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구정 납치살인범 2인조가 본격 수색 3시간여 만에 붙잡혔다. | ||
지난 2003년 6월 10일 새벽 1시경 서울 압구정동의 대로변에는 정적 속에서 여성의 하이힐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대생 김진아 씨(가명·당시 21세)는 대학로에서 열린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김 씨가 살고 있던 H 아파트 일대는 평소 번화가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었지만 새벽 시간에는 버스도 끊기고 인근 상가들도 문을 닫아 마치 썰물이 빠져나간 듯 한적하기만 했다.
그때 압구정역을 나와 대로변을 걸어가던 김 씨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로변 갓길에 세워져 있던 검은색 코란도 차량에 타고 있던 낯선 사내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잠시 후 차량에서는 한 사내가 내렸고 그는 이내 김 씨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야심한 시각, 자신을 쫓아오는 낯선 사내의 발자국 소리에 불안해진 김 씨는 걸음을 재촉했지만 그녀가 빨리 걸을수록 남자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졌다.
불길한 느낌에 김 씨는 무작정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김 씨의 뒤를 쫓아오던 남자는 순식간에 김 씨를 낚아채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비명 한 번 지를 겨를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갓길에 대기하고 있던 코란도 차량이 다가왔다. 남자는 김 씨를 신속하게 차량 안으로 밀어넣었고 그렇게 김 씨를 태운 차량은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
지난 2003년 여름 서울 강남 일대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일명 ‘압구정 여대생 납치살인 사건’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강남경찰서 강력반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강남경찰서 박윤호 경제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눈앞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인명경시풍조와 물질만능주의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특히 1억 원이라는 큰돈을 손에 쥐고도 피해자를 살해한 범인들의 잔악함에 수사팀들은 치를 떨었다. 금지옥엽처럼 키운 딸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납치범들과 피 말리는 협상을 벌였던 아버지의 뜨거운 부정이 결국 물거품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서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더없이 착잡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박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 시각 압구정 일대 대로변은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들이 있을 뿐 인적이 거의 없었다. 따라서 대로변에서 납치사건이 버젓이 일어났지만 목격자가 한 명도 없었고 김 씨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호소할 수조차 없었다. 특히 범인들은 압구정동에 부자들이 많이 살 것으로 여기고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갓길에 차를 대놓고 적절한 범행대상을 물색하고 있던 차였다. 때마침 늦은 시각 집으로 혼자 걸어가던 김 씨는 이들에게 최적의 범행대상이었던 셈이었다.”
미리 준비해 둔 플라스틱 끈으로 김 씨의 손과 발을 결박한 범인들은 망원동의 한강 둔치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당초 계획대로 몸값을 요구하기 위해 김 씨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김 씨의 집에서는 귀가시간이 훨씬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김 씨로 인해 부모들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평소 착실하기만 했던 딸이 이날처럼 늦은 시간까지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느냐며 마음을 안정시키기는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김 씨 부모의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김 씨에게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음을 알리는 단초는 새벽 3시경 김 씨 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범인들은 김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김 씨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을 데리고 있으니 은행 문을 여는 대로 몸값 1억 원을 준비해 여의도 공원으로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김 씨 아버지로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 씨 아버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범인들은 김 씨 아버지의 이런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듯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에 신고할 경우 즉시 딸을 죽여버리겠다’는 내용이었다.”
사회지도층 인사였던 김 씨 아버지는 딸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범인들의 협박에 신고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신고한 것을 범인들이 알고 딸을 살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김 씨 아버지로서는 딸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따라서 김 씨 아버지는 범인들을 최대한 자극시키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써 딸을 돌려받고자 했던 것 같다. 실제로 범인들은 김 씨 아버지에게 10여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어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요구를 들어줄 경우 딸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는 약속을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분 1초 피를 말리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김 씨 아버지로서는 범인들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던 것 같다.”
다음날 은행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1억 원을 현찰로 찾은 김 씨 아버지는 돈을 여행용 가방에 담은 뒤 범인들이 지정한 여의도 공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범인들은 돈이 준비됐다는 김 씨 아버지의 연락에 돈을 받을 장소를 서울 강변도로 난지도 근처 철길 옆으로 급히 변경했다. 현금이 든 가방을 들고 이날 오전 10시께 범인들이 일러준 장소로 향한 김 씨 아버지는 약속대로 가방을 놓고 돌아왔다.
하지만 돈을 받는 즉시 딸을 돌려보내겠다는 약속과 달리 몇 시간이 지나도 김 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오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해진 김 씨 아버지는 오후 2시경 경찰에 딸의 납치사실을 알렸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어디서부터 사건을 풀어나가야 하나 참으로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씨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를 했을 때는 이미 김 씨가 납치된 지 10여 시간이나 지난 상태였다. 장시간 범인들과 같이 있으면서 피해자가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운 심리 상황에 놓여 있을지는 말하나 마나였다. 또 범인들이 김 씨를 데리고 다닌 시간 동안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상황이라 별별 생각이 다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사팀이 걱정했던 부분은 범인들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돈 때문에 범행을 저지른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이들이 왜 김 씨를 상대로 범행을 했는지 또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달리 파악할 길이 없었다. 이어지는 박 팀장의 얘기.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전과가 있는지 등 범인들의 신원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드러난 것이 없었지만 나약한 여대생을 볼모로 잡고 1억이라는 거액을 서슴없이 요구한 잔혹한 납치범이라는 사실을 감안해볼 때 범인들은 분명 위험한 인물들이었다. 언제 돌변해서 피해자의 목숨을 위협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수사팀으로서는 1분 1초가 다급한 상황이었다. 특히 범인들이 돈을 받고서도 김 씨를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석연치 않았다. 특히 김 씨 아버지가 경찰에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범인들의 요구를 들어줬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웠다. 납치사실을 알 리 없던 경찰로서는 범인들이 피해자 아버지에게 10여 차례나 협박 전화를 걸어오는 동안 아무 조치를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의 생존조차 기대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범인들이 돈을 받은 지 여러 시간이 지나도 김 씨를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이들이 애초부터 김 씨를 온전히 돌려보낼 마음이 없었거나 이미 김 씨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수사팀은 특수 추적기법을 총동원해 범인들의 위치 추적에 들어갔다. 수사팀은 김 씨 아버지에게 걸려온 전화의 위치추적을 실시하는 동시에 범인들의 예상 이동경로를 파악, CCTV 등을 확인하는 등 수사망을 좁혀 나갔다. 경찰의 추적이 시작됐다는 것을 범인들이 알게 되면 섣부른 행동을 할지도 몰랐기에 수사팀의 수사는 비밀리에 진행됐다.
다각적인 추적에 들어간 지 약 3시간 만인 이날 오후 5시경 수사팀은 성산대교 북단의 망원지구 한강 둔치에 있던 두 명의 용의 청년들을 발견하고 이들을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박 팀장의 얘기.
“한강 둔치 주변에 용의자들이 타고 있는 세단 차량이 보였다. 세단 차량 뒤에는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코란도 차량이 있더라. 우리는 용의자들이 도주할 만한 모든 경로를 차단시켜놓고 그들을 급습했다. 용의자들은 제대로 반항 한 번 못한 채 그대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이 그렇게 빨리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낼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더라. 차량에서는 김 씨 아버지로부터 받은 1억 원이 나왔는데 두 사람은 이미 5000만 원씩 나눠가진 상태였다. 하지만 김 씨의 모습은 차량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여자애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코란도 차량을 가리키는 거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불안한 느낌은 적중했다. 수색해보니 김 씨는 차량 뒷좌석에 놓인 커다란 가방에 들어있었는데 입에서 거품이 나오는 등 이미 부패가 시작된 상황이었다.”
경찰에 검거된 범인들은 친구 사이였던 박정욱 씨(가명·24세)와 한상현 씨(가명·25세)였다. 조사 결과 이들은 김 씨 아버지로부터 돈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씨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거 당시 이들은 김 씨의 사체를 처리할 문제를 두고 논의 중이었다고 한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김 씨 아버지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한 뒤 한상현은 돈가방을 가지러 가고 박정욱은 차 안에서 김 씨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박 씨는 한 씨로부터 무사히 돈 가방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그런데 계획대로 돈을 챙기고 나니 자신이 인질로 잡고 있는 김 씨가 걸렸던 거다. 약속대로 김 씨를 풀어줄 경우 자신들의 범행이 알려질 것이 두려웠던 박정욱은 김 씨가 강하게 저항하며 ‘당신들 얼굴과 차량을 알고 있다. 곧 경찰에 잡힐 거다’라고 말을 하자 김 씨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한 씨에게 전화를 걸어 ‘여자를 죽였으니 커다란 가방을 하나 사오라’고 시킨다. 검거 당시 이들은 김 씨의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위치가 추적될 것을 우려해 김 씨의 아버지와 연락을 했던 김 씨의 휴대폰까지 이미 버린 상태였다. 사체를 감쪽같이 처리할 방법을 고심하던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밤이 되길 기다려 돌을 매달아 한강에 수장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특히 박 씨 등은 살해 순간 김 씨가 반항하며 손톱으로 할퀴자 김 씨의 손톱에 자신들의 살점이 남아 있을 것을 우려, 피살된 김 씨의 손톱을 깎고 소독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수사팀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그렇다면 잔혹한 납치살인극을 벌인 이들 2인조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고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질렀던 것일까. 조사 결과 서울 마포구에 소재한 한 공고 동창생인 이들은 사건 보름 전부터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박 씨는 범행 수개월 전까지 압구정동의 한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한 씨는 강남의 한 미용실에서 일해온 것으로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었다. 한때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던 이들이 이처럼 무서운 범행을 모의한 것은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조사 결과 범행 당시 이들은 둘 다 거액의 돈이 필요한 상태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 씨는 이혼을 진행 중이던 부인에게 위자료로 1500만 원을 주기 위해, 박 씨는 빚에 쪼들리는 여자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액을 구할 방법이 없자 이들은 ‘부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에서 한탕 크게 하자’는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은 애초에는 부자 동네에 사는 어린이를 유괴해 몸값을 요구, 돈을 나눠 갖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후 두 사람은 각각 코란도 승용차와 여자친구의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압구정동과 연희동 등 소위 부자동네로 불리는 지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유괴대상을 찾지 못하던 중 때마침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가던 김 씨를 발견하고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이 사건은 사건 발생 지역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부촌인 압구정동인 데다가 피해자의 아버지가 사회지도층 인사라는 점, 피해자가 여대생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일부 언론에 ‘압구정 명품녀 납치 살해’ ‘압구정 미모의 여대생 납치사건’ 등과 같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보도돼 피해자 가족들의 가슴에 또 한 번 비수를 꽂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납치된 후 잔혹하게 살해된 김 씨는 당시 알려진 것과 달리 호화스러운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명품족’이 아니라 거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착실한 여대생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는 후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