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발생한 지 3주가 지났지만 여대생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사소한 단서조차 나타나지 않은 현 상황과 관련 수사본부 관계자들은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 마스크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20대 남성 용의자가 실종 여대생의 신용카드로 현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 ||
A 씨가 내린 군포보건소 정류소는 A 씨의 집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이다. A 씨의 휴대전화는 이날 오후 3시 37분경 보건소에서 5.2km 떨어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부근에서 전원이 꺼진 것으로 확인됐다. A 씨가 보건소 CCTV에 모습이 찍힌 지 약 30분 후였다.
30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경찰은 정황상 A 씨가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A 씨의 금융거래 내역 때문이다. 이날 오후 7시 28분경에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의 농협 현금인출기에서 A 씨의 신용카드로 현금 70만 원이 인출된 것이 확인됐다. 은행 CCTV에는 신원불명의 20대 남자가 현금을 인출하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키 170cm 정도의 보통체격, 더벅머리에 베이지색 재킷을 입은 20대 남자’
마스크와 머리카락으로 얼굴 대부분을 가렸다는 점에서 경찰은 이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신원을 쫓고 있지만 CCTV화면 외에는 단서가 없어 추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찰은 이 일대 동일수법 전과자를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이는 한편 CCTV에 찍힌 용의자의 특이한 헤어스타일에 주목, 가발일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안산 일대 가발 판매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더벅머리 가발을 구매한 사람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아울러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단서를 찾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A 씨의 생사 여부. 하지만 경찰은 휴대전화가 꺼지기까지의 30여 분간은 납치와 이동이 이뤄지기에 충분하고 용의자가 돈까지 인출했다는 점에서 A 씨의 안전에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목적을 달성한 범인이 일을 벌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은 A 씨가 들른 군포보건소와 휴대전화 전원이 꺼진 건건동까지 약 5km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이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분 이내라는 점에 주목, 범인이 차량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 인적이 드문 지점을 정확히 골라 낮시간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범인은 이 일대 지리에도 익숙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200여 명의 경찰인력을 투입해 A 씨의 행방과 유류품 등을 수색하는 동시에 범인의 이동 경로로 추측되는 군포보건소와 건건동, 성포동에 이르는 12km 구간과 예상 도주로에 설치된 CCTV 화면을 확보해 정밀 분석 중이다.
현재 가장 큰 의문은 A 씨가 ‘사고’를 당한 장소가 어디냐는 점이다. 애초에 경찰은 A 씨가 보건소 인근에서 범인의 차량에 납치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해 왔었다.
하지만 이 추정을 뒤집는 중요한 단서가 포착됐다. A 씨로 보이는 여성이 집 근처 주유소를 지나는 장면을 CCTV에서 찾아낸 것이다. 주유소 CCTV에 이 장면이 찍힌 것은 사건 당일 3시 20분경. 경찰은 CCTV 화면이 흐린 탓에 화면속의 여성이 A 씨라고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정황상 A 씨가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소로부터 주유소까지의 거리는 약 900m. 보건소 CCTV에 A 씨가 찍힌 시각이 3시 7분이고 주유소 앞에서 찍힌 시각이 3시 20분이면 시간상, 거리상으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통상적인 여대생의 걸음걸이로 900m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약 13분이 걸린다는 것.
CCTV에 찍한 사람이 A 씨가 맞다면 적어도 그녀는 주유소 부근에 도착한 3시 20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주유소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사고가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주유소에서 A 씨의 집까지의 거리는 불과 300m 정도. 경찰은 그녀가 주유소 앞을 지난 뒤 약 17분 후에 A 씨의 휴대전화가 끊겼다는 점에 주목, 17분 사이에 A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17분간의 A 씨 행방은 현재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주유소에서 집까지 300m를 가는 동안 A 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보다 경찰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점은 대낮이었는데도 목격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인근 주민들은 “최근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긴 했지만 달랑 하나뿐이다. 이곳은 여전히 낮에도 황량하다. 혼자 버스를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 길가에 음식점 등 상점들이 몇 개 있긴 하지만 거의 손님이 없어 인적이 드물다”며 “충분히 범행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시간과 장소로 볼 때 A 씨가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거나 신변의 위협을 느꼈을 경우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강제 납치는 불가능했을 거라는 의견도 있다. 상식적으로 언제 사람들의 눈에 띌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모하게 납치를 시도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범행시간이 대낮이고 돈을 인출한 시간이 초저녁이라는 점에서 범인은 상당히 대담한 인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은행 CCTV 화면을 보면 용의자가 돈을 인출할 당시 현금인출기 주변에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범인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범인은 초범이 아닌 강도 전과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반면 피해자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다음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인출해가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절차와 수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범인은 급전을 마련하기 위해 모방범죄를 저지른 초범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은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 가능성이다. 경찰은 범인이 A 씨와 잘 아는 사람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A 씨의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고 있다. 특히 A 씨의 카드로 돈을 인출해간 남성이 머리스타일이나 옷차림으로 보아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됨에 따라 A 씨의 이성친구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 군포 여대생 실종 사건의 용의자 수배 전단지. | ||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금 인출을 노리는 경우 통상적으로 범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피해자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비밀번호를 잘못 알려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도 범인이 현금을 인출할 동안 또 다른 누군가가 A 씨를 데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차량을 이용한 납치가 이뤄졌다면 한 사람이 운전하는 동안 차 안에서 A 씨를 제압하고 탈출을 막은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범인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선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사건으로 보고 있다. 금품을 강탈할 목적으로 인근을 배회하던 범인이 혼자 걸어오는 160cm·38k이라는 조그만 체구의 여성 A 씨를 보고 범행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큰돈을 목적으로 했다면 경제권을 쥐고 있는 주부들을 상대로 했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20대 초반에 불과한 A 씨에게 큰돈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1회 인출의 최대 한도인 70만 원만 손에 넣었다는 점에서 범인은 제대로 큰돈을 만져보지 않은 젊은 남성일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만약에 범인이 수백만 원 이상 필요했다면 A 씨가 아닌 좀더 확실한 대상을 찾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납치’라는 위험한 범행을 시도하고서 고작 70만 원만 손에 넣고 만족했을 리가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흥비 정도에 만족할 동네 불량배들의 우발범행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사건 당일 밤 그 일대 유흥업소를 찾아 술을 마신 20대 청년들을 탐문해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A 씨 실종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들은 또다시 공포에 떨고 있다. A 씨가 실종된 장소가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월 사이 경기 서남부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이 발생한 곳과 불과 3~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실종된 부녀자는 모두 5명으로 수원에서 실종된 박 씨만 2007년 5월 안산의 야산에서 사체가 발견됐을 뿐 나머지는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녀자 연쇄실종 사건과 동일범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있다. 이들 사건이 경기 서남부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다른 사건은 실종자의 카드로 돈이 인출된 적도 없는 등 강도 피해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경찰은 CCTV 판독과 시민들의 제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과연 300m와 17분의 미스터리는 풀릴 것인가.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