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벌어지는 단순 사기사건으로 볼 수도 있는 이 사건이 법조계와 검찰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피의자 김 씨가 현재 A 지청에 근무하고 있는 현직 검사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김 씨의 처남과 사위 역시 현직 검사라는 사실이다. 애초 일가 친척 간 금전문제로 불거진 이번 사건은 피의자 김 씨가 아들을 비롯해 현직 검사 3명을 친인척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 추이 및 처벌 수위와 관련 뒷말이 무성히 나돌고 있다.
특히 김 씨가 사기행각을 벌인 대상이 다른 사람도 아닌 동서라는 것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피해자는 김 씨 부인 여동생의 남편인 하 아무개 씨(47). 사건은 하 씨가 김 씨와 거래를 하다가 사업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 김 씨를 고소하면서 세간에 드러나게 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사건 속으로 들어가 봤다.
사건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에 따르면 김 씨는 2004년 알루미늄 제품 생산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S 사 대표이사인 하 씨에게 “런던금속거래소 회원사를 통해 알루미늄 원자재를 국제시세보다 톤당 200달러 싸게 공급해 주겠다”고 속여 거액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씨가 하 씨에게 2004년 11월부터 2008년까지 4년간 보증금(60여억 원)과 선급금, 신용장대금 등의 명목으로 가로챈 금액은 무려 370억 원에 달했다.
하 씨가 운영하던 회사는 2004년 당시 연간 매출액이 1000억 원이 넘던 회사로 전해진다. 알루미늄을 취급하는 하 씨의 사업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사업구조상 원자재를 얼마나 싸게 들여오느냐에 따라 회사의 손익이 결정났다. 당연히 단가를 낮게 들여올수록 하 씨에게는 유리한 시스템이었다. 따라서 당시 하 씨는 원자재를 톤당 200달러나 싸게 공급해주겠다는 김 씨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특히 하 씨로서는 동서일 뿐 아니라 현직 검사인 아들과 처남, 사위를 두고 있는 김 씨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김 씨와 거래를 하기로 한 하 씨는 김 씨의 말에 따라 2005년 10월까지 런던금속거래소 회원사에 예치할 보증금 명목으로 2004년 11월경 12억여 원, 2005년 10월 경 47억여 원 등 총 60억여 원을 김 씨에게 건넸다.
계약 초기 이들의 거래는 순조로웠다. 김 씨는 약속대로 알루미늄 원자재를 톤당 200달러씩 싸게 하 씨에게 착착 공급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한계에 봉착했다. 유통가를 훨씬 밑도는 가격으로 하 씨 측에 원자재 물량을 계속 대주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급기야 2007년 10월 김 씨는 하 씨에게 공급해오던 원자재를 아예 대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때 김 씨는 하 씨에게 선급금 명목으로 무려 155억 원을 더 받아 챙긴 상태였다.
하지만 김 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의 행각은 갈수록 더욱 대담해졌다. 김 씨는 아예 수출업자와 짜고 200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창고증권번호를 이중 기재하는 등 허위증빙서류를 만들어 하 씨로부터 수입 신용장대금 160여억 원을 편취하기에 이른다.
자세한 영문을 몰랐던 하 씨로서는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김 씨와 거래를 시작한 후부터 회사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김 씨의 사기행각으로 인해 당연히 하 씨가 운영하는 회사경영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2004년까지 연간 1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던 하 씨의 회사는 2005년을 기점으로 순이익이 절반 규모로 줄어들었고 급기야 2008년에는 30억 원으로 감소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 약속한 대로 원자재를 싼 가격에 공급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그랬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런 저런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자 하 씨는 조금씩 김 씨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동서간이라 대놓고 따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회사가 심각한 자금난에 빠질 상황에 처하자 하 씨는 김 씨에게 보증금예치사실 확인서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김 씨가 보증금예치확인서와 공급계약서를 위조해 송부하는 수법으로 하 씨를 감쪽같이 속여 온 사실이 들통났다. 김 씨는 하 씨에게서 받은 자금 대부분을 외국에 세운 유령회사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회사경영 악화를 견디다 못한 하 씨는 지난해 2월 김 씨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동서 간의 사업 불신이 결국 송사로 비화된 것이다. 하 씨의 고소에 김 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그해 7월 하 씨를 무고죄로 맞고소하면서 사건은 집안싸움을 넘어 법정다툼으로 비화됐다. 특히 김 씨는 하 씨와 극심한 갈등을 빚던 지난해 10월 심장질환으로 졸도, 심장수술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 씨는 아들과 처남, 사위까지 현직검사로 두고 있는 데다가 자신과 동서지간인 김 씨가 자신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정신적인 충격도 컸다고 한다. 사건이 커지자 김 씨의 처남이자 하 씨의 매제인 L 검사가 중간에서 조정을 해보려고 노력했지만 타협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김 씨가 줄곧 범행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증거에 의해 혐의가 인정되고 피해금액이 크다는 점에서 지난 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영장을 기각해 최근 김 씨를 불구속 기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직 검사 아버지가 개입된 이번 사건에 대해 검찰은 일체의 언급을 피한 채 쉬쉬하는 분위기다. 특히 통상적으로 사기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부서가 아닌 외사부에서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검사 집안 분쟁’으로 불리며 관심을 끌고 있는 이번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