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광주동부경찰서 김영근 형사가 전하는 사건은 지난해 초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탈북자 이금숙 씨 살해사건’이다. 한 남자의 자백으로 드러난 이 사건은 남편이 아내를 무참히 살해, 암매장했다는 사실 외에도 피살자가 탈북자 출신이자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이금숙 씨로 밝혀지면서 큰 충격을 준 바 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해 장밋빛 코리안드림을 꿈꿨던 이 씨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남편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부인을 죽였다는 남자는 광주시 광산구 신가동에 사는 김우석 씨(가명·37)였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형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25일 저녁 김 씨의 작은아버지에게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조카(김우석)가 아내를 죽인 것 같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작은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일’이 터진 게 벌써 수일이 지난 것 같은데 조카가 자살하려고 여러 차례 마음을 먹다가 어렵게 자수를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와 안면이 있는 작은아버지가 설득해 일부러 연락을 해 온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살인을 했다는 말에 머리가 쭈뼛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시급한 것은 당장 당사자를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었다. 자백을 결심하기까지는 수많은 갈등을 했을 터. 지체할 경우 마음을 달리 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끊은 김 형사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찰서 앞에서 김 씨를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김 씨는 김 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작은아버지와 친형의 손에 이끌려 나타났다.
“일단 조사실 안으로 데려오긴 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았다. 김 씨는 스스로도 자신의 범행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연신 ‘죽고 싶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그는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대로는 조사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 나는 일단 김 씨를 안정시키는 데 주력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그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12일 전 부인을 살해하고 암매장했다는 거였다.”
이것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김 형사는 조사를 진행하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살해된 김 씨의 부인이 탈북자 출신의 아이스하키 선수 이금숙 씨(당시 25세)라는 사실이었다. 북한에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이 씨는 2000년 가족들을 남겨두고 혈혈단신으로 탈북, 중국으로 건너갔고 몇 년 후인 2004년 7월에 한국에 입국했다. 이 씨는 재능을 살려 한국에서도 2005년 3월부터 1년 3개월 동안 여자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의 만남은 2006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 씨는 탈북자 출신의 한 사람과 ‘형님 동생’ 하는 사이로 지내왔는데 이 사람이 혼기가 지나도 결혼 못하고 있는 김 씨를 안쓰럽게 생각해 중매를 했다. 그 상대가 바로 이금숙 씨였다. 결국 두 사람은 맞선을 본 지 5개월 만인 그해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열 살이 넘는 나이 차에도 두 사람은 행복한 앞날을 설계하며 새출발을 했다. 결혼과 함께 이 씨는 아이스하키를 그만두고 김 씨를 따라 광주에 정착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는 게 김 형사의 얘기다.
“김우석의 말에 따르면 이금숙 씨는 결혼 후에도 오로지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고 한다. 바로 북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이었다. 그녀의 소원은 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시고 와서 같이 사는 것이었다고 한다. 늦은 나이에 결혼한 김 씨는 아이를 키우며 소박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이 씨는 자나깨나 북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에 전전긍긍했었나 보더라. 결혼 당시 이금숙 씨는 임신 중이었는데 혼자 중절수술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니 김 씨로서는 적잖은 분노와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김 씨의 얘기고 확인된 바는 아니다.”
너무 성급하게 맺어진 인연이었을까. 두 사람의 갈등은 갈수록 깊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이어지는 김 형사의 얘기.
“북에 있는 이 씨의 엄마를 데려오려면 거액의 돈이 필요했다고 한다. 이 씨는 엄마를 데려와야 한다며 남편인 김 씨에게 목돈을 요구했었나 보더라. 당시 화물트럭 업체에서 일하고 있던 김 씨는 월 250만~3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있어 생활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 씨가 요구하는 목돈을 마련해줄 능력은 없었다고 한다. 이 문제로 두 사람은 적잖은 갈등을 빚게 됐다는 것이다. 엄마를 데려와야 한다고 이 씨가 수시로 보채는데 정작 김 씨는 이 씨의 요구를 들어줄 능력이 없으니 그 가정이 평탄할 리 있었겠나.”
결국 사건 당일인 2007년 2월 13일 김 씨는 몰래 이 씨의 뒤를 밟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것이 비극적인 사건의 발단이었다. 미행하다가 이 씨에게 들켜버린 것. 이 문제로 두 사람은 심한 다툼을 하게 된다. 김 형사의 얘기.
“그날 먼저 집으로 돌아온 김우석은 술을 마시며 아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 이 씨가 들어왔다고 한다. 잔뜩 화가 난 이 씨는 ‘왜 나를 미행하느냐’며 따지고 들었고 김 씨는 ‘어느 술집에서 일하느냐’며 추궁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씨는 ‘알 거 없다’며 소리를 지르고 물건들을 던졌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김 씨는 겁을 주려고 이 씨를 침대에 눕히고 목을 졸랐는데 어느 순간 이 씨가 숨을 쉬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지른 일이었다는 것이 김 씨의 얘기였다.”
아내가 죽은 것을 확인한 김 씨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고 한다. 어쩔 줄 몰라하던 김 씨는 이 씨의 사체를 여행가방에 담아 집안 벽장에 숨겨뒀다. 그리고 사건발생 5일 후인 18일 새벽 인적이 드문 극락교 아래로 가서 사체를 암매장하기에 이른다. 부부의 연을 맺은 지 불과 4개월 만이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사실을 가족들은 어떻게 알게 됐을까. 사건이 발생한 날은 설날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설날은 물론 설 연휴 후에도 김 씨 부부가 집에 들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가족들이 김 씨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김 씨가 ‘홀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는 것. 김 씨의 형은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고 직감하고 동생 집으로 찾아갔고 김 씨는 형에게 범행사실을 털어놓았다. 이렇게 해서 부부싸움이 빚은 참극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사건이 보도된 후 광주 경찰은 여러 여성인권단체 및 탈북자 단체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순전히 피의자 김 씨의 얘기에만 의존해서 경찰조사가 이뤄졌다는 점과 이 씨를 ‘술집여자’로 표현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음은 김 형사의 얘기.
“당시 여러 인권단체들은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하에 목숨을 걸고 탈북한 이금숙 씨를 졸지에 ‘술집여자’로 매도했다며 엄청난 항의를 해왔다. 안그래도 불쌍한 여자를 두 번 죽였다는 거였다. 어찌나 항의를 해오던지 며칠간은 업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오해를 막기 위해 자세한 설명을 하고 싶다. 피의자와 피해자가 둘 다 살아있을 경우에는 양쪽 입장을 다 듣고 조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일단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 아닌가. 당시 모든 진술은 피의자 김우석의 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 씨의 진술을 무조건 믿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여러 정황들을 근거로 수사팀이 판단한 부분이다. 법정에서도 정황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시 김 씨는 아내가 술집에 나가며 새벽에 귀가하는 것에 불만이 쌓였다고 진술했지만 내 판단으로는 이 부부는 그 전부터 이미 여러 가지 이유로 감정의 골이 깊어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러 언론들은 이 씨가 ‘술집’에 나갔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것처럼 기사화했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우리 경찰에게 돌아왔다. 이 씨의 지인들은 이 씨가 술집에 다닐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사기결혼’ 얘기까지 운운했나본데 이 역시 죽은 이금숙 씨의 얘기를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확인이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김 형사는 이 사건을 불러온 원인은 따로 있었다는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본질은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는 사실이다. 살인이 일어난 이유를 피해자에게 일정책임이 있는 것처럼 매도했다는 부분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 사건에서 이 씨가 술집에 나갔느냐 안 나갔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씨로서는 어머니를 데려올 돈을 모으려면 식당에서든 술집에서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고 남편으로서는 밖으로 도는 아내에게 적잖은 불만이 쌓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서로를 자세히 알지 못했던 상황에서 성급히 부부의 연을 맺은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김 씨는 이 씨가 상당한 나이 차를 감수하고 자신과 결혼한 것도 어머니를 모셔오기 위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는 말을 하더라. 그만큼 이 씨는 온통 북에 두고 온 어머니 생각뿐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겉으로만 부부였을 뿐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고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심과 불신이 참극을 불러왔다고 해야할까.”
아내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 씨는 법정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