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4년 마산에서 발생한 택시기사 살인사건 피의자인 모녀가 자신들의 집 욕실에서 당시 범행을 재현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지난 2004년 8월 1일 경남 마산시 ○○ 등산로 주변에서 깻잎을 따고 있던 한 노인이 갓길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던 노인은 잠시 후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나자빠지고 말았다. 그 물체가 다름 아니라 심하게 훼손된 사람의 양쪽 팔이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명 ‘마산 택시기사 토막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10여 일에 걸친 경찰 수사 끝에 밝혀진 범인은 놀랍게도 피살된 택시기사의 아내와 딸. 이들의 가정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조사 결과 모녀의 범행동기는 심각한 가정폭력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드러나 더욱 충격을 안겨줬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마산 동부경찰서 강력1팀 정덕만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엽기적인 사건 내용 자체보다는 가장에 대해 오랫동안 쌓여있던 가족의 앙금과 불만이 일순간 분출돼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살인은 우발적이었지만 은폐극은 치밀했던 이 사건을 통해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다시 돌아보고 그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정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체 일부가 발견된 곳은 주민들이 평소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었다. 당시 사체의 양팔은 등산로 갓길 텃밭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는데 더운 날씨 탓인지 부패가 진행되던 상태였다. 사체의 모양이나 크기로 추정컨대 성인 남성의 것으로 판단됐는데 특이한 점은 손가락의 지문이 모조리 도려내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경찰이 사체 일부가 발견된 현장 인근을 샅샅이 뒤진 결과 처음 팔이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반경 30m 안에서 둔부과 흉부 등 사체 일부가 추가로 발견됐다. 가장 시급한 것은 사체의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수사팀은 훼손된 사체 일부에서 지문을 뜨는 작업을 여러 차례 실시했다. 하지만 지문이 도려진 채 불에 그을린 상태여서 신원확인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체 일부가 발견된 지 이틀 후인 8월 3일 동부경찰서로 한 건의 실종신고가 접수된다. 실종자는 마산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던 A 씨(당시 53세), 신고자는 그의 부인 K 씨(55세)였다. 경찰에서 K 씨는 “남편이 지난달 29일 동료들과 놀러간 후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안 받고 도무지 연락이 안 된다”고 진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산에서 발견된 사체와 A 씨의 실종 사이에 어떤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토막 사체가 발견된 지 10여 일 후 사체의 신원이 어렵게 확인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어지는 정 형사의 얘기.
“지문이 도려내져 있는 손가락의 표피를 하나 더 벗겨내서 지문감식을 한 결과 겨우 피살자의 신원이 확인됐다. 피살된 사람은 바로 실종된 A 씨였다. 조사 결과 A 씨는 7월 29일 직장 동료들과 낚시를 하러 갔다가 일행과 함께 동료 택시기사의 집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A 씨는 이른 저녁 상당히 취한 상태로 먼저 일어나 집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A 씨는 원만한 직장생활을 하고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는 등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었다. 친구 관계도 면밀히 조사했지만 A 씨는 남에게 원한을 살 만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료들의 진술에 따르면 A 씨는 회식 후 집으로 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수사팀은 A 씨의 가족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A 씨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있는 한 집안의 가장이었는데 아들은 당시 군 복무 중이었다. 이 무렵 아들은 휴가를 나온 상태였지만 어떤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 평소 A 씨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온 아들에게서는 범행을 저지를 만한 별다른 동기도 없었다. 이에 수사팀은 나머지 가족인 부인 K 씨와 딸 B 씨(26세)를 상대로 조심스럽게 조사를 진행했다. 정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실종신고를 처음 받은 관계자에 따르면 부인 K 씨의 태도가 영 어색했다고 한다. 남편이 사라졌다며 실종신고를 하긴 했는데 남편을 찾으려는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A 씨 부부는 평소 불화를 겪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A 씨 때문이었다. 의처증 기질이 있었던 A 씨는 부인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트집을 잡고 의심을 해가면서 적잖이 괴롭혔던가보더라.”
조사 결과 A 씨의 딸 B 씨의 행적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됐다. 이어지는 정 형사의 얘기.
“직장생활을 하던 B 씨는 당시 휴직 상태였는데 전과 하나 없는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런데 범행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의 행적을 조사해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B 씨는 사건 추정 당일에 애인과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많은 통화를 했더라. 그런데 유독 범행 시간대로 추정되는 시간에만 문자나 통화 내역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행적에 대한 어머니 K 씨와 딸 B 씨의 진술이 엇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혐의점에 대해 조사를 하니 예상대로 모녀는 펄쩍 뛰었다. 부인 K 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시 수사팀은 이미 ‘범인은 모녀’라는 판단을 내린 상황이었다.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10여 일간의 조사과정에서 취합한 여러 정황들과 증거들을 토대로 내린 판단이었다. 수사팀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자택을 수색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욕실에서 ‘루미놀(혈흔 감식에 쓰이는 화합물) 반응’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모녀는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애를 먹였다. 얼마나 실랑이를 했을까. 지칠 대로 지쳤는지 부인 K 씨가 힘들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다 내가 했다. 결혼 후 남편은 술만 마시면 가족들에게 폭력·폭언을 일삼아왔는데 이날도 술에 취해 흉기를 휘두르며 행패를 부려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게 K 씨의 얘기였다.”
수사팀은 A 씨의 집에서 범행에 사용된 도구와 시신을 담았던 용기들을 찾아내는 한편 K 씨가 진술한 구산면 심리 야산에서 잘려진 A 씨의 머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딸 B 씨의 고백으로 인해 사건은 다시 반전을 맞는다. B 씨가 ‘엄마는 죄가 없다. 사실은 내가 죽였다’고 자백을 했던 것. 모녀는 서로 자신이 한 짓이라고 주장하며 눈물로 그날의 사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살인은 딸 B 씨가 저질렀고 어머니 K 씨는 범행 은폐를 제안하고 사체유기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은 정 형사의 얘기.
“모녀의 진술에 따르면 A 씨는 아들의 경우와는 달리 아내나 딸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술만 마시면 모녀를 상대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가며 갖은 행패를 부렸다고 하더라. 20년 이상 A 씨의 주사에 시달려온 모녀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아닐 수 없었을 게다. 사건이 벌어진 날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7월 29일 저녁 8시께 A 씨는 동료들과의 모임을 마치고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귀가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A 씨의 주사가 시작됐다. K 씨 등의 진술에 따르면 당시 A 씨는 망치를 꺼내들고 ‘다 죽여버리겠다’며 고함을 질러댔다고 한다. A 씨의 행동에 겁을 먹은 아내 K 씨는 서둘러 복도로 몸을 피했다고 한다. 다음은 정 형사의 얘기.
“딸 B 씨가 ‘아버지, 도대체 왜 이럽니까. 이제 제발 그만 좀 하세요’라며 뜯어 말리는데 A 씨는 오히려 딸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하며 망치를 휘둘렀다는 거다. 딸은 이미 아버지의 행패에 질릴 대로 질려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 모욕적인 욕설까지 들으니 눈이 뒤집히고 만 것이다. B 씨는 아버지가 방심한 틈을 타서 망치를 빼앗아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고 한다. ‘한 대 때리면 기절할 줄 알았다’는 거였다. 하지만 A 씨는 거세게 저항하며 딸을 향해 달려들었고 극도로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당시 복도에 있던 K 씨는 부녀가 심하게 싸우는 소리에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둘 사이를 가로막으며 말렸다. 이대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K 씨는 일단 남편 A 씨를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정 형사의 얘기.
“K 씨가 간신히 남편과 딸을 떼어놓고 겨우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분을 참지 못한 딸 B 씨는 급기야 과도를 들고 방으로 따라 들어갔고 말릴 새도 없이 A 씨의 옆구리를 찌르고 만다. A 씨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는 듯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시도했고 이 광경을 본 딸은 또다시 격분해 A 씨의 휴대폰을 빼앗아 내동댕이친 후 목을 졸랐다. 결국 A 씨는 과다출혈과 질식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모녀는 거실에 주저앉아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고 한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딸 B 씨가 먼저 자수할 뜻을 밝혔지만 애타는 모정은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게 된다. 이어지는 정 형사의 얘기.
“딸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엄마, 나 자수할래’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된 딸은 이미 모든 것을 단념한 표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 K 씨가 ‘절대 안 된다. 자수하면 네 인생은 그걸로 끝난다’라며 극구 말렸다고 한다. K 씨는 ‘조용히 처리하자. 오늘 일은 우리만 입 다물고 있으면 된다. 무덤까지 가져 가야 할 비밀로 하자’며 완전범행을 제안하게 된다.”
가장 시급한 일은 사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A 씨의 사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K 씨는 사체를 절단해 멀리 내다버리자고 제안했다. 겁도 났지만 완전범행을 해야만 딸의 앞길에 지장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늦은 밤 사체를 욕실로 끌고 간 모녀는 집 안에 있는 공구를 이용해 사체를 여러 부분으로 절단한 뒤 그중 일부를 집 주변의 야산 곳곳에 내다버렸다. 나머지 사체는 다음날 비닐봉지에 싸서 집에서 30㎞나 떨어진 야산으로 가서 파묻었다. 신원을 확인하기 어렵도록 하기 위해 모녀는 사체의 지문을 도려낸 것도 모자라 창원까지 가서 사체를 옮길 렌터카를 빌려오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나 이 엽기적인 범행은 결국 사체가 발견된 지 10여 일 만에 전모가 드러나고 말았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이들 모녀는 저마다 ‘자신이 한 짓’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살인을 한 장본인이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어머니 K 씨는 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등 뜨거운 모정을 보였다는 것.
이들 모녀는 존속살인 및 사체유기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15년(딸 B 씨)과 5년(어머니 K 씨)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는 B 씨에게 징역 8년, 어머니 K 씨에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