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5년 전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일명 ‘법정증인 보복살인’사건이다. 한 청년의 일그러진 복수심이 만들어낸 참극, 그 사건속으로 들어가보자.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피투성이 상태의 어린이 두 명이었다. 어린이들은 이불에 덮여 있었는데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황 씨의 초등학생 아들 준식 군(가명·11)과 이웃집에 사는 김동재 군(가명·6)이었다. 두 어린이는 둔기로 얼굴과 머리 부분을 심하게 폭행당해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그리고 건너방에서는 황 씨의 부인 박혜숙 씨(가명·37)가 흉기에 찔린 채 쓰러져 있었다. 박 여인의 옆에는 범인이 버리고 간 것으로 보이는 피묻은 흉기가 나뒹굴고 있어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 여인은 급히 응급실로 후송됐고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가정집에서 발생한 때아닌 살인사건에 경찰은 비상이 걸렸다. 한 이웃 주민은 사건발생 시각에 신원을 알 수 없는 20대 청년이 황 씨의 집에서 황급히 뛰어나와 엑셀 승용차를 타고 달아나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 또 엑셀 승용차를 타고 70m쯤 주행하던 청년이 골목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과 부딪히자 그대로 차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진술도 추가로 확보됐다.
수사팀은 우선 목격자들의 진술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20대 남성을 추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추적은 어렵지 않았다. 차적을 조회한 결과, 차량 주인은 김윤철 씨(가명·27)로 드러났다.
당시 집에는 황 씨의 딸 지영 양(가명·13)도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일 오후 황 씨의 집을 찾아온 김 씨는 “엄마가게에 전화를 걸어 엄마 좀 들어오라고 해라”고 말했고 이에 지영 양은 엄마에게 전화를 건 뒤 밖으로 외출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집 근처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던 부인 박 씨는 “어제 집에 찾아온 아저씨가 다시 왔다”는 딸의 전화를 받고 집으로 갔다가 변을 당했다.
김 씨가 황 씨의 집에 찾아와서 끔찍한 살인극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의문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렸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황 씨의 부인 박 여인에 따르면 김윤철은 사건 전날에도 집에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황 씨가 있는 자리에서 ‘전에 법정에서 내게 불리한 증언을 해 섭섭했다. 그동안 엄청 찾아다녔다’고 말한 뒤 저녁식사까지 하고 갔다는 것이다. 김 씨는 수년 전 황 씨가 공장장으로 있던 등촌동의 ○○합성에서 근무하던 인물로 밝혀졌다. 즉 황 씨는 김 씨의 전 직장 상사였던 셈이었다.”
그렇다면 김 씨가 언급한 ‘불리한 진술’이란 무엇일까.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김윤철은 ○○합성 근무 당시 공장직원인 A 양(당시 17세)을 성폭행한 죄로 3년 6개월간 복역한 뒤 93년 11월 출소했다. 황 씨는 김 씨가 재판받을 당시 법정 진술을 했다고 한다. 황 씨는 ‘피해를 당한 종업원이 상담을 요청해오는 바람에 성폭행 사건에 대해 알게 됐고 법원에서도 있는 그대로 진술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철은 황 씨가 법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바람에 3년 6개월이라는 실형을 살게 됐다고 생각하고 보복을 결심했던 것 같았다.”
▲ 영화 [데쓰노트]의 한 장면. | ||
수사팀은 김 씨가 버리고 간 차량에서 한 권의 노트를 발견했다. 노트에는 놀랍게도 범행대상자들의 이름과 동기 등이 적혀있었는데 ‘반드시 죽이겠다’고 적어놓아 수사팀을 긴장시켰다.
수사팀은 황 씨 일가족 외 김 씨가 지목한 또 다른 범행대상에 주목했다. 노트에 따르면 김 씨의 또 다른 복수 대상은 양진희 씨(가명·22)와 그녀의 동거남 이영훈 씨(가명·24)였다. 확인결과 김 씨는 지난 3월 경기도 광주에서 양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가 그해 여름 불기소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양 씨는 김 씨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을 넣었고 이에 앙심을 품은 김 씨와 심각한 갈등을 빚어왔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가 황 씨 가족들에게 저지른 범행으로 볼 때 2차 보복살인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노트에는 “내일 양○○를 죽이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이날 경기도경찰청 박봉태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원경찰서 송죽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김 씨 검거에 나섰다. 동시에 형사들은 즉시 양 씨의 집이 있는 경기도 광주로 출동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11일 오전 1시 40분께 수사팀이 양 씨의 집에 도착했을 때 양 씨의 단칸 셋방은 이미 피바다로 변해 있었다. 양 씨와 동거남 이 씨는 둔기로 얼굴과 머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가격당한 채 쓰러져 있었는데 특히 이 씨는 의식이 없는 중태였다.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주민들은 양 씨 등의 피해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수사팀은 이웃들이 눈치챌 만큼 큰 소란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잠을 자고 있던 양 씨 등이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변을 당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조사결과 양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소된 김 씨는 불기소처분을 받고 풀려난 후 수차례 양 씨를 찾아가 “당한만큼 갚아주겠다”며 협박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의 엽기적인 보복범행에 수사팀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범행 후 김 씨가 보인 행동이었다. 김 씨는 연달아 범행을 저지른 후인 11일 오전 1시 30분부터 수사기관 등에 전화를 거는 대범함을 보였다. 김 씨는 11일 새벽 1시 35분께 수원경찰서 형사계에 “황진배를 죽이고 자수하겠다”는 전화를 걸어왔다. 또 같은 날 오전 9시 30분부터는 친구와 누나 등에게 총 일곱 차례 전화를 걸어 “내가 피해자인데 왜들 시끄럽게 하느냐” “황진배를 죽이기 전에는 절대 자수하지 않겠다” “성남인데 돈이 떨어졌으니 통장으로 돈을 부쳐달라” “모두 잘 살아라. 나는 인생을 포기했다. 황진배를 죽이고 자살하겠다”는 통화를 했다.
그리고 김 씨는 경찰이 전화국을 통해 발신지 확인에 들어간 11일 오후부터 지인들과의 연락을 끊고 완전히 잠적했다.
▲ 범인이 남긴 살인비망록. 연합뉴스 | ||
“차량에서 발견된 노트에는 범행 대상뿐 아니라 범행계획과 동기, 심정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김윤철은 대학노트에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자. 살인이면 살인, 노동이면 노동, 범죄면 범죄, 오직 충실할 뿐이다’로 시작되는 10여 장의 일기를 남겼다. 김윤철은 또 ‘황진배 때문에 내 인생은 바뀌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하나하나 찾아 꼭 죽인다. 하나 죽이나 둘 죽이나 사형은 마찬가지’ 등의 적나라한 증오심을 표출하기도 했다.”
김 씨는 범행 후 지인과의 전화통화에서 “교도소 안에서 범행을 계획했으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범행 열흘 전부터 비망록을 썼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비망록에는 극도의 증오심과 분노로 가득차 있었다.
김 씨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추가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다분했다. 한시가 급했다.
전화 발신처를 토대로 수사팀은 구의동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과 성남 모란시장 근처 시외버스터미널 등을 중심으로 추적에 들어갔다. 특히 수사팀은 김 씨가 황진배 씨를 살해하기 위해 다시 수원으로 잠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261개의 검문소 등에 8000명의 경찰력을 집중 배치, 검거에 주력했다. 또 현상금 500만 원이 걸린 전단지 10만 장을 전국에 배포하는 동시에 김 씨의 연고지인 전남 해남 일대에 형사대를 급파, 잠복근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김 씨의 행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사팀은 검문검색이 강화된 현 상황에서 김 씨가 장거리를 이동하지 못했을 거라 판단하고 인적이 드문 사찰과 폐농가, 낚시터 등에 대한 수색에 들어갔다. 또 양평과 안산 등지에서 김 씨를 봤다는 제보에 따라 현장으로 경력을 투입했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김 씨 검거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김 씨가 범행대상으로 지목한 이들의 신변보호였다. 수사팀은 이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해당인물들의 주변에 40여 명의 경찰을 배치, 추가 범행을 막는 데 주력했다. 특히 수사팀은 김 씨가 황 씨 살해에 유독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 수원 진입로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또 수사팀은 김 씨가 평소 위장병을 앓았다는 사실에도 주목, 수도권 일대의 약국에도 김 씨의 전단지를 배포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김 씨의 모습은 어디서도 드러나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수사가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경찰은 결국 김 씨에 대한 현상금을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올려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에 대한 수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은 채 답답한 시간만 흘러갔다.
시간은 벌써 사건 발생 3주가 지나가고 있었다. 수사팀 내부에서 옭죄어오는 수사망과 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한 김 씨가 ‘자살’했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돌아왔다. 11월 6일 오전 11시경, 경기도 성남시 갈현동 갈마터널 뒤편 야산에서 도토리를 줍던 일행들에 의해 한 건의 신고가 접수된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가 목을 매 숨져있다는 내용이었다. 사망자의 소지품 등을 토대로 신원확인에 들어간 수사팀은 그가 보복살인범 김윤철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사건 발생 27일 만이었다. 부검의는 ‘최소한 일주일 전에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수사팀은 사체 주변에 놓여 있던 서류봉투 안에서 김 씨가 작성한 유서 일곱 장을 발견했다. 유서에는 ‘누나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형제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살한다. 죽으려고 마음먹으니 편안하고 한편으로는 울적하다. 잘 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병들고 아파도 어디 한 군데 쉴 곳이 없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김 씨는 유서에서조차 ‘황진배를 죽이지 못한 게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 ‘형제들만 없어도 끝까지 그를 죽이려고 했는데 아쉽다’ ‘억울해서 눈을 못 감겠다’ ‘죽더라도 꼭 황진배만은 죽이겠다’는 등 극도의 증오심을 드러냈다.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던 황 씨 등은 김 씨의 자살소식에 그동안의 악몽을 되새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부검의는 “내장 속에 음식물 등 아무런 내용물도 없었다”며 “쫓기는 바람에 음식물을 구하지 못해 상당기간 굶었던 것 같다”는 소견을 밝혀 그의 처참한 도피생활을 짐작케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