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로만 폴란스키 감독. 그는 영화감독이자 배우, 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로즈메리의 아기>(1968),<차이나타운>(1974), <테스>(1979), <피아니스트>(2002) 등으로 명성을 쌓았다. | ||
세계적인 거장 로만 폴란스키 감독(76)이 지난 9월 26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전격 체포되면서 1978년부터 계속되어 오던 망명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됐다. 지난 1977년 13세 소녀와 불법적으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LA에서 기소됐던 폴란스키 감독은 구속되기 직전 프랑스로 도피한 후 지난 30여 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해왔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유럽을 전전했던 그는 지난 2003년 영화 <피아니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과연 그는 30년이 지난 그때 그 사건으로 법의 심판을 받고 뒤늦게나마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미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한 채 계속해서 도망자로 사는 쪽을 택할까. 지난달 26일, 취리히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기 위해 스위스에 도착한 폴란스키 감독이 LA 지방검사의 요청으로 출동한 스위스 경찰에 의해 공항에서 체포되는 일이 발생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급작스런 순간이었던 것은 물론, 30년 넘게 계속되어 온 폴란스키 감독의 도피생활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현존하는 최고의 명감독 중 한 명으로 칭송 받고 있는 그가 어쩌다가 이런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고만 걸까. 폴란스키 감독을 할리우드의 천재 감독에서 파렴치한 성범죄자로 몰아넣었던 사건은 30여 년 전인 지난 1977년 벌어졌다.
프랑스 출신의 폴란드계 유대인이었던 그는 60년대 말 할리우드로 건너온 후 <로즈마리의 아기>, <차이나타운>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폴란스키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망한 감독이자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감독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그리 순탄치 못했었다. 어린 시절 유대인이었던 어머니는 나치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고, 자신은 수용소에서 가까스로 탈출해서 겨우 살아남는 등 끔찍한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승승장구하던 1969년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쳤다. 당시 부인이자 배우였던 샤론 테이트가 미치광이 집단인 찰스 맨슨 일당에 의해 저택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폴란스키 감독은 영화 촬영차 집을 비운 상태였으며, 부인 테이트는 임신 8개월인 만삭의 몸으로 다른 일행 여섯 명과 함께 수십 차례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으로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던 폴란스키 감독은 자신의 불안하고 어두운 내면을 폭력적인 영화에 고스란히 담아내기 시작했으며, LA, 파리, 로마 등을 오가며 여성 편력을 과시했다.
훗날 자서전에서도 그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사탄이나 난봉꾼으로 여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특히 가까운 친구들이나 내 인생을 거쳐 간 여자들은 아마도 더 잘 알 것”이라고 적기도 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8년 후인 1977년, 이번에는 또 다른 인생의 고비가 닥쳤다. 당시 프랑스판 <보그>의 객원 편집인으로 초대되었던 폴란스키 감독은 LA에 있는 잭 니컬슨의 집에서 당시 13세 소녀 모델이었던 사만다 게이머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었다. 당시 44세였던 그는 자신보다 무려 서른한 살이나 어린 소녀에게 성적인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샴페인에 수면제를 섞어 마시게 한 다음 강제로 성관계를 맺고 말았다.
문제는 당시 성관계가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는지, 아니면 일방적인 강간이었는지에 있었다. 이 부분에서 당시 양측의 주장은 팽팽히 엇갈렸다.
게이머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던 폴란스키 감독은 당시 경찰 진술에서 “서로 동의 아래 맺은 성관계였다. 소녀는 이미 성관계 경험이 있었고, 자신 역시 원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녀는 “분명히 여러 차례에 걸쳐 ‘안 돼요’라고 말했지만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존 휴스턴 감독의 딸이자 니컬슨의 애인이었던 안젤리카 휴스턴도 폴란스키 감독을 거들고 나섰다.
그녀는 “당시 소녀는 마치 스물다섯 먹은 어른처럼 행동했으며, 아무 것도 모른 채 공포에 떠는 열세 살 소녀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런 증언에도 불구하고 당시 강간, 아동성추행, 미성년 약물제공 혐의 등 6개의 죄목으로 기소됐던 폴란스키 감독은 최고 징역 20년에 처해질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폴란스키 감독은 결국 체포되기 직전 해외로 도피하는 위험한 길을 택하고 말았다. 1978년 영국을 거쳐 프랑스로 도피한 그는 그후 30년 동안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단한 번도 미국 땅을 밟지 않았다.
30년 동안 미 검찰로부터 수배를 받고 있는 탈주자 신세였지만 그럼에도 그의 작품 활동은 유럽에서 꾸준히 계속됐고, 급기야 지난 2003년에는 아카데미 11개 부문 후보에 올랐던 <피아니스트>와 같은 걸작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범죄자라는 꼬리표는 내내 마음에 걸렸던 모양. 지난해 12월 폴란스키 감독은 LA 검찰 측에 자신의 소송을 기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가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은 2008년 에미상을 수상한 다큐 영화 <로만 폴란스키:원티드 앤 디자이어드> 덕분이기도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다큐는 당시 문제가 많았던 미 사법부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한편, 폴란스키의 아동성추행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한 작품이었다.
가령 피고인이었던 폴란스키가 없는 상태에서 판사와 검사 사이에서만 이루어진 대화로만 법이 집행됐다는 점, 사건을 조사하고 심문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직권을 남용했다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폴란스키의 변호인은 이 다큐를 근거로 자신의 의뢰인이 사법부의 부당한 직무 수행과 편견으로 피해를 봤다면서 LA 검찰에 소송을 기각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지난 1월에는 사법위원회에 LA가 아닌 다른 주의 중립적인 판사에게 사건을 맡기고 싶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바람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LA 검찰은 “그가 1978년부터 계속 자의적으로 도주해왔으며, 법정에 출두하지 않는 한 소송 기각을 요청할 권리가 없다”며 거부했다. 또한 여전히 혐의가 남아있다는 것도 소송 기각 요청이 거부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이 사건에 대한 소송이 기각되길 바라고 있는 것은 당시 피해자였던 게이머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세 자녀의 어머니로 하와이에 거주하고 있는 45세의 게이머는 “폴란스키 감독이 나한테 저지른 짓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나 나나 좀 쉬었으면 좋겠다. 제발 조용히 살고 싶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는 이상 자신 역시 계속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괴롭다는 것이다.
또한 2008년 가졌던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나는 그를 용서한다. 기나긴 망명 생활만으로도 이미 벌을 충분히 받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사실 강간이라고 말하면 폭력을 떠올리게 되는데 사실 당시 폭력은 없었다”며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한편 자칫하다간 외교분쟁으로 확대될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프랑스, 미국 등 양측은 현재 폴란스키 감독의 송환 여부를 두고 극도로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체포 소식이 전달된 직후 프랑스의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부장관은 “매우 충격적이다”고 말하면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한 편의 영화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폴란스키 감독 본인은 오히려 이번 체포가 잘된 일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과야 어떻든 기나긴 도망자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게 됐으니 말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