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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비열한 거리> | ||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때 남자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끔찍한 살인사건이었다. 대낮에, 그것도 법원 앞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사람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는 송파구 방이동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던 임대성 씨(가명·33)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동부지원 건너편 길가에서 20대 청년 3명이 임 씨를 둘러싸고 실랑이를 벌였으며 이들 중 한 명이 길가 좌판에 있던 부엌칼 2개로 임 씨의 목을 찔렀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사건은 19년 전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법정 증인’ 살인사건이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사건 정황으로 볼 때 범인은 임 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 분명했다. 이들이 임 씨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주목할 만한 점은 이날 2시 30분에 열린 재판에 임 씨가 검찰 쪽 증인으로 나와 중요한 증언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조사결과 임 씨는 이날 강동경찰서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지난 3월 말 구속된 최태석 씨(가명·23) 등 4명의 구형공판에 고소인 겸 증인 자격으로 출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 참석한 사람은 이날 다른 피해자와 함께 법정에 출석한 임 씨가 ‘최태석이 술집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탁자를 뒤집는 등 기물을 파괴하고 금품을 갈취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조사결과 임 씨는 1989년 8월 자신이 운영하는 방이동 소재의 룸살롱에 찾아와 10여 차례에 걸쳐 술을 마시고 무전취식과 공갈을 일삼는 등 행패를 부린 최 씨 등을 고소했고, 이에 따라 최 씨 등이 지난 3월 구속기소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날 열린 공판에서 피고인 최 씨 등은 폭력행위 등이 인정되어 검찰로부터 징역 3년씩을 구형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황으로 볼 때 피해자였던 임 씨는 피고인 측에 불리한 증언을 한 셈이었다.
수사팀은 범인이 임 씨가 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조사결과 임 씨는 피고인 최 씨 측 변호사에게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합의서를 써줬으나 이날 법정에서는 최 씨 등의 범행사실을 사실대로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리고 범인들의 범행동기를 확실히 뒷받침해주는 구체적인 목격자 진술도 추가로 확보됐다. 실제로 사건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법원 마당에서 20대 청년 3명이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임 씨를 둘러싸고 “증언을 왜 그따위로 하느냐”며 심하게 항의하면서 어디론가 끌고 가려 했다는 것이다.
이에 위협을 느낀 임 씨는 이들을 뿌리치고 법원 밖으로 달아났고, 임 씨를 뒤쫓아간 청년들 중 한 명이 순식간에 임 씨의 목을 찔렀다는 것이었다.
특히 수사팀은 이날 임 씨가 법정에서 이들의 범죄행위를 인정하는 것 외에도 “최태석 등은 ‘××파’라는 폭력단체 조직원이 맞다”는 증언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범인들은 조직원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것에 앙심을 품은 다른 조직원들의 범행일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리고 수사결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수사팀은 구속 중인 최태석 등의 면회접견부를 확인한 결과 최 씨 등이 ××파 행동대원임에 무게를 실어주는 단서들을 포착했다.
수사팀이 파악한 범인들은 ××파 행동대원인 변태원(가명·24), 강동순(가명·25), 김호석(가명·25) 등 3명이었다.
범인들이 조직 우두머리의 지시에 의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주목한 수사팀은 즉시 ××파의 연고지인 전라남도 광주에 형사대를 보내 추적에 들어갔다.
또 수사팀은 ××파 서울총책이 경기도 포천에서 OO종합식품을 경영한 정황을 잡고, 회사 관계자 및 주변 인물들의 동향을 살피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수사팀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사건 발생 이틀 후 범인들이 OO종합식품 공장에 은신해있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이었다. 수사팀은 OO종합식품이 있는 경기도 포천군 포천읍에 소재한 공장으로 형사대를 급파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공장에 숨어있던 범인들이 수사팀이 덮칠 것을 눈치 채고 검거직전 공장 뒤 해룡산으로 달아나는 바람에 검거에 실패하고 만 것이다.
수사팀은 포천경찰서 기동대 4개 중대 600여 명을 동원해 해룡산 일대에 대한 밤샘 수색을 벌였으나 헛수고였다. 대신 수사팀은 현장에서 범인들이 범행당시 입었던 피 묻은 검정색 체크무늬 옷 등을 압수하고 범인들을 숨겨줬던 ××파 중간보스 조영곤 씨(가명·27)를 붙잡아 철야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조 씨로부터 “변태원이 임 씨를 칼로 찌르고 나머지 두 명이 임 씨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는 등 범행에 공조했다. 나는 이들의 연락을 받고 사건 다음날 오후 2시께 공장으로 와서 이들을 만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수사팀은 변 씨 등을 검거하기 위해 의정부지청 수사관들과 공조수사에 들어가는 동시에 포천·의정부·남양주 3개 경찰서에 비상령을 내려 범인들의 예상 도주로를 차단하는 등 대대적인 수색·검거 작전에 나섰다.
가장 먼저 수사팀에 덜미를 잡힌 사람은 일당 중 한 명인 김호석이었다. 수사팀은 15일 포천의 공장에서 검거된 김 씨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확보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범인들이 범행 후 변 씨의 친구가 근무하는 구의동의 한 사무실에 들러 무려 20분 이상을 머무르면서 도주 방법을 모색했다는 것이었다. 또 주범인 변 씨는 피 묻은 와이셔츠 대신 새 와이셔츠로 갈아입었으며 검문을 피하기 위해 범행에 사용한 차량 대신 친구 소유의 쏘나타 승용차를 빌려 타고 포천으로 달아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범행 후 수사팀을 따돌리고 유유자적 포천으로 빠져나갔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특히 이들이 범행 직후 머물렀던 사무실은 동부지청과 동부경찰서 사이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동부경찰서와는 불과 1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사건 직후 경찰의 허술한 수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주범 변태원 등 2명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수 일이 지나도 이들의 동선이 드러나지 않자 다급해진 당시 이종남 법무부 장관은 수사지휘부를 확대·개편할 것을 검찰에 지시해 수사팀이 대폭 강화되기도 했다.
이에 수사 전담반은 동부지청 외에 서부·북부·남부지청 등 3개 지청에도 확대 편성됐다. 결과적으로 검·경 합동으로 꾸려진 수사팀에는 5000여 명에 달하는 수사 인원이 투입됐으며 범인들의 연고선과 예상 은신처 100여 곳에 대한 집중 수사가 이뤄졌다.
행적이 묘연하던 변 씨의 동선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난 20일이었다. 범인들이 도피 과정에서 도피자금 조달을 위해 몇몇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이었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변태원이 범행 직후인 13일 오후 동료 A 씨에게 도피 자금 200만 원을 부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이틀 후인 15일에는 변태원이 지인인 B 씨를 찾아가 도피 자금을 구하려 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B 씨는 경찰에서 ‘변 씨가 15일 오후 6시반경 찾아와서 고향 후배 C 씨로부터 도피자금 100만 원을 받아 밤 11시 영등포역 부근 우체국 앞으로 가져오라고 했다. 이에 C 씨를 만나러 갔으나 그가 근무하는 회사를 찾지 못해 그냥 돌아왔으며 그날 밤 약속장소에 나갔으나 변 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또 C 씨를 조사한 수사팀은 변 씨가 15일 오후 2시반경 C 씨의 회사로 전화를 걸어 5시까지 독산동에 있는 한 회사 앞으로 100만 원을 가져오라고 시켰으나 정작 약속장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수사팀은 변 씨 등이 동료 및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서울에서 도피 행각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서울시내 연고지를 대상으로 집중적인 검문검색 및 탐문수사를 진행했다.
그러던 중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수사망이 좁혀드는 것을 직감한 주범 변 씨가 도피를 포기하고 결국 자수 의사를 밝혀온 것이었다. 이어지는 김 연구관의 얘기.
“24일 오후 6시 30분께 변태원이 서울동부지검 동부지청 서우정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자수하겠다. 집에가서 아버지께 범죄 사실을 털어놓고 사죄하고 나오겠다. 그때까지 검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해온 것이다. 이에 검찰은 변태원의 집이 있는 장성에 형사대를 대기해 놓고 집을 나서는 변 씨를 연행했다. 사건 12일째 되는 날이었다.”
변 씨는 조사과정에서 “임대성 씨가 합의를 해주고도 법정에서 동료인 최태석 등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것에 격분,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수사팀이 배후조직으로 지목했던 ××파 등의 폭력조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변 씨는 그간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수사팀이 가장 궁금한 것은 변 씨의 도주 경로 및 은신 행각이었다. 변 씨는 “그간 정읍 내장산 등산로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왔다”고 털어놨다.
조사결과 변 씨는 범행 다음날인 14일 오후 수사팀이 포천의 공장을 덮치자 동료의 승용차로 의정부 전철역까지 빠져나온 뒤 전철을 이용, 서울로 잠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영등포역에 도착한 후 측근들로부터 도피자금 60만 원을 받아 송파구의 심야 이발소에서 밤을 보냈다. 16일 새벽 남대문 시장에서 텐트 등 등산장비를 구입해 고속버스편으로 정읍으로 내려간 후 생필품 등을 구입해 내장산으로 가서 9일 동안 텐트를 치고 도피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폭우와 좁혀드는 수사망에 부담을 느낀 나머지 24일 오후 하산, 택시를 타고 장성에 있는 친지 집에 머물다 고향집에 도착해 자수의사를 밝히게 됐다”는 것이 변 씨의 진술이었다.
장성경찰서에서 그간의 도피행각 등에 대한 1차 조사를 받은 변 씨는 25일 새벽 서울 동부경찰서로 압송됐다. 수사팀은 범행동기 및 ××파의 배후개입설 등에 대해 집중 조사하는 동시에 검거되지 않은 공범 강 씨의 행방에 대해서도 추궁했다.
압송직후 변 씨는 “더 이상 도망을 다녀봐야 헛수고인 것 같아 아버지와 가족들을 만나본 뒤 자수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 씨는 공범 강 씨의 행방에 대해 “OO식품 공장에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을 때 헤어진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진술했다. 특히 변 씨는 12일간의 도피 과정에서 검문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 수사팀의 허술한 검문검색에 대한 거센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남은 공범 중 한 명인 강 씨는 사건발생 1년여 후인 1991년 7월에야 검거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 주범 변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주범 변 씨는 법정에서도 사형을 선고받고 1997년 겨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