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붓딸을 살해한 비정한 아버지가 범행 장소에서 현장검증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SBS 화면 캡처 | ||
지난 2003년 10월 25일 오후 10시경 경기도 평택경찰서 관할 지구대로 한 통의 다급한 실종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실종자는 평택에 거주하는 장민지 양(가명·당시 7세)으로 신고를 한 사람은 소녀의 어머니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아파트 인근으로 놀러나간 후 행방을 감췄다는 것이 장 양 부모의 진술이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초등생 여아로 인해 조용하기만 했던 평택시는 발칵 뒤집혔다. 동네마다 장 양의 사진과 인상착의가 실린 전단지가 배포됐고 지역방송국에서 대대적으로 ‘장민지 양 찾기’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보다 못한 주민들까지 경찰을 도와 내 자식을 찾는 심정으로 장 양을 찾는 데 팔 걷고 나섰지만 소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불행히도 장 양은 실종 128일 만에 충남 당진군의 한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이번에 평택경찰서 안중지구대 김건중 팀장이 전하는 사건이 바로 2003년 평택 일대를 들끓게 했던 일명 ‘평택 초등생 살인사건’이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김 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수사 4개월 만에 드러난 범인은 놀랍게도 아이의 의붓아버지였다. 특이한 집안 배경으로 인해 아이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했던 계부에 의해 미처 피지도 못한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에서 수사팀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렵사리 사건의 진상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당시 신고를 받은 경찰은 처음부터 장 양이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수사를 시작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황상 일단 가출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초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장 양은 일곱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또 주변 사람들의 진술에 따르면 장 양은 평소 부모 속 한 번 썩인 일 없이 착실하기만 했다고 한다. 장 양이 사라진 당일도 장 양은 무사히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한 상태였다. 그런 장 양이 부모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고 밤늦게까지 연락 한 번 하지 않을 리 없었다. 실제로 확인 결과 장 양이 스스로 가출할 만한 정황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일이 지나도 장 양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은 누군가 원한관계로 인해 장 양을 납치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장 양 부모를 포함해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평이 상당히 좋았던 장 양 부모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정황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사팀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주변 인물들 중 장 양의 실종과 연관지을 만큼 의심스러운 인물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김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더욱 수사팀을 난감하게 만든 것은 좁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사건 당일 장 양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장 양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자 수사팀은 전단지 수천 장을 배포하고 형사들과 기동대원, 치안센터 인력들까지 동원해 장 양을 찾아나섰다. 당시 지역 인근 정화조와 야산을 샅샅이 뒤진 것은 물론, 길 잃은 장 양을 맡아뒀을 가능성이 있는 보육원까지 형사들이 급파돼 수색에 들어갔다. 당시 평택 일대에서 안 뒤진 곳이 없을 정도였다.”
딸을 찾겠다는 장 양 부모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특히 당시 장 양의 아버지는 지역 유선방송에도 출연해 ‘딸을 찾아달라’며 지역주민들을 상대로 간절한 읍소를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대낮에 집을 나가 홀연히 사라진 아이. 장 양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만약 누가 장 양을 데려간 것이라면 대체 어떤 목적 때문이었을까. 많은 경찰 인력이 동원된 것은 물론 지역 주민까지 합세해 장 양을 찾아나섰지만 수사는 한동안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하지만 항상 예기치 않은 곳에서 수사의 실마리가 풀리게 마련. 현장 주변과 장 양의 주위 사람들을 상대로 추가 조사를 진행하던 수사팀의 레이더에 의외의 수상한 인물이 포착됐다. 다름 아닌 장 양의 아버지 박영국 씨(가명·32세)였다. 다음은 김 팀장의 얘기.
“조사 결과 장 양은 장 양의 어머니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로 드러났다. 장 양은 친어머니가 현재 남편인 박 씨와 몇 해 전 재혼하면서 데리고 들어온 아이였던 것이다. 즉 박 씨는 장 양의 의붓아버지였던 셈이다. 수사팀과 대면할 때마다 박 씨는 말수가 없고 몹시 어두운 표정이었다. 당시에는 딸을 잃어버린 슬픔에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켜볼수록 그의 태도에서는 왠지 모르게 어색한 느낌이 풍겨졌다.”
조사 결과 운전기사로 근무하고 있었던 박 씨는 성실하고 반듯한 사람으로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평판이 좋았다. 또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도 딸을 낳고 사는 등 부부관계도 좋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수사팀이 박 씨를 의심스런 눈길로 보고 장 양 실종의 유력한 용의자로 올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다음은 김 팀장의 얘기.
“박 씨는 상당한 효자로 정기적으로 시골집에 내려가곤 했는데 장민지 양이 사라진 그 날도 그가 시골 집에 가는 날이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행적을 묻는 수사팀에게 박 씨는 충남 합덕에서 동서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고 진술했다. 조사 결과 실제로 박 씨는 그날 저녁 고향 집에 갔었고 친구와 술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혹시나 해서 기지국 조사를 해보니 박 씨가 동서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그 시각의 발신지가 평택 안중인 게 아닌가. 다시 말해 장 양이 사라진 시각에 박 씨는 합덕이 아니라 이 지역에 있었다는 의미였다. 수사팀으로서는 박 씨와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박 씨는 장 양의 실종과 관련이 없다며 혐의점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고 한다. 이어지는 김 팀장의 얘기.
“박 씨는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기지국 조사내용에 대한 수사팀의 추궁에 박 씨는 ‘그릇 가지러 잠깐 왔었다’라는 식으로 변명을 했다. 하지만 부인과의 대질신문 과정에서 그의 얘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그 얘기를 들은 박 씨의 부인이 ‘당신이 언제 그릇을 가지러 왔느냐’며 되물은 것이다. 거짓말이 들통 난 뒤에도 박 씨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변명을 했지만 부인의 진술과 맞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수사팀은 범인이 계부였던 박 씨라고 확신했다.”
박 씨는 자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이런저런 말로 둘러대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거짓말이 자신의 혐의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수사팀의 계속된 추궁에 박 씨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범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 씨의 자백에 따라 수사팀은 충남 당진군 합덕읍의 한 야산에서 장 양의 사체를 발굴함으로써 평택 일대를 발칵 뒤집어놨던 이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장 양이 실종된 지 꼭 128일 만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박 씨는 자신의 의붓딸인 장 양을 왜 그렇게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일까. 말수도 없는 데다가 성실한 사람으로 평판 또한 좋았던 박 씨가 그처럼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동기는 수사팀으로서도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박 씨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범행 동기에 수사팀들은 말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김 팀장의 얘기.
“앞서 밝혔듯 장 양은 친어머니가 이혼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로, 박 씨와 재혼하면서 데리고 온 아이였다. 장 양의 어머니가 재혼이었던 것과 달리 박 씨는 초혼이었다고 한다. 박 씨가 결혼할 사람이 딸까지 있는 이혼녀라는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긴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실을 알았을 경우 ‘총각결혼’인 박 씨네 집안 사람들이 장 양의 어머니를 탐탁지 않게 여길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부인이 데리고 온 장 양이었다. 집안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장 양을 데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박 씨의 집안에서는 아무도 장 양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장 양이 성장할수록 그녀의 존재를 숨기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실제로 박 씨는 장 양을 호적에도 동거인(조카)으로 올려놓고 살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평소 박 씨는 장 양과 여느 부녀지간과 다름없이 잘 지냈다고 한다. 의붓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충격을 받을 부모와 친지들을 생각하면 장 양은 박 씨가 결코 드러낼 수 없는 존재이긴 했지만 부부 사이가 워낙 좋았던 탓에 장 양에게도 친딸과 다름없이 애정을 쏟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친딸이 자라면서 더욱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김 팀장의 얘기.
“친딸이 자라면서 장 양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등 사람들 앞에서 장 양과 관련된 얘기를 많이 하더라는 거다. 박 씨는 이러다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장 양의 존재가 알려질까봐 심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고 한다. 부인이 이혼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는데 딸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경우 가족들이 받을 충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던 거다.”
하지만 언제까지 비밀이 유지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또 장 양이 커갈수록 의붓딸의 존재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장 양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끼던 박 씨는 결국 의붓딸을 없애버리자는 위험한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사건 당일 박 씨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장 양을 데리고 집에서 40㎞ 정도 떨어진 충남 당진군 성동리의 야산으로 향했다.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한 박 씨는 장 양에게 ‘숨 참는 놀이’를 하자며 그녀의 입을 손으로 막아 질식시킨 후 계곡에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의붓딸을 살해한 박 씨는 죄책감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사건으로 장 양의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등 가정이 사실상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는 후문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