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덕 씨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부인 박완금 씨를 22년째 돌보며 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손님이 오셨는데 예쁘게 하고 있어야지요.”
남편 김 씨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누워 있던 부인 박 씨를 일으켜 앉히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정리해 준다. 한 평 남짓한 박 씨 침대 사방으로는 박 씨 눈높이에 맞춰 TV와 전화기 등이 진열돼 있다. 침대 위 천장과 벽면에는 남편 김 씨가 부인을 위해 타이핑 해둔 성경 문구들이 붙어 있다. 손재주가 좋은 남편 김 씨가 전신마비인 부인 박 씨를 위해 만들어 놓은 ‘여왕님의 왕국’이나 다름없는 공간이다.
부인 박 씨도 남편 손재주 칭찬에 여념이 없다. 박 씨는 “혼자 있을 때는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텔레비전도 봐요. 나 혼자 심심하지 않게 우리 아저씨가 집을 다 고쳐 놨어요. 한걸음 안에서 다 할 수 있도록. 원래도 손재주 좋던 사람이 나 때문에 더 좋아졌지 뭐”하며 웃어 보인다.
김동덕, 박완금 부부의 신혼 시절 모습.
하지만 김 씨 부부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10년째 되던 해, 서산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수원으로 올라오던 중 큰 교통사고가 났다. 김 씨 부부 차를 들이박은 트럭운전기사는 만취상태에 보험도 들어놓지 않은 무보험 운전자였다. 이 사고로 부인 박 씨는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목뼈를 지나는 신경을 다쳐 목 아래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전신마비 판정을 받았다.
김 씨는 “병원에서 저 정도로 다친 사람 중에 살아난 사람은 없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그때 그 심정은 말로 표현을 못하겠어요. 그런데 이틀 후에 이 사람이 눈을 뜨는 게 아니겠어요. 그저 너무 감사했어요. 손 하나 까딱 못해도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했어요”라고 담담하게 그때의 기억을 털어놨다.
김동덕 씨는 교통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부인 박완금 씨를 22년째 돌보며 살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그 날 이후로 김 씨는 24시간 부인 박 씨 곁을 지키며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10분마다 아내의 자세를 바꿔주고, 폐기능이 떨어져 호흡이 힘든 부인의 배를 눌러주면서 호흡하는 걸 도왔다. 행여나 손발이 그대로 굳어버릴까 팔 다리를 마사지 해주는 것도 하루 일과가 됐다. 박 씨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 밥을 먹이는 것도 모두 김 씨의 몫이다. 그런 김 씨도 견디기 힘든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부인 박 씨의 잔소리다.
김 씨는 “나는 털털한 편인데 이 사람은 엄청 깐깐해요. 물건이 흐트러져 있거나 집안이 어지러우면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는데 뭐 남자인 제가 하는 게 얼마나 마음에 들겠어요. 아휴, 우리 집사람 말 그대로 입만 살았다니까요”라고 농을 던지며 부인 박 씨를 놀린다.
약이 오른 부인 박 씨는 새초롬하게 눈을 흘기더니 금세 “우리 아저씨가 성격이 참 느긋하고 사람이 좋아요. 그런데 나 때문에 성격이 급해졌어요. 내가 24시간 사람이 필요하고 호흡도 힘들다 보니까 급할 때는 초를 다투거든요. 뭐 가끔 잔소리는 해도 내가 어떻게 우리 아저씨한테 섭섭할 수가 있겠어요”라고 말했다.
박완금 씨는 요즘 ‘태블릿PC 삼매경’에 빠졌다. 손을 쓰지 못하는 박 씨는 PC용 펜을 입에 물고 인터넷 검색 등을 한다.
부인 박 씨도 “의견이 백프로 맞을 수 없으니까 당연히 많이 다투지요. 그런데 우리 아저씨는 나 자세도 바꿔 줘야 하고, 코도 닦아줘야 하고, 호흡도 도와주고 해야 하니까 싸워도 10분 후에는 만지고 얘기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나쁘다고 해야 하나.(웃음) 그래도 나는 우리 아저씨가 섭섭한 소리해도 하나도 섭섭하지 않아요. 우리 아저씨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라고 말한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 김 씨도 “사람들이 나보고 천사라고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나는 천사인 거 같아요(웃음)”라고 덧붙여 방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에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날도 있었지만 김 씨는 부인이 자신의 옆에서 숨 쉬고 있는 지금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 방안에 우리 집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난 어떻게 숨 쉬고 살 수 있었을까 앞이 깜깜해져요. 힘을 내서 제 곁에 남아 준 부인이 너무 예쁘고 고맙습니다”라며 아내의 손을 꼭 붙잡으며 웃어 보였다. 두 부부는 공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그런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충남 서산 =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부인 박완금 씨 24시 “요샌 큰아들이 사준 태블릿PC 재미에 푹” 9년 전부터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동덕 씨(56)는 새벽 5시 30분이면 집을 나선다. 부인 박완금 씨(여·57)의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은지 새벽에도 몇 번씩 잠을 깨는 김 씨지만 아직까지 체력 하나는 자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사고 나고 나서 한동안 직업을 가질 수 없었어요.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하니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해서 한 일년간은 집사람을 차에 태우고 붕어빵 장사도 해봤어요. 그런데 아내 돌보면서 장사를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라며 “그러다 9년 전에 환경미화원 모집한다고 해서 면접을 봤어요. 30kg 쌀포대 들고 오래 서있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윗몸일으키기도 했는데 체력시험에서 1등을 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아내 업고 다니려면 다리 힘도 있어야 하니까 꾸준히 조깅을 했거든요. 그게 효과가 있었나봐요”라고 말했다. 모든 걸 부인의 존재로 귀결시키는 김 씨의 애틋한 사랑방식이었다. 김 씨가 자리를 비우면 10분 거리에 사는 박 씨의 언니가 박 씨의 활동도우미 역할을 한다. 김 씨의 새벽일이 끝나면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김 씨는 부인이 보고 싶은 마음에 점심은 꼭 집에서 챙겨먹으려고 한다. 김 씨는 “나야 나가서 일하면서 사람 만나고 하지만 우리 집사람은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중간에 집에 오면 집사람이랑 얘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고, 밀린 집안일도 해놓고 해요”라고 말했다. 부인 박 씨는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는 동안은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요즘 박 씨에게는 또 다른 취미가 하나 생겼다. 큰아들이 선물한 태블릿 PC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남편이 만들어준 PC용 펜을 연결한 막대를 입에 물고 태블릿 PC를 열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박 씨는 “태블릿 PC로 지인들이랑 카카오톡도 하고 예쁜 자연사진도 감상해요. 된장은 어느 가게가 맛있는지, 과일이나 농산물은 어디가 저렴한지 검색도 하고요”라며 “이게 큰 소일거리예요. 어디가려면 고속도로는 어디가 빠른지, 음식점은 어디가 맛있는지도 이걸로 알아봐야 하니까요. 사고 싶은 것 있으면 쇼핑몰 들어가서 찾아보기도 해요. 컴퓨터는 몰라도 이거(태블릿 PC)는 우리 아저씨보다 제가 더 잘 사용해요”라고 으쓱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점심시간이 끝나는 오후 2시에 다시 일터로 향했다 저녁이면 집에 돌아오는 김 씨는 부인에게 일과를 보고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 달이면 산달인 당숙이(암컷 당나귀)가 새끼를 낳으면 누구한테 분양을 해야겠다’거나 ‘밖에 날씨가 춥다’ 하는 소소한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부인 박 씨는 남편 말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박 씨는 “남편이 애정표현보다는 위로를 많이 해준다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하루를 마무리 하는 데 큰 힘이 돼요”라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배] |
또 하나의 가족 당돌이·당순이 “집사람 마차 태워 나들이 갈 거예요” 김동덕 씨(56)의 충남 서산 집에는 김 씨 부부 버금가는 인기스타가 있다. 4년 전 김 씨 부부와 함께 살게 된 당나귀 부부 당돌이와 당숙이다. 김동덕 씨가 기르는 당나귀 ‘당돌이’와 ‘당순이’. 부인 박완금 씨(여·57)는 “이 사람이 원래 결혼할 때부터 말을 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말은 관리도 어렵고 비싸잖아요. 그렇다고 소를 타고 다닐 수도 없고(웃음)”라고 말했다. 그런 김 씨가 찾은 동물이 당나귀였다. 말보다는 가격도 저렴했고, 잡식성이라 따로 먹이를 챙겨주지 않아도 무엇이든 잘 먹었다. 더위나 추위에도 강하고 김 씨가 올라타도 너끈할 만큼 힘도 좋았다. 하지만 고집이 센 당나귀와 친해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나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김 씨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김 씨는 “처음 당나귀가 집에 오는데 그렇게 설레더라고요. 그런데 이 녀석이 집 앞에까지 와놓고서는 한발자국도 안 움직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때만 해도 당나귀의 습성을 잘 모르니까 사람 고집으로 당나귀를 다루려고 했어요”라며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당나귀 공부를 해보니 사람 고집으로 이기려 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먹이도 주고 사랑도 주고 비위도 맞춰 주면서 조금씩 친해진 거예요. 이제는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들어요. 우리 집사람한테 잔소리 듣거나 혼나면 당돌이한테 하소연도 하고 해요. 내 마음을 다 이해하는 거 같아서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김 씨 부부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도 당돌이와 당숙이가 집으로 오면서부터였다. 김 씨는 “당돌이랑 당숙이 때문에 방송도 탔어요. 방송에서는 그림이 중요하니까 당돌이 타고 다니고 슈퍼 가는 모습도 보여주긴 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아요. 이 녀석 둘이 붙어있을 때는 엄청 싸우다가도 둘 중에 하나 떨어뜨려 놓으려 하면 난리가 나요. 방송 촬영할 때 한번 당돌이 탄다고 나오라고 했더니 당돌이는 안 움직이지 당숙이는 울타리 넘어 당돌이 옆으로 오지 난리도 아니었어요. 둘이 죽고 못살아요”라고 말했다. 당돌이와 당숙이를 보려고 일부러 외지에서 김 씨네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김 씨는 “당나귀 보러 와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당나귀 예쁘다 해주니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동네 사람들은 표현을 안 해요. 외지사람들은 당돌이 당숙이랑 인증샷도 찍고 하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한번 차가지고 와서 슥 보고 가고 슥 가요. 충청도 사람들이 애정표현에 서툴잖아요”라고 털어놨다. 김 씨는 “이 녀석이 우리 집사람 호강도 시켜줬어요. 지금은 겨울이라 마차는 넣어뒀는데 날 따뜻해지면 우리 당돌이랑 당숙이랑 집사람이랑 마차 끌고 나들이 나가려고요. 나는 당돌이 당숙이 없으면 못살까봐 걱정이에요. 당돌이 당숙이가 건강하게 우리 부부랑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