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주가조작·사기·횡령 등을 통해 수백억 원대의 돈을 가로채고 보석으로 풀려난 뒤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아무개 씨(47)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도피 기간 중 고급 아파트 등에 애인의 거처나 은신처를 여러 곳 만들어놓고 5대의 고급 외제 승용차를 번갈아 타고 다니며 경찰의 추적을 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재산을 제3자 명의로 돌려놓고 휴대폰은 이른바 ‘대포폰’을 사용하는 등 마치 유령처럼 흔적을 감춘 채 생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치밀한 도피생활에도 불구하고 이 씨는 결국 경찰의 끈질긴 수사에 꼬리를 밟히고 말았다. 이 씨가 벌인 사기 행각과 호화로운 도피생활 그리고 검거에 얽힌 뒷얘기를 따라가보았다.
피의자 이 씨가 ‘주가조작’에 대해 처음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사기 혐의로 구속돼 2년간 감옥에서 복역한 직후인 2001년께로 알려진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감방동기였던 증권브로커 A 씨를 만나면서 ‘주식수업’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교도소 내에서 한 번 외운 것은 절대 안 잊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했다던 이 씨. 그는 복역 당시 A 씨와 친하게 지냈는데 평소 A 씨는 그런 이 씨에게 ‘출소하면 내게 찾아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출소 후 마땅히 할일이 없던 이 씨는 실제로 A 씨를 찾아가게 됐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주식수업을 받았다는 것. 그는 주식을 배운 지 6개월 만에 A 씨의 실력을 뛰어넘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랐다고 한다.
A 씨에게 ‘수업’을 받은 후 이 씨는 2003년부터 작전세력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검찰에서는 이 무렵 이 씨가 크고 작은 주가조작 사건에 개입해 엄청난 돈을 챙겨온 정황을 포착해 수사 중이었다. 이 씨는 주로 자본금이 약한 소규모 벤처업계 사장들과 한 팀을 이뤄 주가를 띄운 뒤 유상증자를 통해 주식을 팔고 부도를 내는 수법으로 수백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이 씨가 ‘작전주’를 진두지휘하며 중간에서 막대한 ‘수수료’를 떼는 수법으로 거금을 챙겼으며 주가조작 등으로 한때 1년에 1만%의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5년에는 김 아무개 씨에게 모 IT 업체의 빚을 연대보증 서도록 부추겨 회사 돈 100억 원을 챙겨 도주하는 등 5명의 피해자들로부터 214억 5000만 원을 가로챈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이 씨를 ‘주가조작’ 혐의로 구속해 수사를 했지만 이 씨는 돈을 ‘방패’로 삼았다. 많은 돈을 들여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해 2006년 8월 보석으로 풀려났던 것. 그 이후 이 씨는 종적을 감췄고 검찰을 비롯해 서울시내 10개 경찰서가 지명수배를 내릴 만큼 ‘특급 사기범’으로 분류됐다. 경찰은 이 씨 검거를 위해 전담반까지 편성했지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그의 흔적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사기·횡령·주가조작·강도상해 등 모두 10여 개가 넘는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사기행각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놀라게 했다. 주로 ‘회사를 인수하려 하는데 나에게 투자를 하면 이익금을 주겠다’며 피해자들로부터 거액을 받은 후 잠수해버리는 수법을 썼다고 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수백억 원의 돈을 가로챈 것도 모자라 이 씨는 지난해 2월 강남의 한 카지노바에서 도박을 하다 1억 원을 잃자 돈으로 조직폭력배를 동원, 함께 도박했던 7명을 3주간 감금해 1억 3000여만 원을 빼앗은 혐의(강도상해 등)도 받고 있다.
이 씨의 치밀하고 호화로운 도피생활은 일단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모든 것을 타인의 명의로 돌려놓았기에 가능했다. 그는 주로 제3자나 법인 명의 등을 이용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활동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내연녀 B 씨의 명의로 법인을 6~7개 정도 세운 뒤 그곳 직원들의 명의로 대포폰을 만들어 썼던 것. 이 씨가 평소 몰고 다니던 외제 승용차들도 법인 소유로 돼 있었다.
특히 이 씨는 벤츠와 아우디, 페라리 등 5대의 고급 외제차를 번갈아 몰고 다니면서 경찰의 수사망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가 외제차를 많이 갖게 된 이유는 ‘주가조작’을 부탁하려면 외제차 한 대를 ‘작전을 짜는 사람’에게 주는 그쪽 세계의 관행 때문이었다고 한다.
도피 기간 중 이 씨는 내연녀 B 씨와 서울 여의도 중심가에 있는 40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의 펜트하우스(시가 50억 원)에서 주로 거주해왔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여의도, 잠실에 또 다른 은신처로 혼자만의 공간을 만들어 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그가 술집에서 만난 애인들에게 사준 강남의 고급 아파트들도 도피생활을 위한 은신처 중 하나였다. 애인들은 이 씨가 고급 아파트를 선물해서 졸부나 갑부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에겐 결혼한 부인이 있고 이 부인이 이 씨의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씨는 내연녀 B 씨와 함께 생활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고 이 때문에 B 씨의 경우 ‘범인은닉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돈을 뿌려대며 화려한 도피생활을 하면서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던 이 씨였지만 이 같은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적잖은 형사들이 이 씨의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씨를 검거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력5팀 장길현 형사도 그들 중 하나. 장 형사는 수배명단에서 이 씨를 처음 보고 ‘꼭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지난해 7월부터 동료형사와 함께 수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장 형사는 이 씨의 인적사항을 조사하던 중 그가 당뇨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그뒤 이 씨가 다니던 병원을 추적해 그가 정기적으로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에 나타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장 형사가 잠복을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는 벌써 다른 경찰서 두 팀도 잠복해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고 한 70대 노인이 이 씨의 약을 처방받고 돌아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 노인이 이 씨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한 장 형사는 노인의 집 근처에서 잠복을 했지만 3일이 지나도록 이 씨는 나타나지 않았고 노인 또한 집 안에서만 생활했다.
뒤늦게 예의 노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이 파악되면서 수사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노인은 바로 이 씨의 내연녀 B 씨의 아버지였던 것. B 씨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이 씨의 행적을 쫓기 위한 수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B 씨가 살고 있는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는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곳이라서 형사들도 접근이 어려웠다. 특히 이 씨는 차를 이용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서 바로 엘리베이터로 집으로 올라가는 등 거의 외부에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았다. 이 씨의 사진을 본 경비원이 “이사 초창기에 두세 번 보이더니 요즘은 통 보지 못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씨가 그 집에 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그가 완전히 잠적할 가능성이 높기에 더욱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장 형사 등은 B 씨의 동선을 체크하다가 일정한 시간에 주차장에 나타나곤 하는 고급 외제 자동차를 발견하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 씨가 타고 다니는 차량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일 속 자동차 운전자는 10분 거리를 1시간 30분에 걸쳐 주행할 정도의 치밀함을 보였다. 왔던 길을 계속 돌아가면서 미행 여부를 확인했던 것.
그러던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서 누군가를 태우느라 문을 연 문제의 차 안에서 이 씨를 발견한 장 형사는 자신의 차로 이 씨의 차를 가로막았다. 장 형사는 차문을 굳게 닫은 이 씨를 체포하기 위해 차창을 깨려고 시도했지만 외제 자동차의 유리는 끄덕하지 않았고 그 사이에 이 씨는 차를 몰고 도주해버렸다. 나중에 경찰 조사 때 이 씨는 그 길로 자신이 타고 있던 차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자신은 다른 차를 이용했다고 밝혔다.
도피 과정에서 이 씨는 보디가드를 고용해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도 했다. 그는 경찰과 조직폭력배들에게 잡히는 것을 제일 무서워했다고 한다. 특히 조직폭력배의 경우 협박을 당해 돈을 빼앗겨도 경찰에 신고할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후문. 그래서인지 이 씨는 조폭 출신 등의 보디가드들을 고용했다. 이들 보디가드들은 경찰이 찾아오거나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 씨가 도피할 시간을 벌어주는 역할도 했다는 게 경찰관계자의 설명이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어지던 이 씨의 황제급 도피생활은 결국 경찰의 끈질긴 수사에 발목이 잡혔다. 이 씨의 뒤를 계속 쫓던 장 형사는 동료형사와 함께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의 한 식당에서 이 씨를 발견하고 긴급체포해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식당 정문에는 이 씨가 고용한 보디가드들이 지키고 있었다. 보디가드들이 형사들을 발견하고 시간을 지연시키며 이 씨를 도피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용히 뒷문을 이용했던 것.
당시 이 씨는 장 형사 등에게 “나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며 “대단하다”고 첫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가 10개라면 그중에 범죄혐의로 인정하는 것은 2~3개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 그는 3년 동안 600억~800억 원 정도의 재산을 모았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모은 재산은 대부분 주가조작, 횡령 등과 같이 다른 사람의 돈을 불법적으로 편취한 깨끗하지 못한 돈이었다.
사건 피해자들은 이 씨가 잡혔다는 소식에 다들 놀라는 반응이었다. 그간 경찰이 전담반까지 만들어 행방을 쫓았지만 이 씨를 못 잡자 피해자들 대부분은 자포자기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사설탐정까지 고용해 이 씨를 잡으려고 했던 피해자도 있었다.
불법적으로 남의 돈을 가로채 사용하던 이 씨의 1년 4개월에 걸친 호화로운 도피생활은 결국 이렇게 막을 내렸다. 사건을 해결한 장 형사는 “이 씨는 초호화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명의로 된 재산이 한푼도 없었고 대포폰을 이용해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치밀하게 움직였지만 결코 경찰의 수사망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면서 “완전범죄가 존재할 수 없듯 완전한 도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윤구 기자 tru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