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선수단은 미국 애리조나에 스프링캠프를 차렸다. 지난 1월 야수들이 외야수비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 치열한 생존경쟁
스프링캠프에는 감독과 코치를 포함한 1군 선수단은 물론, 1.5군 선수들까지 대거 참여한다. 기존의 주전 선수들이 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독 입장에서는 새로운 자원을 발굴하기 위해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60명에서 70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고, 캠프 명단에 포함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1.5군급 선수들의 희비가 엇갈린다. 이 때문에 스프링캠프는 비주전 선수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선수들 모두 자신감이 충만하고, 새 시즌에 대한 장밋빛 희망에 부푼다. 감독들은 끊임없이 ‘무한 경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어느 팀이든 주전은 정해져 있다. 캠프가 경쟁지는 아니다”라는 게 A 구단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 관계자는 “코칭스태프는 ‘새 얼굴을 발굴한다’는 명목 아래 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 비주전 선수들을 대거 기용한다. 그러나 천천히 몸을 만드는 주전선수들 대신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선수들도 많다”며 “이 시기를 통해 진짜 주전으로 발돋움하는 선수는 많아야 각 팀에 한두 명일 뿐”이라고 했다. 냉혹한 프로야구 스프링캠프의 현실이다.
이 시기가 되면 수많은 유망주들의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캠프 때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이름들도 시즌이 시작되면 어느새 조용히 기억 속으로 묻히기 일쑤다. 수많은 ‘오키나와 류현진’, ‘오키나와 이승엽’들이 망연자실하며 2군으로 향한다. 이 관계자는 또 “주전을 오래 한 선수들은 캠프 내내 잘 동요하지도 않는다. 캠프는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자신이 시즌을 준비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라며 “아무리 ‘리빌딩’을 외쳐도 결국 감독들은 야구 잘하는 선수를 쓰게 돼 있다. 프로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어쩌다 한 번 오는 기회를 잘 잡는 수밖에 없다. 그 실낱같은 가능성을 위해 선수들이 스프링캠프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넥센 심재학 코치가 선수의 타격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미국이 캠프지로 각광받는 까닭
최근 1차 캠프지로 가장 각광받는 장소는 미국이다. 날씨가 따뜻하고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캠프지가 즐비한 애리조나와 플로리다가 주로 선택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지리적으로 너무 멀고 시차가 크다. 비싼 항공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부터 1차 캠프지를 사이판에서 애리조나로 바꾼 롯데는 “확실히 비용 부담이 커졌다”고 했다.
감독과 프런트 고위 관계자들은 비즈니스 클래스, 코치와 선수들은 이코노미 클래스를 각각 이용한다. B 구단 선수는 “애리조나 캠프에 갈 때 가장 힘든 점이 이코노미석의 좁은 좌석에 장시간 몸을 ‘구겨 넣은’ 채 버텨야 하는 것”이라며 “중간에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우가 많아 이동 시간만 해도 총 18시간 정도가 걸린다. 숙소에 도착하면 녹초가 돼 하루 이틀은 훈련을 정상적으로 할 수도 없다”고 했다.
물론 예외도 있다. 체격이 유난히 커서 이코노미석에 앉는 게 무리인 선수, 혹은 허리나 무릎에 부상이 있는 선수는 구단에서 비즈니스석을 마련해 준다. 매년 캠프를 다니는 선수들은 항공사 마일리지가 엄청나게 쌓여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일리지를 이용해 좌석 업그레이드를 하기도 한다. 현지 체류비도 당연히 비싸다. 구단들은 미국에서 특급 호텔을 이용하지 않는다. 비즈니스 호텔이나 그보다 조금 더 나은 급의 호텔에서 머문다. 대신 식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인근 한식당에서 음식을 공수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좋은 이유도 분명히 있다. 시설 자체가 다른 나라와 차원이 다르다. 대부분 일본은 주경기장과 보조구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미국은 야구장만 4면에 이른다. 라커룸을 비롯한 부대시설은 말할 것도 없다. 한 선수는 “미국의 본구장도 아닌 스프링캠프구장에서 훈련을 한 뒤 메이저리그에서 한번쯤은 꼭 뛰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훈련의 밀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창단한 지 얼마 안 된 NC는 미국에서만 49박50일 간의 전지훈련을 치른다. 애리조나에서 1차 캠프를 마친 뒤 일본이 아닌 LA 지역으로 이동해 캠프를 이어간다. 국내 팀들과 연습경기를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메이저리그 레전드 출신 인스트럭터들을 초빙하고 미국 대학리그 상위권 팀들과 실전 스케줄을 잡았다. LA 지역에서는 한인 교포들을 상대로 구단 마케팅도 펼쳤다. 들인 비용만큼의 효과를 뽑아내겠다는 전략이다.
한화 이글스의 일본 고치 전지훈련(왼쪽)과 삼성 라이온즈의 괌 전지훈련. 사진제공=한화 이글스·삼성 라이온즈
# 미어터지는 오키나와 야구장
일본 전지훈련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다. 야구단이 돈을 쓰면서도 ‘을’이 돼야 한다. 특히 오키나와는 구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일본 팀들과 한국 팀들이 대거 몰려들어 야구장이 남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카마구장을 쓰는 삼성과 킨구장을 쓰는 KIA 정도가 야구장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팀이다. 4년 연속 우승을 한 삼성의 아카마구장은 메인 야구장과 보조 구장은 물론, 삼성이 직접 투자해 지은 웨이트트레이닝장과 실내연습장까지 갖췄다. 근력운동와 야간훈련을 대부분 호텔에서 해결하는 다른 팀 선수들과 달리, 훈련장에서 모든 운동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킨구장 역시 전임 선동열 감독 시절 마련한 KIA의 전용 훈련장이다. 선 감독이 일본 주니치에서 뛰던 시절 맺은 인연 덕분에 새 야구장을 확보했다. KIA가 유일하게 1차와 2차 캠프를 나누지 않고 오키나와에서만 계속 훈련을 할 수 있는 비결이다.
대부분의 팀들은 거액을 주고 장기 임대를 한다. 중간에 문제가 생겨도 떠날 수 없다. 구장에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직접 돈을 들여 보수해야 한다. 그러나 야구장이 없어 불편한 구단들보다는 확실히 낫다. C 구단은 연습경기 때마다 매번 다른 상대팀의 구장을 방문하면서 근근이 훈련을 이어가는 설움을 겪어야 한다. 비가 내려 연습경기 일정이 취소되기라도 하면, 일일이 상대팀의 양해를 구해 훈련장을 빌리는 불편도 겪는다. C 구단 관계자는 “전용 구장이 없어 힘든 점이 많지만, 오키나와는 연습경기를 여러 팀과 여러 번 할 수 있는 확실한 장점이 있어서 이곳을 택했다”고 했다.
배영은 스포츠동아 기자 yeb@donga.com
2군도 해외전훈이 대세 구단 ‘숨은 진주 찾기’ 시동 최근 몇 년간 스프링캠프의 달라진 풍경 가운데 가장 많이 개선된 부분은 무엇일까. 아마도 ‘2군 해외전지훈련’일 것이다. 이제는 2군 선수들도 더 이상 국내에서 추위와 싸우며 훈련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도 프로다운 스프링캠프를 치를 수 있게 됐다. 넥센 2군 선수들이 2월 3일 전지훈련지인 대만으로 출국하고 있다. 2군의 해외 스프링캠프는 2012년 삼성이 처음으로 시작했다. 1군 선수들이 괌 캠프를 마치고 오키나와로 이동하면, 대구에 있던 2군 선수들이 괌으로 떠나 훈련을 이어가는 식이다. 삼성은 “2군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프로선수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우승권을 유지한 탓에 꽤 오랜 기간 동안 신인 드래프트에서 하위 순번의 선수를 뽑아야 했다. 2군의 유망주들을 더 효과적으로 발굴하기 위한 자구책이기도 했다. 삼성 2군은 올해도 1군 선수들이 떠난 괌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대만은 많은 2군 선수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체류 비용이 덜 들면서도 날씨는 한국보다 훨씬 따뜻하기 때문이다. 한 구단 관계자는 “한때 1군 캠프의 대안으로 대만을 검토한 적이 있지만, 사실 야구장 시설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좋지 않아 1군 선수들이 사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한국의 날씨와 열악한 환경 때문에 고충을 겪던 2군 선수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운 장소”라고 설명했다. 넥센과 SK가 2013년 처음 대만에 둥지를 틀면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지난해에는 LG, 두산, KIA가 대만 전지훈련에 동참했다. 올해는 롯데도 처음으로 2군을 대만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대부분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머무른다. 꼭 대만이 아니더라도 장소는 많다. NC는 아예 2군 선수들이 1군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합동 스프링캠프를 진행했다. 캠프가 반환점을 돌기 시작하면서, 낙오된 선수들은 대거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화는 1군이 고치를 떠나면서 2군과 배턴 터치를 했다. 한화 2군은 고치와 마쓰야마로 나뉘어 두 개의 캠프를 차린다. 2군이 해외전지훈련을 떠나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앞서 삼성의 사례처럼, 자칫 숨은 진주들이 계속 흙 속에 묻혀있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야구 관계자는 “따뜻한 곳에서 훈련한 1군 선수들과 추운 한국에서 몸을 만든 2군 선수들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당장 1군으로 불러올릴 만한 즉시 전력감이 사라져간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각 구단은 점점 2군 선수 육성과 유망주 발굴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대만에 여러 팀이 캠프를 차리면서 2군 선수들도 국내 팀들끼리 연습경기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그들도 이제 진짜 프로가 돼간다. [은] |
스프링캠프 ‘빅매치’ 주목 한일 우승팀 삼성 vs 소뱅 ‘맞짱’ 매년 2월 말쯤이 되면 오키나와에서 프로구단들의 연습경기가 줄을 잇는다. 국내 팀끼리의 대결은 물론, 일본 팀과의 친선전도 여러 차례 열리곤 한다. 일본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르는 이점 가운데 하나다. 각 구단은 매년 캠프에 앞서 일본 구단들과의 연습경기 스케줄을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인다. 특히 요미우리 같은 일본 최고의 명문 팀들은 연습경기를 치를 상대조차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하다. 한국 구단들 가운데서도 요미우리와 맞붙을 기회를 잡는 팀은 많지 않다. 삼성이 2013년 오키나와 전훈 당시 요미우리와 연습경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그러나 올해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만큼은 오키나와가 아닌 후쿠오카에서 가장 뜨거운 ‘캠프 매치’가 열리게 됐다. 단순히 친선경기라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삼성과 일본시리즈 우승팀 소프트뱅크가 우승 이후 처음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일단 경기 장소부터가 다르다. 대부분 스프링캠프의 연습경기는 두 팀 가운데 한 팀이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연습 전용구장에서 열린다. 운동장 상태는 물론, 전광판과 관중석 등 모든 시설이 시즌 때보다 훨씬 열악하다. 선수들은 ‘게임’이라는 생각보다 ‘훈련의 연장’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성과 소프트뱅크는 27일 후쿠오카에 있는 야후오크돔에서 경기를 치르기로 했다. 소프트뱅크가 시즌 중에 홈으로 사용하는 바로 그 구장이다. 무려 3만 5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팬들이 입장료를 내고 경기를 관람하고, 경기개시 시간은 일본의 정규시즌과 똑같은 오후 6시다. 실제 공식경기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삼성은 단 한 경기를 치르기 위해 직접 후쿠오카까지 1박2일 일정으로 움직인다. 류중일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10명과 선수단 28명 등 최정예 인원만 후쿠오카행 비행기에 오른다. 이유가 있다. 원래 한국 우승팀과 일본 우승팀은 시즌이 끝난 뒤 아시아시리즈에서 만나 승부를 겨루곤 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9월 인천아시안게임 개최로 프로야구 일정이 밀리면서 아시아시리즈가 개최되지 않았다. 비록 친선경기 성격을 띠긴 해도, 지난 시즌 아시아 최강 두 팀의 진검승부가 우승 이후 처음으로 펼쳐지는 셈이다. 또 2011년 삼성이 한국 팀으로는 처음으로 아시아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 결승전에서 5-3으로 꺾었던 상대가 바로 소프트뱅크였다. 이후 삼성과 소프트뱅크는 캠프 연습경기에서도 만난 적이 없었다. 이 외에도 인연은 많다. 소프트뱅크에는 지난해 삼성에서 13승을 올렸던 외국인 에이스 릭 밴덴헐크가 있다. 한국인 타자 이대호도 소프트뱅크에서 뛰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여러모로 어깨가 무거운 ‘후쿠오카 원정대’를 파견하는 셈이다. 당연히 각오가 남다르다. 류 감독은 이미 “최강의 멤버로 맞붙겠다”고 선언했다. 베스트 선발 라인업을 내세우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선발진의 양대 기둥인 우완 윤성환과 좌완 장원삼을 둘 다 등판시킬 계획도 세우고 있다. “친선경기지만 한·일 우승팀끼리 경기이니 대충 하고 돌아올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상 최초의 통합 4연패 팀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삼성 선수들도 한 마음 한 뜻으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