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화성경찰서 정남파출소 금중규 형사가 전하는 사건이 약 3년 전 화성의 작은 동네를 발칵 뒤집어놨던 일명 ‘마도 계모 살해사건’이다. 화성경찰서 강력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했던 금 형사는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당시 실종자의 생사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우연히 특정지역에서 사체를 찾아낸 것이 수사의 전환점이 됐다. 또 용의자에 대한 심증을 갖고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 집중적인 수사를 진행했기에 사건을 빨리 해결하고 공범까지 찾아낼 수 있었지 않나 싶다. 돈 앞에서는 부모형제도 없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데 돈이 뭔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던 사건으로 기억된다.”
우선 사건 초기 상황에 대한 금 형사의 얘기를 들어보자.
“주변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강 씨는 1월 28일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홀로 살던 노인이 갑자기 사라지자 가족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수사팀은 강 씨가 자발적으로 가출했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즉시 범죄 연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
강 씨는 재혼한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오던 인물로 주변에서도 상당히 평이 좋았다. 적어도 강 씨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웃들의 증언이었다. 수사팀은 강 씨의 실종 당일 정황을 추적하는 한편 강 씨의 가족 및 친지, 주변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으나 특이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은 금 형사의 얘기.
“수사를 해도 이렇다 할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강 씨가 실종 당일 집을 나섰다는 것을 본 목격자도 없으니 참으로 갑갑한 상황이었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그려보다 보니 급기야 강 씨가 혹시 자살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강 씨는 재혼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데다가 1년 전 하나뿐인 친아들마저 자살해 어떻게 보면 참으로 딱한 상황에 처해 있던 여인이었다. 환갑이 지난 여인이 외로움이나 우울증 등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남편의 묘 자리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지를 동원해 강 씨 남편의 무덤에 찾아갔다.”
3월 11일 오후 수사팀은 강 씨 남편의 묘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팀원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왔다. 이어지는 금 형사의 얘기.
“강 씨 남편의 묘 근처에서 사람의 갈비뼈로 보이는 것이 발견됐다. 추운 겨울이라 완전히 부패된 상태는 아니었는데 짐승들이 파헤친 탓인지 사체의 부분 부분이 훼손돼 뼈가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좀 더 파헤쳐보니 발가락뼈도 보이더라. 사람의 사체가 분명했다. 사체는 반듯하게 누워 있는 상태로 20~30㎝ 정도의 깊이로 파묻혀 있었다. 누군가 땅을 얕게 파서 다급히 사체를 유기해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과학수사팀의 정밀 감식 결과 사체의 주인은 실종된 강 씨로 판명됐다.”
이렇게 해서 강 씨는 실종된 지 50여 일 만에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감식 결과 강 씨는 자살이 아니라 타살된 것으로 판명됐다. 누군가 강 씨를 살해한 뒤 사체를 이곳으로 옮겨와 묻은 것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것일까. 당시 수사팀이 주목한 것은 끈질긴 탐문수사 결과 확보해놓은 이웃주민의 진술이었다. 이어지는 금 형사의 설명.
“한 주민에 따르면 ‘강 할머니가 사라졌다는 그 날 할머니 집 앞에 이상한 봉고차가 와 있더라. 사실은 그 전날도 낯선 차량이 세워져 있는 것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낯선 차량이 왔다간 후로 강 씨가 사라졌다는 것은 그 차량이 이번 사건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사 결과 더욱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강 씨네 집에 있던 쌀도 없어졌을 뿐 아니라 강 씨가 키우던 개도 사라진 것이었다. 여러 정황상 단순 강도살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강 씨가 ‘방문자’를 맞아들인 점으로 보아 면식범에 의한 범행이라고 직감한 수사팀은 강 씨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조사를 벌였다. 강 씨에게는 재혼으로 맺어진 의붓자녀들이 있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미 출가해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딸에게서는 아무런 의심스런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주변사람들의 진술 등을 토대로 수사팀이 주목한 사람은 바로 강 씨의 의붓아들 김영식 씨(가명·당시 38세)였다. 다음은 금 형사의 얘기.
“처음부터 김영식을 범인으로 볼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오히려 김영식은 겉보기에 강 씨의 실종을 가장 속상해하던 인물이었으니까. 당시 수사팀이 사건 수사 진행을 위해 수차례 회의를 했는데 이 자리에 참석한 김영식은 수사팀의 무능함을 탓하며 우리를 무척 닦달하곤 했다. ‘도대체 형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거냐. 우리 엄마도 못 찾고 뭐 하는 거냐. 수사를 하긴 하는 거냐. 빨리 우리 엄마 찾아내라’고 항의를 하며 난리를 쳤던 거다.”
비록 의붓어머니이긴 했지만 끔찍하게 어머니를 생각하는 모습에 수사팀은 처음에 김 씨를 의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사를 진행할수록 김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볼 수 있는 몇 가지 정황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금 형사의 얘기.
“중장비 기사로 일하고 있던 김영식은 그때까지 미혼 상태였는데 나이 차가 좀 나는 연상의 여인과 동거 중이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당시 김 씨가 사채 등으로 무려 수천만 원의 빚에 쫓기고 있던 급박한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불현듯 뇌리에 ‘혹시 돈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수사팀은 우선 강 씨의 재산관계를 알아봤다. 시가로 수억 상당의 땅이 강 씨 앞으로 돼 있었는데 그중 김영식 등과 공동소유로 돼 있는 논밭도 수천 평 있더라. 수사팀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김영식은 평소 의붓어머니인 강 씨와 사이가 나쁘진 않았지만 돈 문제로 이따금씩 갈등을 빚어왔던 인물이었다. 특히 휴대폰 기지국 조사 결과 김영식이 강 씨가 사라진 날 강 씨의 집에 갔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사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수사팀은 몇몇 정황들을 토대로 김 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그를 추궁했다. 하지만 김 씨는 펄쩍 뛰며 혐의점을 부인했다. 강 씨의 실종에 대해서도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이다.
김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사팀은 뭔가 석연찮은 점을 파악하게 된다. 특히 사건 전날과 당일 강 씨 집 앞에 김 씨 소유가 아닌 낯선 차량이 와 있었다는 사실은 공범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먼저 의심을 살 수 있는 인물은 김 씨와 가장 가까운 사이였던 동거녀였다. 하지만 사건 발생 당시 김 씨의 동거녀는 제주도에 간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이 공범자로 지목한 인물은 바로 김 씨 동거녀의 남동생인 조민호 씨(가명·당시 38세)였다. 수사팀은 유력한 공범 혐의자인 조 씨를 상대로 조사를 벌이기로 한다.
하지만 조 씨는 그해 3월 초에 일어난 뺑소니 교통사고로 구치소에 수감 중인 상태였다. 수사팀은 구치소로 형사들을 급파해 조 씨를 조사하면서 수감 중인 조 씨와 김 씨 사이에서 일종의 심리 수사전을 벌였다. 그 결과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조 씨로부터 범행사실을 자백받기에 이른다. ‘어머니를 죽여주면 2000만 원을 주겠다’는 김 씨의 제안에 따라 범행에 가담했다는 것이 조 씨의 진술이었다. 이제 범행을 완강히 부인해온 김 씨로부터 자백을 끌어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어지는 금 형사의 얘기.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었던 탓일까. 얼마 후 김영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수원의 한 화장터 인근에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찾아가 보니, 그토록 범행을 극구 부인해오던 김영식이 서럽게 흐느끼면서 ‘내가 죽였습니다’라고 하는 거다. ‘엄마가 죽으면 재산이 모두 내 것으로 될 줄 알았다’는 것이 김영식의 말이었다. 수사팀의 추리대로 유산상속 과정에 대해 무지했던 김 씨는 강 씨가 죽어도 재산이 자신 앞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재산에 눈 먼 의붓아들에 의해 애꿎은 강 씨가 희생된 셈이었다.”
조사 결과 김 씨는 사건 전날인 2월 27일 강 씨의 집에 혼자 찾아갔다가 돈 관계로 강 씨와 심하게 다투고 돌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강 씨가 재산문제에 대해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김 씨는 급기야 위험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처남뻘인 조 씨와 함께 강 씨의 집에 찾아가 강 씨를 목 졸라 살해하고 만 것이다. 이들은 조 씨의 차량에 사체를 싣고 수원의 칠보산으로 가 김 씨의 시신을 태워 없애려 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 날이 밝아오자 범행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김 씨 아버지의 묘지 근처로 사체를 옮긴 뒤 가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사체를 태운 칠보산에서 현장감식을 실시하는 한편 범행에 사용된 봉고차와 석유, 삽 등을 증거로 확보하고 수사를 종결지었다. 존속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 씨는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