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따르면 A 씨의 사기행각은 김영삼 전 대통령 집안과의 인연이 끊긴 후부터 시작됐다. 그는 1989년 9월경 YS 여동생의 딸 B 씨와 결혼식을 올린 뒤 5년간 혼인관계를 유지해오다 1994년에 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A 씨가 결혼 당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부부가 아니지만 약 5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한 건 사실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A 씨는 B 씨와 헤어진 이후 이혼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주변에 “내가 YS의 조카사위”라며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떠벌려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검찰은 “사기행각을 벌일 목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배경을 각인시키려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작업’을 한 A 씨가 처음 사기행각을 벌인 것은 2002년도 초. 그는 당시 주변사람들에게 “목 좋은 곳에 부동산을 구입했으니 투자하라”고 말하며 투자자를 찾았다. 이때 걸려든 인물이 오 아무개 씨.
▲ 김영삼 전 대통령 | ||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난해 5월. A 씨는 이번엔 윤 아무개 씨에게 접근해 신약 개발정보를 미끼로 ‘작업’을 했다. A 씨는 “제약회사들이 개발 중인 신약 정보를 입수했다”며 “투자만 하면 다섯 배 이상 돈을 벌 수 있다”고 윤 씨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당시 A 씨가 거론했던 제약사들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 회사들이었다. A 씨는 이 과정에서도 자신이 YS의 조카사위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 말에 속은 윤 씨는 네 차례에 걸쳐 4000만여 원의 돈을 A 씨에게 송금했다. 그러나 A 씨는 돈을 받자마자 잠적해버렸다. 윤 씨는 A 씨가 사라진 후에야 그가 이미 김 전 대통령 집안과는 남남이 됐으며 자신과 똑같이 당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속은 것을 알게 된 윤 씨는 검찰에 이를 고발했고 결국 A 씨는 지난달 23일 검찰에 구속됐다.
그런데 수사결과 A 씨는 기존에 알려진 사건 외에도 ‘눈먼 나랏돈’ 운운하며 황당한 사기극을 연출, 수억 원대를 편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2006년 8월경 손 아무개 씨에게 접근한 A 씨는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S 개발사에서 추진하던 온천개발사업자금 5000억 원이 국고에 환수돼 있는데 IMF 이후 은행 인수 합병 과정에서 임자 없는 돈이 됐다”며 “고위층과의 친분을 이용하면 이 돈을 빼내 활용할 수 있다”고 속였다.
A 씨는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전직 청와대 고위직 인사라고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지금 그 돈을 관리하는 청와대 책임자와는 예전에 같이 근무한 사이라서 잘 안다”면서 “이 인사에게 로비하면 돈을 찾아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손 씨는 A 씨의 말에 넘어가 2억 원을 로비자금 명목으로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손 씨는 A 씨가 사기혐의로 구속된 후에야 자신이 속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검찰은 A 씨가 실제로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는지와 로비사실 유무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A 씨가 편취한 수억 원을 어디에 썼는지 드러나지 않았고, 또 A 씨가 지목했던 개발 예정지가 실제 개발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단순 사기사건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