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 교민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는 말들이다. 타국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이 같은 민족인 한국인에게 쉽게 마음을 여는 점을 이용해 교묘한 사기행각을 벌이는 등 피해를 입히는 파렴치한들이 그만큼 많다고 한다. 실제로 그간 발생한 사건들만 봐도 교민들이 같은 한국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월 13일 오후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40대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에서 교민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달아났던 남자는 신출귀몰한 도피행각 끝에 3년여 만에 가까스로 꼬리가 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사업가를 살해한 혐의로 인터폴을 통해 수배된 이 아무개 씨(43)를 태국에서 붙잡아 13일 오전 국내로 압송했다. 교민사회에 더없이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의 전말 속으로 들어가보자.
전과 7범인 이 씨는 2006년 말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건너왔다. 이 씨가 자리를 잡은 곳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120㎞ 떨어진 유흥도시 앙헬레스였다. 부푼 마음을 안고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던 이 씨는 같은 목적으로 필리핀에 온 유 아무개 씨(48)와 안 아무개 씨(44)를 만나게 된다.
‘제대로된 사업을 해서 한번 멋지게 살아보자’는 비슷한 꿈을 갖고 있었던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하며 친분을 쌓아 나갔다.
하지만 불혹이 넘은 나이에 타지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별한 기술은커녕 국내에서 이렇다 할 사업경험도 없었던 이들이 할 만한 사업 아이템은 찾기 힘들었다. 더구나 이들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사업자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필리핀에 도착하기만 하면 새로운 신세계가 열릴 것으로 기대했던 이들의 환상은 현지의 만만찮은 상황에 부딪히면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전전긍긍하던 중 이들은 결국 해서는 안 될 위험한 생각을 하게 된다. 현지에 거주하는 교민을 상대로 무서운 범행을 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들의 범행은 타지에서 사업을 하는 교민이 고국과 같은 동포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향수를 갖고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었다.
때마침 이 씨 일당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마닐라에서 중고 오락기계 임대업을 하고 있던 사업가 조 아무개 씨(57)였다. 조 씨가 2000년경부터 오락기 사업을 하며 크게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씨 일당은 조 씨를 살해한 뒤 그가 갖고 있는 현금은 물론 피땀 흘려 일궈놓은 사업체를 몽땅 가로채기로 공모한다.
2007년 3월 5일 오후 3시경 이 씨는 “좋은 중고 차량을 싸게 구입해 주겠다”며 조 씨를 앙헬레스로 불러들였다. 이 씨는 자신의 말을 믿고 찾아온 조 씨에게 “떠나기 전 차나 한잔 하고 갑시다”라며 조 씨와 현지인 운전기사를 자신의 집안으로 유인했다. 호의를 고맙게 여긴 조 씨는 이 씨 등의 안내를 받으며 응접실에 들어섰다. 그때였다.
‘탕! 탕!’
갑자기 집안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탄을 맞고 쓰러진 사람은 뒤따라 들어오던 조 씨의 운전기사였다. 권총을 들고 있는 이 씨를 발견한 조 씨는 그제서야 뭔가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알아차렸으나 속수무책이었다. 현장에는 이 씨와 그의 일당들이 조 씨를 에워싸며 다가오고 있었다.
끔찍한 살인사건을 눈 앞에서 목격한 조 씨는 심각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조 씨는 이 씨 일당을 붙들고 뭔가 얘기를 해보려 했다. 하지만 이 씨는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권총으로 조 씨의 가슴과 배 부위에 세 발의 총탄을 발사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지척거리에서 총탄에 급소를 맞은 조 씨와 운전기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씨 일당은 조 씨 등의 사체를 욕실로 옮긴 뒤 조 씨의 가방에 들어있던 현금 400만 원을 강취했다.
하지만 이 씨 일당의 범행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같은 날 오후 이들은 조 씨의 부하직원인 김 아무개 씨(46)마저 유인해 이 씨의 집 안에 감금했다. 재갈을 물리고 운동화 끈으로 양손을 묶은 뒤 머리에 총을 겨누는 수법으로 김 씨를 협박한 일당은 김 씨로 하여금 한국에 거주하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게 해 공범 안 씨 여동생의 통장으로 1000만원을 송금하게 했다. 하지만 돈을 입금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은 애초부터 거짓이었다. 일당은 조 씨와 측근들을 모조리 살해한 뒤 사업체를 가로챌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몇 시간 후 돈이 정상적으로 입금된 것을 확인한 이 씨는 약속을 어기고 김 씨에게도 총탄 두 발을 발사했다.
이제 남은 일은 세 구의 사체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사체 처리를 위해 고심하던 일당은 결국 사체를 암매장하기로 뜻을 모으고 집 뜰에 구덩이를 팠다. 가장 먼저 김 씨를 구덩이로 옮겨놓은 일당은 욕실에 유기한 나머지 사체 두 구를 옮기기 위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깨 부분에 총탄을 맞아 기절했던 김 씨가 구사일생으로 정신을 차린 것이다. 김 씨는 이 씨 일당이 자신이 죽은 줄 알고 집안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사이 죽을 힘을 다해 재갈과 결박을 풀고 구덩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가까스로 사람들이 많은 주택가로 향했다.
총탄을 맞은 김 씨를 본 주민들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김 씨는 신속히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다행히 총탄이 급소를 빗겨간 탓에 김 씨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 다. 현지 경찰은 끔찍한 범행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을 때는 이미 한 발 늦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 씨의 진술에 따라 이 씨 일당의 신변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이미 이들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였다. 죽은 줄 알았던 김 씨가 도망친 것을 알게 된 일당이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들 것을 직감하고 범행 직후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친 것이었다.
도망자의 생활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 일당 중 가장 먼저 행적이 포착된 사람은 공범인 안 씨였다. 사건 발생 약 100일이 지난 2007년 6월 27일 공범인 안 씨는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몰래 귀국했다가 경찰에 체포, 징역 7년 6월을 선고받았다. 또 다른 공범 유 씨도 얼마 후 필리핀 현지에서 덜미를 잡혔다.
범행 직후 태국으로 건너간 이 씨는 태국 현지에서 교민 소유의 시가 4억 5000만 원 상당의 중장비를 갈취하는 등 교민을 상대로 파렴치한 범행을 일삼다가 지난해 12월 30일 차량 불법 매매혐의로 현지경찰에 검거됐다.
체포 당시 이 씨는 태국 경찰에 위조 여권을 제시했으나 곧 가짜임이 밝혀졌고, 이 씨의 신원을 의심한 경찰의 조사가 진행됐다. 방콕 주재 한국대사관의 신원확인을 통해 인터폴 적색수배자임이 들통난 이 씨는 강제추방 형태로 국내로 송환됐다.
사건을 담당한 강남경찰서 강력3팀 관계자는 “교민들이 타국에서 외로움과 향수에 젖어 지내면서 같은 민족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신뢰한다는 점을 악용해 저지른 영화 같은 사건이었다. 같은 민족을 상대로 한 이런 범죄는 실로 엽기적일 뿐 아니라 국가적인 망신”이라며 “사법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범인 조기 검거에 어려움이 있었다. 김 씨마저 사망했더라면 영구 미제로 남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피해자 조 씨의 아들은 사건 직후 가정과 직장을 포기하고 범인 검거를 위해 발로 뛰어다닌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경찰 관계자는 “한낱 돈 때문에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범인들은 타국에서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살았던 고인과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참회해야 할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