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인 강 군이 사라진 것은 이날 오후 3시께.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던 강 군은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강 군은 실종 닷새 만에 수원의 한 저수지에서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충격적인 것은 발견 당시 강 군이 쌀 포대에 담겨져 수장돼 있었다는 점이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9년 전 사회를 들끓게 했던 일명 ‘수원 어린이 수장살해 사건’이다.
이날 오후 세류동 주택가에는 강 군을 찾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강군의 부모는 주택가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 군을 찾았다. 하지만 강 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강 군이 ‘잠깐 놀다 오겠다’며 집을 나선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강 군은 한참 동안 집 근처에서 혼자 놀고 있었다. 하지만 약 3시간이 지났을 무렵 강 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곧 돌아오겠거니…’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슬렀지만 해가 진 후에도 강 군이 귀가하지 않자 강 군의 부모는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없이 아이가 사라졌던 적은 여지껏 단 한번도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강 군은 평소에도 집 근처에서 자주 놀곤 했지만 항상 해가 지기 전에 알아서 귀가하던 착실한 아이였다. 특히 강 군의 평소 성격상 부모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스스로 집 근처를 벗어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대체 강 군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이상한 점은 목격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낮에 아이가 혼자 주택가를 헤매고 있다면 누구든 강 군을 목격한 사람이 있었을 터였다.
‘설마 유괴?’ 강 군 부모의 머릿속에서 불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군가 강 군을 유괴했다 해도 목격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점이었다. 실제로 강 군의 부모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강 군과 함께 있거나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는지를 알아봤으나 수상한 사람을 봤다는 동네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 군은 말 그대로 감쪽같이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강 군의 부모는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며 뜬 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우려했던 일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강 군이 실종된 다음날 오후 5시 15분께 강 군의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20~30대 목소리의 남성이었다. 남자는 강 군의 어머니에게 ‘찬희를 데리고 있다’고 말했다. 범인이 원한 것은 역시나 돈이었다. 범인은 ‘우선 1000만 원을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할 경우 찬희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는 협박도 뒤따랐다.”
강 군이 유괴됐음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설마했던 일이 발생하자 강 군의 부모는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강 군의 부모는 일단 경찰에 신고를 했다.
즉시 수사팀이 꾸려졌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의 안전이었다. 따라서 수사는 범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범인의 협박전화는 이후에도 수차례 계속됐다. 아이 부모나 수사팀이나 가장 궁금한 것은 과연 찬희가 무사한지였다. 범인들은 아들의 생사 여부를 묻는 강 군의 부모에게 ‘찬희는 잘 있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이를 건드리지 않을 테니 안심하고 돈부터 마련하라’고 독촉했다. 범인은 이후 매일 두세 차례씩 전화를 걸어 돈 준비상황을 체크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범인들은 점점 많은 액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1000만 원을 요구했던 범인은 이후 1300만 원, 1800만 원, 3000만 원으로 금액을 늘리다가 급기야 5000만 원을 준비하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이를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알아서 하라’는 참으로 무섭고도 비열한 흥정이었다.”
5000만 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수일내로 준비해야 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5000만 원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데다가 하루하루 빠듯하게 살아오던 강 군의 부모로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강 군의 부모는 돈 준비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전화를 거는 범인들을 붙잡고 “형편이 넉넉지 못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전세금이라도 빼서 반드시 마련하겠다. 약속을 지킬 테니 제발 찬희 목숨만은 보장해 달라”고 사정하며 시간을 끌었다.
이 와중에 수사팀은 범인을 추적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계속 시간을 끌 경우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생각에 수사팀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수사에 들어간 것을 범인이 알아차릴 경우 아이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빨리 범인을 검거해야만 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 김원배 연구관 | ||
이에 당시 범인이 수사상황을 눈치챌 것을 우려한 수사팀은 애초에 언론보도를 철저히 차단한 채 비공개수사에 들어갔다. 당시 상황의 급박함을 알았던 기자들도 ‘강 군 유괴사건’ 소식을 알았지만 보도를 일체 자제한 채 수사에 협조하는 등 취재 윤리를 철저히 지켜줬다.”
수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강 군의 부모가 범인과 돈 마련 문제를 두고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수사팀은 범인의 위치파악에 전력을 쏟았다. 전화국과의 공조수사를 통해 협박전화의 발신위치를 확인한 수사팀은 범인이 수원시 신풍동 일대의 공중전화를 번갈아 돌아다니며 전화를 걸었던 사실을 파악했다. 그리고 마침내 8일 밤 10시 40분께 수원시 장안구 신풍동의 한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고 있던 남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강 군이 유괴된 지 꼭 나흘 만이었다.
현장에서 검거된 범인은 장순철 씨(가명·24)였다. 잠복 중이던 수사팀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된 장 씨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조사결과 범인은 장 씨와 그의 후배 마정식 씨(가명·22)를 포함해 총 3명으로 드러났는데 충격적인 것은 범행에 장 씨의 부인 최은희 씨(가명·20)도 가담했다는 사실이었었다. 수사팀은 수원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마 씨와 집에 있던 최 씨를 추가로 검거, 범행일체를 자백받았다.
가장 궁금한 것은 강 군의 생사 여부였다. 하지만 강 군의 행방에 대해 이들은 일제히 침묵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수사팀의 추궁 끝에 장 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죽였습니다”였다.
20대 젊은 부부와 학교후배가 공모한 끔찍한 유괴살인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조사결과 드러난 이들의 범행동기와 과정은 이렇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장 씨는 술집에서 만난 최 씨와 오랜 동거생활 끝에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였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다. 특히 강도상해·강간치상 등으로 복역하는 등 수차례의 전과로 생활력도 없었다. 장 씨는 수원에서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으나 사업수완도 경험도 없던 그에게는 무리였다.
장 씨 부부는 카페가 망하면서 극심한 경제난에 직면하게 된다. 빛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 계속되자 장 씨 부부는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던 후배 마 씨와 위험한 범행을 공모하게 된다. 부잣집 아이를 유괴한 뒤 부모로부터 돈을 뜯어내기로 한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장순철은 범행을 위해 장모로부터 25만 원을 빌려 중고 포니 승용차를 구입했다. 그리고 8월 30일부터 마정식과 함께 수원 시내를 돌아다니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다. 이들은 쉽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서는 잘사는 집 아이를 골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9월 4일 오후 3시께 집 앞에서 혼자 놀고 있던 강 군을 억지로 차에 태워 납치했다. 강 군의 인물이 좋은 데다가 부잣집 아이처럼 깔끔한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순식간에 강 군을 납치한 이들은 4km가량 떨어진 권선구의 산속도로로 향했고 최은희는 강 군으로부터 부모 이름과 집 전화번호를 알아낸 뒤 받아적었다. 그리고 장순철과 마정식이 번갈아 강 군의 목을 졸랐다. 유괴한 지 불과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은 일은 사체처리였다. 적당한 사체유기 장소를 물색하다가 15km 떨어진 용인의 한 저수지에 도착한 이들은 죽은 줄 알았던 강 군이 의식을 되찾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다시 5분가량 목을 졸라 의식을 잃게 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이들은 다시 정신을 잃은 강 군을 저수지에 버리려 했으나 인근에 낚시꾼들이 많은 것을 보고 다시 20km가량 떨어진 수원시 장안구의 한 저수지로 향했다. 그리고 길에서 주운 쌀포대에 숨이 붙어있는 강 군과 10kg짜리 돌 두 덩어리를 집어넣고 저수지에 던졌다.
장 씨는 범행동기에 대해 “다른 형제들은 잘 사는데 나만 동생에게 얹혀 살았다. 큰돈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특히 수사팀은 부모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전에 이미 강 군을 살해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장 씨는 “아이를 살려보내면 언젠가는 잡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초에 아이를 먼저 죽이고 협박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팀을 더욱 경악케 만든 것은 이들이 추후 추가 범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장 씨는 “수원 시내를 돌아다니며 10명 정도의 어린이를 납치해 돈을 뜯어내기로 모의했다. 성공하면 외국으로 탈출하려 했다”고 털어놨다.
수사팀은 9일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의 한 저수지를 2시간 동안 수색한 끝에 강 군의 주검이 들어있는 쌀 포대를 찾아냄으로써 수사를 종결지었다. 미성년자약취유인 및 살인·사체유기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들은 범정에서 각각 사형(장 씨, 마 씨)과 무기징역(최 씨)을 선고받았다.
“피고인들의 범행 경위는 극악무도한 인간 심성과 황폐화된 인격을 엿보게 하는 것으로 인명경시 풍조를 불식하고 땅에 떨어진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 극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소회였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