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5년 돈 때문에 내연녀를 잔인하게 토막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진은 경찰에서 압수한 증거물품들. 사진=YTN 캡처 | ||
집 안에 진동하던 악취는 바로 그 비닐봉지에서 나는 것이었다. 무심코 봉지 속을 살펴보던 A 씨는 비닐에 꽁꽁 싸여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비닐 속의 물체가 처참하게 잘린 사람의 오른쪽 다리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송파경찰서 강력 7팀 박성수 팀장이 전하는 ‘○○동 토막살인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경찰 수사 결과 수일 만에 드러난 범인은 김 씨와 한동안 내연관계를 유지했던 한 50대 남성이었다. 이 남성은 김 씨가 갖고 있던 거액의 돈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까지 훼손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줬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박 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황금만능주의와 인명경시 풍조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수사과정도 까다로웠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이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사건을 해결한 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한 여인의 억울한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우선 당시 사건 현장에 대한 박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더운 날씨 탓인지 잘려진 다리는 벌써 상당 부분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악취는 그렇다 치고 아무렇게나 잘려진 모양이 어찌나 끔찍하던지…. 음식물 썩는 냄새쯤으로 알고 무심코 비닐 안을 살펴본 A 씨가 놀라 나자빠질 만도 했다.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결과 비닐 속의 다리는 집주인 김춘자 씨의 것으로 밝혀졌다. 부패 정도로 보아 김 여인은 이미 살해된 지 수일이 지난 것으로 추정됐다. 악취를 이상하게 여긴 A 씨가 집 안을 둘러보지 않았더라면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김 여인의 죽음은 훨씬 뒤에야 밝혀졌을 것이다.”
도대체 김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누가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김 씨는 사체 일부가 발견되기 닷새 전인 7월 27일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주변 정황상 이때 이미 김 씨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그간의 수사경험상 단순 강도살인은 아니었다. 근래 들어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사체를 토막 내서 유기하는 사례가 늘기는 했지만 대개의 경우 토막살인은 치정이 얽힌 범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김 여인의 오른쪽 다리가 발견된 다음날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팔당댐 상류에서 여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왼쪽 다리와 골반, 장기 일부가 비닐봉지에 쌓인 채 발견됐다.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그것들 역시 김 여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팀은 김 여인이 사라지기 전의 행적을 훑는 동시에 그녀와 자주 접촉하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우선 최초 신고자이자 김 씨와 잘 알고 지내던 A 씨를 일차 용의선상에 올렸다고 한다. 가족이나 배우자 등 가까운 인물부터 조사하는 통상적인 수사절차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A 씨는 물론 주변 인물들에게서는 별다른 혐의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팀은 김 씨의 통화내역을 뽑아 최근 통화자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한편 주변 인물들에 대한 탐문수사를 계속했다. 이어지는 박 팀장의 얘기.
“김 여인의 통화내역을 취합한 결과 마지막 통화자는 한 중년 여성으로 밝혀졌다. 확인해보니 이 여성은 아무개 레스토랑의 주인이었다. 김 여인이 사건 발생 직전에 이 여성이 운영하던 레스토랑을 인수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여성의 얘기로는 레스토랑 계약 문제로 김 여인과 몇 번 만남을 가졌는데 그때마다 김 여인이 어떤 남자와 함께 왔다는 것이었다.”
레스토랑 여주인의 얘기대로라면 레스토랑 인수 문제를 협의하는 자리에 김 씨와 동행했던 남자가 피살된 김 씨와 최근까지 접촉했을 개연성이 컸다. 수사팀으로선 예의 남자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게 급선무였다.
수사팀은 처음 김 여인의 사체를 발견한 A 씨 등 주변 인물들의 사진을 레스토랑 여주인에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남자가 아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레스토랑 여주인의 진술에서 수사팀은 중요한 사실을 포착하게 된다. 이어지는 박 팀장의 얘기.
“사건 발생 무렵 레스토랑 여주인에게 한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런데 대뜸 레스토랑 인수 얘기를 꺼내더라는 거다. 그 남자가 말하기를 ‘(인수하기로 한) 김춘자 씨가 많이 아파서 입원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계약을 미뤄야겠다’고 했다는 거다. 느닷없이 계약을 미루자는 말에 레스토랑 여주인이 ‘혹시 항상 함께 오던 그 아저씨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남자가 황급히 전화를 끊어버리더라는 거다.”
레스토랑 여주인의 진술과 주변 정황 등을 종합해보면 김 씨는 레스토랑을 인수하려던 찰나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또한 김 씨가 사라진 날이 바로 레스토랑을 사기 위해 돈을 인출한 날이라는 사실도 파악됐다. 수사팀은 범인이 김 씨의 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범인은 김 씨가 레스토랑을 인수하려던 사정까지 훤히 꿰뚫고 있던 주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또한 전화 속 남자가 전한 얘기와 달리 피해자 김 씨는 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없었다. 수사팀은 이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추적에 들어갔다. 그 결과 통신 수사 등을 통해 수사망에 포착된 사람이 바로 박충식 씨(가명·56)였다.
운전기사였던 박 씨는 아내와 아들을 둔 성실한 가장으로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평판이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탐문 결과 박 씨는 김 씨와 오래 전부터 내연관계로 지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과거 다방을 운영했던 김 여인에게 종종 돈을 빌려주기도 하는 등 채무관계도 있던 상황이었다. 토막 사체가 발견되기 닷새 전 김 여인이 송파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레스토랑 인수계약을 하러 나왔을 때도 박 씨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박 씨의 목소리는 레스토랑 여주인에게 전화를 건 남성의 목소리와 일치했다. 여러 정황이 모두 박 씨가 유력한 용의자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수사팀은 송파구 가락동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박 씨를 연행해 조사를 벌였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박 씨는 무조건 범행을 부인했다. 김 여인과 알고 지내던 사이임은 인정했지만 김 여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거였다. 하지만 박 씨가 운행하던 차량 안에서는 범행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증거들이 발견됐다. 우선 뒷좌석에서는 배터리가 분리된 김 여인의 휴대폰이 발견됐다. 찾아보니 배터리는 차 트렁크에 처박혀 있더라. ‘이건 누구 것이냐’고 물었더니 박 씨는 당황하며 ‘모른다’고 둘러대더라. 계속 추궁하니 박 씨는 ‘손님이 두고 간 것 같다’고 횡설수설했다. ‘손님 휴대폰인데 왜 배터리까지 분리해서 따로 보관했냐’고 했더니 ‘사실은 그 여자(김 씨)가 맡긴 거다’라고 하는 등 계속 말이 바뀌더라. 또한 차 안에서는 집 열쇠와 충전기 등 김 여인의 소지품도 나왔는데 이때도 박 씨는 ‘누구 것인지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잠시 맡아둔 거다’라고 어설픈 변명을 했다.”
조사 과정에서 박 씨는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나올 때면 ‘모른다’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버티거나 진술을 바꿔서 수사팀을 애먹였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7월 27일 박 씨의 행적이었다. ‘27일에 어디서 뭐 했냐’고 물었더니 박 씨는 ‘춘천에 대리기사로 갔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것도 모두 거짓말이었다. 특히 차 안에 김 여인이 인출한 10만 원권 수표가 있었다는 점, 레스토랑을 인수하기 위해 인출했던 7000만 원이 다음날인 28일자로 박 씨 처남의 차명계좌에 입금돼 있다는 점은 빼도 박도 못할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박 씨는 ‘여자가 가지고 있으라고 해서 맡아둔 건데 돈 욕심이 생겨서 처남의 계좌에 옮겨놓은 것일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수사팀은 이미 더욱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해둔 상태였다고 한다. 이어지는 박 팀장의 얘기.
“박 씨의 트렁크 한구석에서 그가 입었던 것으로 보이는 피 묻은 티셔츠가 발견됐다. 아니나 다를까, 감식결과 이 피는 김 여인의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는 사건 당일 범행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단서로 제시하기 위해 이 티셔츠를 그간 박 씨에게 보이지 않고 자백을 받으려 했다. 그런데 박 씨는 도무지 말이 먹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티셔츠를 들이밀었더니 그의 변명이 또 가관이었다. 처음에는 ‘모른다’고 하다가 김 여인의 혈흔이 묻어 있는 이유에 대해 추궁하자 ‘함께 공원에 놀러 갔는데 유리에 여자가 찔려 피를 쏟았고 그걸 닦아주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 옷에 피가 묻은 것’이라고 하더라. 그렇다면 차량에 있던 혈흔에 대해선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 씨는 조사과정 내내 ‘기억나지 않는다’며 부인하거나 엉뚱하게 동문서답을 하는가 하면 흥분에 못이기는 척 소리를 지르며 발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씨의 진술에는 일관성이 하나도 없었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하나도 증명해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다가 스스로 거짓말에 옭매이는 실수를 저지른 셈이었다.”
박 씨는 끝내 범행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검찰 기소과정에서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법원 역시 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수집한 모든 증거들을 인정, 박 씨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특히 이 사건은 경찰 조사에서 범인의 자백 없이도 범행을 입증해낸 사례로, 또한 살해범에게 피해자의 유족들에 대하여 손해배상책임을 명한 사례로 남아 있다. 박 씨는 살인, 절도,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