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한여름 더위가 시작된 지난 2001년 6월 중순.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한 다세대 주택 앞에는 아침부터 동네 주민들이 잔뜩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피살자는 1년여 전 시골에서 상경, 홀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던 10대 소녀였다. 이번에 구리경찰서 강력1팀 한인선 팀장이 전하는 사건은 친딸을 엽기적으로 살해한 어느 잔악한 아버지에 대한 얘기다.
광진경찰서 강력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한 팀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수사 결과 드러난 범인은 놀랍게도 소녀의 친아버지였다. 범행수법이 너무 잔악했다는 점도 충격적이었지만 범행동기 역시 너무 어처구니없는 것이어서 또 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짧은 삶을 외롭게 살아온 소녀는 자신이 가장 믿고 따랐던 아버지에 의해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고통스럽게 죽은 것도 모자라 마지막길까지 외로웠던 소녀의 명복을 비는 바람으로 이 사건을 소개하기로 한다.”
때 아닌 살인사건에 조용하던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한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처음 신고를 한 사람은 이웃 주민이었다. 반지하 방에 사는 부녀가 수일째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집안에서는 인기척도 없다고 하더라. 게다가 집안에서 이상한 냄새까지 난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 이웃 주민들의 얘기였다.”
이웃들에 따르면 문제의 집에 거주하던 사람은 김필규 씨(가명·41)로 당시 그는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인 딸 김미애 양(가명·당시 11)과 단둘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부녀는 동시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부녀를 두고 동네에서는 이상한 말이 떠돌기도 했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는 미애 양이 등하교하는 모습도 통 보이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부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이웃들이 급기야 문을 두드려 보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이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즉시 김 씨 부녀가 사는 집으로 출동했다. 다음은 한 팀장의 얘기.
“집 앞에서부터 이상한 냄새가 진동했다. 문을 수차례 두드려 봤으나 신고한 주민의 말대로 집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문을 따고 들어서니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무언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역하게 올라오는 이 냄새…. 분명 사체가 썩는 냄새였다. ‘아, 이거 심상치 않구나’라는 직감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조심스레 방안에 발을 들여놨다.”
한낮이었지만 반지하라 방안은 어두컴컴했다. 코를 움켜 쥐고 간신히 좁은 방안에 들어선 수사팀들은 이내 못 볼 것을 본 듯 고개를 돌려야했다. 이어지는 한 팀장의 얘기.
“그 자리에서 몇 초 동안 그대로 굳어 버렸다는 게 맞는 말일거다. 다들 아무 말도 못했다. 단칸방에는 한 여자 아이가 양 손이 운동화끈으로 결박된 채 물이 가득 담긴 바가지에 머리가 처박힌 상태로 죽어 있었다. 바로 세입자 김필규의 딸 미애였다. 가까이 가서 살펴본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미애의 온몸이 피투성이였던 것이다. 미애는 예리한 흉기에 목과 이마 등이 마구 찔려 있었는데, 특히 머리와 얼굴 부분은 둔기로 맞아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애는 발목의 아킬레스건까지 잘려진 상태였던 것. 잔혹한 살인 현장을 수없이 누비고 다닌 수사팀들도 어린 여아의 잔혹한 시신 앞에서는 말을 잃었다.”
두고 볼 것도 없이 명백한 살인사건이었다. 그것도 관할지역 내에서 몇 년에 한번 날까말까한 잔혹한 엽기살인사건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에 불과한 여아를 누가 왜 이토록 잔혹하게 죽여야 했을까.
사체 및 현장 상황으로 짐작컨대 미애는 이미 살해된 지 수일이 지난 상태였다. 더운 날씨로 발견 당시 미애의 사체는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 중이었다. 구더기와 파리가 들끓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 한 팀장의 얘기다. 수사팀원들 사이에서 ‘이건 사람의 짓이 아니다’ ‘정신병자 아니면 악마의 소행일 것’이라는 얘기나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살인행각으로 볼 때 범인은 아이에게 깊은 원한이라도 진 듯했다. 하지만 불과 열 살 남짓한 여아가 누구에게 그토록 깊은 원한을 샀단 말인가. 수사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현장을 면밀히 살펴본 수사팀은 일단 ‘강도살인 혹은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다’라는 쪽으로 수사의 가닥을 잡았다. 김 씨네 부녀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이 없다는 점, 집안에 외부인의 침입 흔적이 일절 없고 성폭행 흔적도 없는 점, 범행 도구가 모두 집안의 물품이었던 점 등은 수사팀의 판단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수사팀이 주목한 인물은 미애의 아버지 김필규 씨였다. 다음은 한 팀장의 얘기.
“김필규는 이미 어디론가 잠적한 상태였다. 미애가 모습을 감춘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고 하더라. 데리고 살던 딸이 그 지경이 됐는데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의심을 살 만했다. ‘설마 친아버지가 딸을 이렇게까지 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든 수사에 예외란 없는 법이었다. 우리는 즉시 김필규의 행적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김 씨는 수년 전 부인과 이혼하고 공공근로 사업 같은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살아온 인물이었다. 김 씨는 수년간 구의동의 싸구려 반지하 단칸방에서 홀로 지내 왔는데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지난해 억지로 미애 양을 끌고 올라 왔다는 것이었다. 한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수사팀은 김 씨의 연고지 등을 중심으로 그의 행적을 추적하는 동시에 김 씨에 대한 자료들을 수집하는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김 씨는 평상시에는 딸과 무리없이 잘 지내는 듯 보였다고 한다. 비록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김 씨는 딸에게 살갑게 대했다는 것이 이웃들의 얘기였다. 부인과 헤어진 후 정붙일 곳이 없었던 김 씨에게 하나뿐인 혈육인 미애는 그나마 지친 삶의 활력소 같은 존재였던 셈이다. 하지만 김 씨는 분명 문제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정신을 잃을 만큼 술을 많이 마시곤 해서 주변 이웃들의 우려를 샀다고 한다. 게다가 시시콜콜한 일로 사고를 쳐서 폭력전과까지 있는 인물이었다. 다음은 한 팀장의 얘기.
“김필규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폭력팀 형사 한 명이 ‘아, 이 사람 알아요. 결국 사고쳤네’라고 아는 체를 했다. 과거 김필규는 폭행혐의로 폭력팀에 잡혀 와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용인즉 길거리에 전단지 붙이러 다니는 여자를 무턱대고 폭행해서 끌려 왔다는 것이었다. 듣고보니 정신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인물 같았다. 그런데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형사가 미애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당시 경찰서까지 쫓아왔다는 거였다. 그 어린 것이 경찰서까지 와서 전전긍긍 애를 태웠나 본데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어찌나 울컥하던지…. 폭력팀 관계자들 중 상당수가 미애를 ‘똘똘하고 예쁜 아이’로 기억했다. 그런 미애가 살해됐다는 소식에 다들 믿을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를 향한 수사망은 점점 조여들었고 수사팀은 사건 발생 사흘 만에 김 씨를 긴급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김 씨는 검거 당시 딸의 죽음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뗐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팀이 현장에서 수집한 증거들과 그의 행적 조사에 대한 기록들을 들이밀자 김 씨는 결국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김 씨가 딸을 죽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 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건 당일은 13일 자정께였어요. 미애가 계속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었나봐요. 당시 그 컴퓨터는 넉넉지 않은 미애네를 위해 구에서 특별히 마련해 준 것이라고 해요. 생전 처음으로 컴퓨터를 갖게 된 미애가 얼마나 좋았겠어요. 미애도 다른 애들처럼 컴퓨터 게임에 한창 빠져 있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어요. 미애가 자정이 돼도 계속 컴퓨터만 하고 있으니까 김 씨가 ‘컴퓨터 그만 꺼라’고 했대요. 그런데 그날 따라 미애가 말을 안 듣더라는 거예요.”
이것이 잔혹한 살인극의 시작이었다. 김 씨가 밝힌 범행동기에 수사팀들이 경악한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어지는 한 팀장의 얘기. “‘컴퓨터 그만하고 자라’는 얘기는 여느 집안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다 하는 얘기잖아요. 컴퓨터 게임 문제로 자식과 실랑이 한번 안해 본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김 씨 말로는 미애가 평소 컴퓨터 게임만 하고 귀신영화를 빌려보는 게 못마땅했었나 봐요. 그런데 어이없게도 김 씨가 딸을 그토록 잔혹하게 죽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어요. 김필규 말로는 야단을 치니까 미애가 자신을 확 쏘아보는데 눈에서 순간 광채가 번쩍번쩍 나더라는 거예요. 살기에 가까운 그런 광채였다나….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망치로 마구 때리고 찌르고 말았다는 거예요. 딸이 외계인을 만나고 왔다나 어쨌다나. 범행 당시 김 씨는 제 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조사받을 당시에도 횡설수설 하더라구요.”
어려운 형편이지만 하나뿐인 딸을 잘 키워보겠다고 데려온 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럴거면 외갓집에서 그냥 살게 놔두지, 굳이 왜 데려왔냐’는 형사들의 말에 김 씨는 ‘이성을 잃어 버렸다’며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처 피지도 못한 딸을 죽인 아비의 마음이 어찌 무덤덤할 수 있을까. 김 씨는 뒤늦게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