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3월 12일 시내버스에 치여 양쪽 쇄골이 모두 골절되는 등 중상을 입은 양 씨는 대림동 한 병원에서 1차로 입원치료를 받다가 열흘 후인 3월 22일 이 병원으로 옮겨와 치료를 받고 있었던 것. 시내버스에 치인 양 씨는 사고 당시 온몸이 만신창이였으나 천만다행으로 하루하루 회복되고 있었다. 어린 아들을 둔 양 씨의 투병 의지와 병원 측의 치료, 그리고 아내의 극진한 간호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여가 지난 4월 26일 새벽 양 씨는 갑자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다가 사망하고 만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약 26년 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OO병원 독극물 살인사건이다.
4월 26일 새벽 5시 10분경. 자다가 눈을 뜬 양 씨는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 김영주 씨(가명·35)에게 갈증을 호소했다. 김 씨는 병상 옆에 놓여있던 우유 팩을 남편에게 건넸다. 그러나 우유를 마신 양 씨는 잠시 후 얼굴이 백지장처럼 변하기 시작하더니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배가 아프다며 뒹굴던 양 씨는 급기야 호흡장애를 일으키는 등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 보다 못한 아내는 간호사에게 연락을 취했고 양 씨는 담당의사에 의해 다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양 씨는 이날 오전 7시 50분경 사망하고 말았다. 갑작스런 복통을 호소한 지 불과 2시간 40분 만이었다. 다음은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
“멀쩡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사망하니 병원은 발칵 뒤집혔다. 아내 김 여인은 울다가 실신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놀랍게도 양 씨의 사인은 청산염 중독이었다. 문제는 양 씨가 마신 우유였다. 양 씨의 병상에는 양 씨가 마시다 만 우유 외에도 검은 비닐 봉지 속에서 우유 팩이 4개가 더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감정한 결과 우유 팩에서는 모두 청산가리가 검출됐다.”
병원 관계자들과 유가족은 일순간에 큰 충격에 휩싸였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우유팩 속에 모두 청산가리가 들어있다는 것은 정황상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벌인 행동임이 분명했다. 더구나 범인은 주사기를 이용해 독극물을 투입했기 때문에 우유팩은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즉시 수사본부가 설치됐고 당시 중부경찰서 형사들이 수사에 착수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무서운 짓을 한 걸까.
수사결과 드러난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문제의 우유를 병상 옆 선반 위에 갖다 놓은 사람이 바로 양 씨의 아들 양지환 군(가명·10)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지환 군은 우유를 갖다놓게 된 경위에 대해 어린 아이답지 않게 상세히 설명했다. 지환 군에 따르면 사건 전날인 4월 25일 오후 7시 30분경 병원 3층 중환자실 복도에서 놀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생전 처음 보는 ‘누나’가 다가와서 ‘니네 아빠 교통사고를 낸 운전사 부인의 여동생’이라며 우유 팩이 든 검은 비닐봉지를 건넸다고 진술했다. 지환 군은 아무 의심없이 우유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와서 아빠가 누워있는 병상 옆에 놓아두었다는 것이었다.”
‘눈이 크고 짧은 머리스타일에 서울말씨를 쓰는 키 160cm가량의 20대 여성.’
양 씨의 아들이 진술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수사팀은 양 씨의 아들에게 우유를 건넸다는 이 여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몽타주까지 작성해 긴급 수배를 하는 한편 여자의 행방을 찾아나섰다.
문제의 우유는 4월 23일에 제조된 것으로 4월 24일 아침부터 시중에 배달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수사팀은 우유의 유통경로와 판매사실를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조사 결과 양 씨가 마신 우유는 병원매점은 물론 병원 주변에서 영업 중인 10여 곳의 상점에서도 구입할 수 없는 제품이었다. 이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병원에서 떨어진 곳에서 우유를 사서 청산가리를 투입한 후 병원으로 갖고 들어왔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사결과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양 씨가 사망하기 전에도 이 병원에서 독극물에 의한 사고가 두 차례 발생했던 것이다. 13일 전인 4월 13일 병원 5층 공동취사장에서는 농약을 넣은 것으로 추정되는 요구르트 5개와 우유 5개가 발견됐고, 또 그 일이 있은 지 사흘 후에는 세탁물 통에서 농약이 들어있는 요구르트 17개가 발견됐는데 이 병원 환자의 보호자가 마시고 복통으로 목숨까지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농약냄새가 나는 음료 등이 잇따라 발견되자 병원 측에서는 16일 경찰에 신고를 하는 동시에 구내방송을 통해 ‘모르는 사람이 주는 요구르트나 우유를 마시자 말라’는 안내방송을 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황상으로 볼 때 양 씨가 변을 당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 하마터면 양 씨 외에도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었던 다급한 상황이었다.
수사팀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 범인이 이미 10여 일 전부터 범행을 시도했던 것이다. 빨리 범인을 검거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수사팀을 또 한 번 놀라게 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양 씨가 사망한 날 저녁 병원 4층 남자화장실에서는 의문의 쪽지가 발견됐다. ‘억울하게 당한 분들께 죄송스럽습니다. 이 병원에 입원한 죄입니다. 앞으로도 스무 명을 더 희생시킬 겁니다. 빨리들 다른 병원으로 옮기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정황상으로 이 사건은 양 씨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었다. 또 메모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사건은 병원 측에 불만이나 원한을 지닌 자가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상대로 화풀이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수사팀은 우선 병원 전·현직 종사자와 입·퇴원 환자, 외래환자 등을 상대로 병원에 사소한 원한이라도 품을 만한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병원 또는 병원 관계자들과 갈등관계에 있거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수사망에 올랐다. 그러나 의심이 가는 사람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수사팀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양 씨의 아들이 한 진술 내용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설명.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환 군의 진술이 너무도 구체적이고 상세한 게 아닌가. 지환 군은 초등학교 4학년에 불과한 어린 아이였다. 하지만 우유를 건넸다는 여자에 대해 눈의 크기며 키, 나이대는 물론 말투까지 상세히 기억해냈다. 그 나이 또래 아동은 보통 처음 본 사람은 잘 기억도 못하는데 그토록 상세히 묘사할 수 있을까. 뭔가 이상했다. 더구나 ‘사고를 낸 운전사 부인의 여동생’이라는 것까지 어찌 기억할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어린아이답지 않은 진술이었다. 또 그 시각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많이 움직이는 때였는데도 지환 군이 봤다는 의문의 여자를 병원에서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군가 지환 군에게 시킨 듯한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지환 군의 아버지 양 씨가 사망한 와중에 가장 미심쩍은 인물은 그의 어머니 김 여인이었다. 하지만 김 여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가누지 못해 망연자실해있는 상태였다. 수사팀은 은밀히 내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김 여인으로부터 이상한 점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첫째는 김 여인이 채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 양 씨의 아들이 의문의 여인을 만났다는 시각에 김 여인은 “시흥에 사는 언니 집에 다녀왔다”고 진술했으나 조사결과 김 여인은 언니 집을 방문한 사실이 없었다. 결국 수사팀은 양 씨의 아들에게서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했다’는 진술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4월 29일 서울형사지법 노원욱 판사 심리로 진행된 법원신문실에서 양 씨의 아들은 김 여인이 범인임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진술을 하게 된다. 지환 군은 이날 “형사 아저씨가 ‘25일 밤 병원 앞 중국집에서 어머니가 너에게 신문지에 싼 우유 팩을 전해 주는 것을 중국집 종업원이 봤다’고 했다. 형사들이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사실대로 말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김 여인을 체포한 수사팀은 자백을 받아냄과 동시에 범행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들을 찾아냈다. 수사팀은 범행에 쓰고 남은 청산염 875g을 김 여인이 운영하던 점포 천장에서 찾아내고 청산염을 가루로 내는 데 사용한 쇠망치 한 점도 증거물로 압수했다. 또 김 여인의 자백대로 용산구 한강로의 한 구멍가게에서 김 여인이 우유를 산 사실도 확인하고 범행 전 종로5가의 한 약국에서 주사기를 구입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종로의 한 농약사에서 농약 2봉지를 구매한 사실도 확인됐다.
그렇다면 김 여인이 남편을 상대로 이처럼 무서운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여인은 70년 초반 중매로 만난 남편 양 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는 평범한 주부였다. 부부는 각각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맞벌이를 해오고 있었으나 왼쪽 다리가 불구였던 양 씨는 생활의 대부분을 김 여인에게 의존해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아이를 키우며 사는 부부의 삶은 매번 빚에 쪼들리는 등 상당히 궁핍했다. 실제로 김 여인은 경찰에서 4500만원의 빚을 져 채권자들로부터 독촉을 받아왔으며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입원 중일 때도 채권자들이 찾아온 적도 있었다고 진술했다. 뿐만 아니라 김 여인은 주변인들로부터 빌린 개인채무도 1억 원에 달했다.
김 여인은 이런 암울하고 막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였다. 김 여인은 1980년 3월 생명보험(만기시 200만 원 수령)을 가입한 것을 시작으로 83년 2월에는 남편 명의로 사망시 6000만 원을 수령할 수 있는 보험 등 수 개의 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김 여인은 범행동기에 대해 뜻밖의 주장을 했다. 남편의 제의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김 여인은 심정을 묻는 수사팀 앞에서 ‘남편의 동의하에 이뤄진 일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매우 착잡한 심경이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한편 두 차례의 농약사건은 김 여인의 ‘예행연습’으로 드러났는데 김 여인은 특히 아들에게까지 “아빠는 곧 세상을 뜰 거다. 엄마 말만 잘 들으면 앞으로 빚독촉도 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다”고 설득해 두 번이나 연습을 시켰다고 진술, 수사팀이 혀를 내두르게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양 씨의 노모 등 유족들은 ‘동의하에 이뤄진 일’이라는 김 여인의 주장을 반박했다. 살해당한 양 씨는 수혈을 거부하는 모 종교의 열렬한 신도였다. 하지만 양 씨는 생명보다 중하게 여기던 종교적 계율을 깨고 4월 20일 수혈을 받아 수술을 받는 등 삶에 대한 강한 집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들은 양 씨가 죽을 마음이었다면 애초에 수혈도 받지 않았을 거라며 촉탁살인이라는 김 여인의 주장에 강하게 반발했다.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김 여인은 이후에도 ‘남편의 제의로 그랬다’며 끈질기게 항변을 계속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죗값을 치러야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