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지역과 군 내부에서 터진 다단계 사기사건도 이같은 전형적인 수법에 당한 케이스다. 인천 사건에서는 550여 명의 투자자가 당했고 현역 육군장교가 벌인 군 사건에서는 군인과 그 친인척들 750여 명이 피해를 입었다. 너무도 뻔한 수법이 오히려 경계심을 무너뜨린 것일까. 두 사건 속으로 들어가보자.
지난 16일 인천 남부경찰서 지능 1팀은 유 아무개 씨(48)를 구속했다. 유 씨의 혐의는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한마디로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
유 씨는 전과 5범으로 그동안 직장을 갖거나 일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는 인물. 그런 유 씨가 거액의 돈을 처음 만져본 것은 지난 2007년 8월 중순 자신의 성인 PC방 투자자들을 다단계로 모집해 투자금을 유치하면서다.
유 씨는 당시 사업설명회 등을 열어 투자자를 유치하며 “오락실을 운영하는데 투자를 하면 고수익을 보장하겠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투자받을 당시만 해도 큰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실제로 그 돈으로 성인PC방을 개설했다.
하지만 유 씨의 생각처럼 성인 PC방은 수십 명의 투자자들에게 고수익을 보장할 만큼 수익을 내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유 씨가 운영하던 성인PC방이 경찰에 불법 영업소로 적발돼 폐쇄되고 말았다. 유 씨 또한 불법영업을 했다는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유 씨에게 남은 것이라곤 오직 투자자들에 대한 빚뿐. 유 씨는 궁지에 몰려 한동안 전전긍긍했지만 얼마 안가 묘안(?)을 찾게 된다. 다름 아닌 다단계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 보기로 결심한 것. 이미 다단계를 통해 성인PC방 투자금을 모은 바 있는 유 씨는 말만 잘하면 투자자들이 쉽게 넘어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지난 12월경 유 씨는 자신이 벌였던 사업에 함께 동참했던 이 아무개 씨(여·43) 등 3명을 “사업을 하나 구상하고 있는데 함께 하자”며 끌어들였다. 이 씨 등 3명은 유 씨가 지난번 PC방 사업을 할 때 투자자 유치, 사업설명회 운영 등 중간 알선책 역할을 하며 유 씨에게 월급을 받았던 인물들. 유 씨가 사업을 접은 후로 마땅히 할 일이 없던 이들에게 유 씨의 제안은 당연히 반가웠다.
다시 시작한 유 씨의 사업은 이전과는 달리 처음부터 ‘사기’였다. 경찰에 따르면 유 씨는 PC방을 운영하지도 않았고 유 씨가 다른 곳에 투자한 적도 없었다. 그는 컴퓨터 몇 대를 가져다놓은 PC방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며 “투자하면 매달 투자금의 20%를 주겠다”고 말하며 유혹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 씨의 ‘사업’이 대박난 것은 다단계의 속성을 잘 살린 파격적인 제안이 뒤따른 때문이었다. 그는 고객들에게 “다른 투자자를 데려오면 그 사람이 투자한 돈의 10%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 그때부터 투자자들은 눈덩이처럼 줄을 이었다고 한다.
유 씨는 한동안 약속한 대로 매달 투자금의 20%를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하위 투자자를 데려온 사람에게도 약속한 10%를 주었다. 하지만 이 배당금에 들어간 돈은 새로 투자받은 돈의 일부였다. 이른바 ‘돌려막기’로 피해자들의 눈을 속였던 것이다.
이 같은 유 씨의 사기행각이 세간에 드러나게 된 것은 투자자들이 유 씨를 경찰에 집단으로 고발하면서다. 피해자들은 지난 3월 이후 매달 들어오던 수익금이 끊기자 유 씨에게 “왜 돈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물었고 유 씨는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두 달여간 이어진 유 씨의 침묵에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챈 투자자들이 경찰에 신고했고, 이로써 유 씨의 다단계 행각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경찰 조사 결과 유 씨의 사업에 투자한 사람은 모두 552명이었고 그 피해액은 무려 74억여 원에 달했다. 유 씨는 한때 “투자받은 돈을 부동산에 투자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이 역시 거짓으로 드러났다. 유 씨가 투자했다는 부동산은 자신이 운영해오던 건물이었고 오히려 유 씨는 여기에 임대료 등을 지급해온 사실까지 추가로 드러났다.
검거된 유 씨의 수중에 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이라고 속이며 돌려막기를 하는 데 투자금을 써버린 탓이다. 행방이 묘연한 일부 투자금에 대해서는 유 씨가 한사코 밝히길 거부하고 있어 조사 중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유 씨가 구속되던 바로 그날 또하나의 대형사기사건이 터졌다. 유 씨처럼 다단계 사기수법으로 수백억 원대의 피해를 입힌 육군 장교 3명이 군 검찰에 의해 구속된 것. 군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모두 3사관학교 41기 동기생들로 주로 사관학교 동문과 인접 부대 간부 등에게 접근, 금융사기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장교들에게 당한 피해자는 군인 650여 명을 비롯해 민간인 100여 명 등 총 750명에 달한다. 피해액도 무려 400억여 원.
사건의 주범 박 아무개 중위(25)가 투자자를 유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 3월. 그가 이 같은 사기 범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자신이 투자했던 주식이 ‘쪽박’이 나면서다. 은행에서 4000만 원을 대출받아 주식에 투자했던 박 중위는 본전도 못 찾게 되자 이를 갚기 위해 다단계 사기를 구상하게 된 것.
박 중위는 자신을 ‘전역하면 펀드 매니저로 영입될 사람’이라거나 ‘유명 증권사의 직원’이라고 소개한 뒤 “투자를 하면 3개월 내에 50% 이상의 수익을 얻게 해주겠다”며 투자자를 모았다.
박 중위 역시 앞서의 유 씨처럼 처음 몇 개월간은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했다. 물론 ‘돌려막기’였다. 기존 투자자들에게 지불한 배당금과 이자는 모두 새로 투자받은 돈이었던 것.
박 중위는 투자받은 돈 400억 원 중 143억 원은 이 같은 돌려막기에 썼고 177억 원은 인터넷 금융회사와 코스닥 상장기업 등에 투자했지만 회수하지 못했다. 나머지 돈은 유흥비 등에 탕진한 것으로 밝혀졌다.
군 검찰에 따르면 박 중위는 중간 알선책들에게도 아우디 등 외제차를 선물했으며 자신은 5억 원 상당의 스포츠카 람보르기니, 벤츠 S500 등 고급 외제차를 구입해 몰고 다니며 호텔과 고급 룸살롱 등에서 하루 300만~400만 원가량을 유흥비로 썼다. 박 중위는 특히 한 술집 여종업원에게는 1억 8000만 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현재 그의 수중에 남아 있던 돈은 40억여 원.
박 중위 일당에 당한 피해자는 대부분 부사관과 대위 이하의 장교로 드러났지만 현역 대령은 물론 군정보·수사 관계자들도 일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군 정보·수사기관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이번 사건이 더 커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군 당국은 지난해 9월 이후 여러 차례 사건정황을 포착했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군 당국은 이번 사건으로 수억 원의 피해를 입은 장교도 있지만 대부분 개인 피해액이 3000만~4000만 원이고 피해자들이 아직 사회경험이 일천한 초급장교들이라 최고 5000만 원까지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군인들 중 다수가 연 40% 이상의 고금리 사채를 썼기 때문에 국방부의 계획대로 제1 금융권인 은행에서 실제 대출을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러한 일련의 다단계 사기 사건들에 관해 “불로소득의 달콤한 유혹은 친한 사람의 권유일수록 쉽게 통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말처럼 돈 벌기가 그렇게 쉽다면 그들이 왜 남한테 돈을 벌게 해주겠느냐”라고 반문한 뒤 “이번 사건들처럼 잘못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가 다 떠안아야 한다”며 고수익을 내건 불법·변칙투자엔 아예 관심조차 갖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