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 중에도 ‘막말 댓글’ 행각을 벌여온 수원지방법원 이 아무개 부장판사가 징계절차 없이 사표가 수리돼 대법원의 봐주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일요신문DB
“딸년이 벗고 설친 사진까지 법정에 다 나왔는데 사위 간통 고소하고 그 법정에 방청 간 유족들 참 뻔뻔한 철면피네.”
지난해 9월 한 불륜 사건에 대한 재판 기사에 대해 이 전 부장판사가 단 댓글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고인 전처의 가족을 비난하기 위해 원색적 표현까지 등장시킨 것이다. 일반인도 아니고 법원의 상징과도 같은 부장판사가 쓴 글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내용이다.
특히 이 전 부장판사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다룬 기사에 대해서도 댓글을 올려 충격을 주고 있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말이 실로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태권도 관장의 남자 초등학생 성추행 사건에서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한 뒤 관련 기사에 6차례 댓글을 달기도 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다른 네티즌의 댓글에 벌금 2000만 원이 지나치다는 내용이 있자 “재판장이 ‘그러게요. 국민의 대표이신 국회의원이 그렇게 법을 만들어 놓으셨네요’라고 대답”, “이런 경우에 징역 5~30년 벌금 3000만~5000만 원에 처하도록 법정형을 정해놓은 국회의원들이 정신병자”라며 국회의원들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자신이 맡은 또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여중생이 40세 한의사랑 무슨 연애나 애정싸움이라도 했단 거냐. 복수 위해 조작했다 쳐도 성기, 젖가슴 만질 때 여중생 엄마는커녕 간호사 한 명도 옆에 세워놓지 않고 커튼 쳐놓았던 건 뭘로 설명할 건데? 또 저 여중생을 치료한다 해도 똑같은 방법으로 하겠다고 할 거냐? 절대 아니지? 거 봐~ 그러니까 유죄야. 알아?”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댓글로 막말 행각을 이어가던 이 전 부장판사는 자신이 언급했던 한 당사자로부터 고소를 당해 이번 사태가 법정공방을 통한 전면전 양상을 띨 수도 있게 됐다. 이 전 부장판사는 “트위터질하던 서기호 판사나, 이웃 차량 열쇠구멍에 접착제 붓던 이정렬 판사나, 막말 퍼붓는 김동진 판사나…민주시민이 사랑하는 판사들은 왜 다 저 모양이죠?”라는 모욕적인 비방 댓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는 이를 인지한 이정렬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로부터 지난 2월 15일 명예훼손과 모욕으로 고소를 당했다. 지난 15일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홈페이지를 통해 이 전 부장판사를 고소한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씨는 비겁하게 익명으로 숨어서 저열한 언어로 나를 비방·모욕한 점, 부도덕에는 눈을 감고 오히려 약자를 짓밟은 점 등 그분의 언사가 나를 무척 불쾌하게 했다”며 “나는 대법원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정렬 전 부장판사는 “이◯◯ 씨 근무시간에도 댓글을 달았다는데 이는 국가공무원법상 직무전념의무나 성실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그럼에도 대법원은 ‘직무상 위법행위라 단정할 수 없다’는 애매모호한 말을 남기고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로써 (변호사 등록을 가능하게 해) 이◯◯ 씨의 장래와 노후를 보장해줬다”고 비판했다. 이에 앞서 이 전 부장판사는 자신의 댓글과 관련해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13일 사표를 제출했으며, 대법원이 다음날인 14일 징계절차 없이 곧바로 사표를 수리(16일자)한 바 있다.
이 전 부장판사의 성향에 대해 그의 연수원 동기(25기)인 한 변호사는 “연수원에 있을 때 친하지 않아서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선배들에게 깍듯하고 인간관계가 단절되지는 않았는데 이번에 댓글 논란이 나와서 좀 의외기는 했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판사를 아는 연수원 동기 등 지인들은 그가 선·후배들과의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평하고 있다. 그런데 왜 그는 그런 막말식의 댓글들을 수없이 달았던 것일까.
사실 판사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엘리트이자 최고 지식인층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부장판사는 고위공무원에 속하는 2급 공무원으로서 사회 여론을 이끄는 주도층 인사다. 그런 ‘지식인’이 원색적이고 저급한 언어로 인터넷 상에서 댓글을 단 것은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댄 ‘탈 억제성’의 분출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범죄심리 전문가인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이에 대해 “익명성에 숨어서 본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음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 전 부장판사가 전문적인 직업의 영역과 자신의 숨겨진 내심 즉 본심이 분리돼 있었던 것이다. 판사로서는 그런 얘기를 못하기 때문에 평소에 이성으로서 억제하고 있었는데 인터넷 공간이라고 하는 익명성으로 탈 억제 심리가 발동된 것이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판사의 정치적 편향성과 그에 따른 가치관이 그의 전문적 영역인 판결에 투영됐느냐 여부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헌법과 국민은 사법부로부터 실체적 사안에 대해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결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는데, 이 전 부장판사의 경우 여러 가지 표현들을 봐서 지역주의, 정치적 편향성 등을 보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맡았던 사건들 중에서 어떻게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법에 대한 적용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재량이 있는 사건들의 경우 한 번쯤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나도 보수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간첩 사건을 ‘무죄’로 판단한 적이 있을 만큼 성향이 판결에 반영될 것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럴 개연성이 있을 뿐이지 정작 판결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변호사도 사법부의 신뢰 실추에 대해서는 “이 전 부장판사가 징계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법적인 잘잘못을 떠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사법부의 신뢰를 실추시킨 것은 맞다고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법조계에서는 “댓글 수준만 놓고 볼 때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강물을 흐린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막말 어디까지 키보드 앞에만 앉으면 ‘괴물’로 변신 이 전 부장판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나 호남 지역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도 서슴지 않고 표출했다. “촛불폭도들이 존경하는 서민대통령 노무현은 수억대 뉴욕 주택과 차용증 한 장에 십수억(원)을 빌리는 마이다스의 손이었죠. 투신까지 ㅉㅉ”, “노무현은 왜 머리통을 바위 위에 터트려 인생을 자퇴했죠?”, “훌쩍 뛰어내려 머리통 박살” 등 극단적 표현까지 동원했다. 부장판사의 언사라고는 믿기 힘든 막말이다. JTBC 방송 화면 캡처. 세월호 유가족 비난에도 댓글을 이용했다. 지난해 9월 “일반인 유족은 학생 유족들 대변인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 대리기사 폭행 건으로 쌍방폭행 주장하던 유족 대표들은 일방폭행으로 거짓말 뽀록나며 모레쯤 구속영장 발부. 촛불폭도들 오늘밤 정말 집단 투신하고 싶겠다”고 적기도 했다. 또한 최근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으로 비하한 혐의로 구속된 김 아무개 씨 사건 기사에는 “모욕죄 수사로 구속된 전 세계 최초 사례”라며 김 씨를 두둔하는 취지의 댓글을 달았다. 이 전 부장 판사는 정치적 사건의 경우에도 댓글을 통해 가감 없이 자신의 우 편향적 정치색을 드러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최근 선거개입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고 구속되자 “입만 벌리면 평양이랑 입장이 똑같은 종북들을 가려내려고 하니 그놈들은 새정치 지지자들이라 정치개입이 되는 현실. 원세훈이 고생한거지. 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종북 세력을 수사하느라 고생했는데 안타깝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박통ㆍ전통 때 물 고문했던 게 좋았던 듯”이라며 유신독재나 권위주의 정권을 미화하거나 과거사에 편향된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이 전 부장판사는 ‘저능아’, ‘도끼로 XXX을 쪼개기에도 시간이 아깝다’등 원색적이고 저급한 단어와 문장들을 수시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가정보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증거조작’ 문제가 불거지자 관련 기사에 “빨갱이 한 놈 잡는 데에 위조쯤 문제되겠나”라고 했고, 용산참사를 두고는 “실수로 집단 분신자살하면서 경찰 한 명 애꿎게 같이 죽은 사건”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여름철 성범죄 증가 관련 기사에는 “미니스커트 입고 다니는 여자애들은 갑자기 차선 침범해 들어간 자기 차를 애써 피하려고 운전대를 돌리다 다른 차를 들이받고 사고가 난 차량을 보며 유유히 지 갈 길 가는 얄미운 운전자”라고 댓글을 달았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어묵’으로 비하한 혐의로 구속된 김 아무개 씨에 대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의 댓글을 단 이 전 부장판사는 정작 동료 판사들의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인색했고, 결국 이런 점이 단초가 돼 고소까지 당하게 됐다.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