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각 계파가 장외 당원확보 경쟁에 뛰어드는 등 당권을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 11월26일 열린우리당 의원총회 장면.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열린우리당의 당권 경쟁은 이미 몇 개월 전부터 불붙기 시작했다. 그 첫 ‘발화점’은 유시민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개혁당파였다. 지난 8월 ‘당원이 주인이다’는 슬로건으로 무장한 개혁당 출신 당원들이 8일간 중앙당사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며 투쟁을 벌인 결과 진성당원의 자격요건을 엄격하게 유지하도록 하는 개혁당파들의 주장이 그대로 관철된 바 있다.
그 뒤 유시민 의원이 중심이 된 ‘참여정치연구회’도 본격 발족되면서 개혁당파들의 세 확장이 눈에 띄게 두드러졌다. 특히 개혁당파는 ‘경기도발전특위’ 발족식에서 참정연 회원인 유시민 의원이 위원장인 경기도당이 기간당원 5만 명 모집계획을 천명해 당원 배가운동을 노골화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당내에서는 ‘이러다가 당이 개혁당파 손에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당권파의 한 재선 의원은 “개혁당파가 진성당원 확보에 열성이지만 아직 그 숫자는 미미한 편이다. 나중에 전당대회가 가까이 오면 조직을 총동원해 당원 배가운동을 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진성당원 확보 데드라인이 다가오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선거권을 가진 진성당원 모집 시한이 12월 초로 다가오면서 각 계파에 당원 확보 비상이 걸린 것이다. 이에 따라 10월 말까지 3만7천여 명에 불과했던 기간당원 수는 최근에는 6만여 명으로 늘었다. 특히 최근 1주일 새에만 1만 명 이상이 증가함으로써 당 안팎에서는 그동안 세 대결을 관망해온 각 계파가 확보해둔 사람들을 대거 당원으로 등록시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다 보니 곳곳에서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 한 관계자는 “이미 상당수 지역에서 과열 양상이 빚어지고 있어 당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이런 장외의 당원 확보 전쟁과 함께 각 계파의 당권 경쟁도 점차 긴박해지고 있다. 먼저 최대 계보의 하나인 당권파는 그동안의 ‘겨울잠’에서 벗어나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면서 계파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남북문제나 북한 핵문제 등 현안에 골몰해 ‘내공쌓기’에만 주력, 공부하는 지도자상을 심기에 여념이 없다. 일부 참모들은 “정 장관이 통일부 수장으로서 아직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년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하지만 정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성공해야만 대권 도전도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라며 쉽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신기남 전 의장은 최근 사무실도 내고 홈페이지도 개편하는 등 당권 도전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난 11월 말 광주 지역 의원들과 만찬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정배 원내 대표도 당권에 강한 미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4대 개혁입법 처리가 당권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고 그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험난한 길이 많아 여의치 않은 형편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재야파는 당권파에 비해 훨씬 조직적으로 당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특히 재야파는 임채정-장영달 중심의 당 장악 프로그램까지 가동시키고 있다는 주장들이 당 주변에 확산되고 있다.
김 장관측은 한반도재단을 중심으로 당원 배가운동에 더욱 땀을 흘리고 있다. 최근에는 한반도재단 핵심 관계자가 전국을 돌며 조직사업에 열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재야파의 한 관계자는 “최근 2~3년 간 재단의 하부 조직이 당원 자격을 획득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고 말한다. 이 재단이 재야파의 핵심 하부 조직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한반도재단에 관여해 온 최규성 의원의 경우 이미 2천여 명의 기간당원을 확보하는 등 내년 3월 전대를 앞두고 김 장관 진영의 당원 확보 작업이 거세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재야파는 현재로서는 장영달 의원을 당 의장으로 추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본인의 뜻이 워낙 강하고 마땅한 대안도 없기 때문에 적극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이 연기금 발언을 통해 ‘천기’를 누설해버려 여권의 집중적 견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차라리 당권 도전으로 방향을 틀어 확실하게 차기 주자의 이미지를 보여주자는 의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유시민 의원이 이끌고 있는 개혁당파는 이번 당권 경쟁의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개혁당 그룹은 일찍부터 진성당원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용히 물밑에서 당원 확보에 온 힘을 쏟아왔다. 개혁당파는 내년 전대에서 김두관 참정연 대표를 내세워 독자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려울 경우 재야파와 손잡을 가능성이 크다. 개혁당파는 지난 원내대표 경선 당시 ‘반 당권파 비주류 연대’를 기치로 내걸고 김근태 그룹과 함께 이해찬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천-신-정 3인방보다 덜 개혁적이고 지역주의 색채는 오히려 강하게 느껴지는 장영달 의원을 후보로 밀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개혁당파의 약진과 함께 국참연대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민의 힘’을 중심으로 노사모 그룹과 노하우21 등 친노 직계가 주축이 돼 정치세력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국참연대가 뜨면서 친노 그룹이 유시민 계와 반 유시민 계로 나누어지는 등 갈등을 겪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국참연대가 활동을 시작한 배경에 개혁당파를 견제하려는 뜻이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참연대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 당권파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 개혁당파가 지난 여름부터 줄기차게 진성당원 확보에 주력하며 당권 도전을 강하게 밀어붙이자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당권파가 국참연대를 지원하며 방어막을 펴고 있다는 해석이다. 국참에는 친 정동영계 의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어 당권파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게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국참연대와 함께 문희상 유인태 김혁규 이광재 의원 등 친노 직계 그룹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노 직계 그룹은 당내 역학구도상 ‘간판주자’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이 정동영-김근태 두 차기 주자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그 파괴력은 상당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에 따라 거취를 고민하는 이들 인사를 놓고 당권파와 재야파의 구애노력이 갈수록 노골화될 전망이다. 12월4일 열릴 친노 그룹 결집체인 ‘일토삼목회’ 정례모임에서 전대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이에 대해 “친노 직계 인사들의 경우 일거수 일투족을 ‘노심’의 향배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는 점 때문에 당권경쟁에 미칠 파괴력이 크다”며 “전대 대의원을 선출하는 지역당원협의회 구성이 완료되고, ‘4대 입법’의 향배가 결정될 내달 중순 이들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당권 전초전의 첫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위 다섯 계파 외에 ‘안개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내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안개모는 지난 11월23일 첫 공식모임을 갖고 내년 전당대회에서 노선을 같이하는 후보를 지지키로 의견을 모았다. 특히 안영근 안개모 간사는 이 자리에서 “합리적 개혁을 통해 국민에게 뿌리내릴 수 있는 당 의장이 뽑힐 수 있도록 당원 배가와 조직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선언하며 당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채비를 갖췄다.
안개모는 독자 후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영남과 충북에서 상당한 세를 확보한 김혁규 상임중앙위원과 제휴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