어리석은 판단을 했던 것이다.
6월 5일 오전 10시경 김 씨로부터 ‘남편이 가게 안에 있는 방에 혼자 있으니 지금 오라’는 귀띔을 들은 조 씨는 김 씨의 가게로 찾아갔다. 그리곤 A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친구 최 씨의 도움을 받아 사체를 충북 옥천군 안내면의 야산에 유기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오전시각, 그것도 가게 내부에 있는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목격자가 있을 리 만무한 일. A 씨 살인사건은 조 씨와 김 씨 그리고 최 씨만 아는 비밀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완전범죄로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조 씨와 김 씨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또 한 건의 끔찍한 참극으로 이어지게 된다. 다음은 이 형사의 얘기.
“A 씨를 살해하고 약 한 달 후인 7월 9일부터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가정이 있었던 조 씨가 배우자 몰래 비밀스런 관계를 이어가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조 씨가 가정으로 돌아가려는 뉘앙스를 내비치게 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이 증폭됐다. 특히 조 씨가 자신과 결혼할 것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던 김 씨의 분노는 컸던 것 같다. 김 씨가 ‘이제 와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범행 사실을 경찰에 알리겠다’며 조 씨를 강하게 압박했나 보더라. 자신의 가정을 깰 마음은 없었던 조 씨로서는 미칠 노릇이었을 게다. 어떻게 해서든 당장의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조 씨는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김 씨마저 살해해야겠다는 무서운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특히 김 씨가 당시 가게를 처분하면서 받은 돈 1600만 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별다른 수입이 없었던 조 씨에게는 범행을 부추기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동거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인 8월 9일 조 씨는 ‘이제 우린 결혼할 사이니 부모님 산소에 인사를 드리러가자’며 김 씨를 충북의 한 야산으로 유인했다. 실제로 그곳은 조 씨 어머니의 묘가 있는 곳으로 조 씨가 그 일대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은 당연했다. 인적이 없는 깊숙한 야산에 도착한 조 씨는 김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인근에 땅을 파서 묻어버렸다. 두 달 전 김 씨의 남편 A 씨를 살해할 때와 똑같은 수법으로 또 한 건의 살인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범행 직후 조 씨는 김 씨가 살던 집으로 가서 가게를 처분한 돈 1600만 원을 훔쳐 잠적하고 만다.
“초기에 잠깐 애를 먹긴 했지만 이내 조 씨가 모든 범행을 순순히 털어놔 의외로 사건이 쉽게 풀렸다. 조 씨는 두 명이나 살해한 자신의 행동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들부들 떨더라. 한순간 맺게 된 잘못된 관계로 인해 두 가정이 산산조각 나고 자신은 씻을 수 없는 중죄인의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으니…. 조 씨는 ‘죄의식을 느낀다’며 깊이 반성하는 모습이었다.”
강도살인과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씨는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최 씨는 1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한편 최 씨는 법정에서도 사체 유기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살인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