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왜들 이렇게 퇴근들도 안 하고…?”
“차 팀장(한국기원 차영구 홍보팀장)이 오늘 바둑 재미있을 것이라고 몇 번이나 연락을 했어. 신-구 대결이라는 거 아냐.”
“누가 이길까. 그런데 김명훈 초단하고 이동훈 5단이 이겨야 재미있는 거지, 목진석 9단하고 최철한 9단이 이기면 재미있는 건 아니잖아…^^”
김명훈 초단(왼쪽)과 목진석 9단.
“김명훈은 1997년생이고 작년에 입단했으니 입단이 빠른 건 아닌데, 입단하자마자 KB바둑리그 정관장 팀에서 맹활약했고 연말 바둑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았지. 기대주야. 다만 대국할 때 쉬지 않고 머리를 꼬는데, 그건 좀 고쳤으면 좋겠어. 보는 사람이 정신이 없을 정도니까 말이야…^^”
“이동훈은 김명훈보다 한 살 어린데, 바로 얼마 전에 KBS바둑왕이 되었잖아. 그것도 박정환 9단을 2 대 0으로 꺾었어. 속기전이지만 어쨌든 대단한 거지. 이창호 9단도 첫 타이틀이 KBS바둑왕이었지? 세계 최연소 기록, 13세 몇 개월인가 그랬어. 이동훈은 16세 몇 개월….”
“지난주 금요일에 이동훈 5단이 기자들에게 점심을 낼 때, 박정환 9단하고 두어보니 어땠냐고 물어봤어. 처음엔 물론 자신이 없었다는 거야. 2 대 0으로 이긴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고. 그런데 두어보니까 이제 앞으로는 열심히 두면 이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지.”
최철한 9단(왼쪽)과 이동훈 5단.
“제일 중요한 게 자신감이야. 그리고 한 번 이겨보면 자신감이 생기잖아. 그래서 기세로 보자면 김명훈, 이동훈이 이길 가능성도 크네. 그러나 목진석, 최철한도 보통 9단은 아니니까, 섣불리 누가 이긴다고 말하기는 어렵네. 베팅은 어떻게 나와?”
“그나저나 GS칼텍스배는 국내 기전으로는 큰 기전인데, 이거 영재 바둑왕과 강력한 초단이 붙게 되면 좋겠네. 목진석은 작년부터 좀 슬럼프 같아서 김명훈이 이길 것도 같고, 최철한은 최근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5 대 5 같고…^^”
“우승상금이 7000만 원이니 큰 기전이지. 그런데 왜 제한시간 10분 속기로 바꿨는지 모르겠어. 1시간 정도면 알맞은 것 아닌가. 10분 바둑은 좀 너무해. 일단 무게감이 없잖아. 바둑TV 생중계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녹화-편집 그런 것 좀 하면 안 되나.”
기자들이 김명훈, 이동훈을 응원하는 가운데 정확히 7시에 막이 올랐다. 2시간이 넘어 끝난 목진석-김명훈 대결에서는 목진석이 흑을 들고 263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초반은 팽팽했다. 중반 초입에서 목진석이 공세를 취하다가 되치기를 당했다. 김명훈이 주도권을 쥐었다. 중반 막바지 큰 바꿔치기가 일어났는데, 목진석이 실수해 잡은 것 같았던 백 대마를 살려 주었다. 백의 필승지세. 그러나 김명훈도 방심했고, 목진석도 잡힌 것 같았던 흑 대마를 크게 살렸다. 역전이었다.
9시 지나 시작해 자정 넘어 끝난 최철한-이동훈 대국은 최철한이 백을 들고 268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었다. “최철한 9단의 묵직한 힘과 노련한 행마가 돋보였으나 이동훈 5단도 만만치 않아 끝까지 미세한 바둑이었는데, 최 9단의 마지막 끝내기가 정교했고, 반집이나 한집반 승부로 보이는 장면에서 이 5단이 버티다가 차이가 약간 더 벌여졌다.” 이 바둑을 해설한 윤현석 9단의 총평이었다. 기대했던 신-신 대결은 물거품이 되었다.
목진석 9단과 최철한 9단의 결승 5번기. 두 사람 모두 평소에는 그지없이 선량한 청년들이지만 바둑판에서는 막강 화력의 전투군단이다. ‘괴초식’과 ‘독사’다. 보나마나 치열한 백병전을 벌일 것이다. 최철한 9단은 김명훈 초단과 두고 나서 “젊은 기사여서 집중력과 계산력이 뛰어날 것이기에 대비를 했다”고 말했고, 결승5번기에 대해서는 “선배와 두게 되어 부담이 덜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 9단은 1985년생, 이제 서른이다. 그런데 1997년생 김 초단은 ‘젊은 기사’고 1980년생 목 9단은 ‘부담 없는 선배’란다…^^
이광구 객원기자
승부 가른 ‘꽃놀이패’ 소개하는 기보가 최철한 9단 대 이동훈 5단의 바둑. <1도>가 최 9단이 종반 정교한 다지기를 시작하는 장면이다. 백1의 치중, 이걸 넘겨 줄 수는 없으므로 흑2로 막아야 한다. 최 9단은 <2도> 백1~흑8 다음 이리로 돌아와 백9로 끊고 흑10에는 백11로 돌려쳤다. <3도> 흑1로 잇자 백도 2로 잇는다. 흑7, 한 집을 만들어 유가무가로 가자는 것. 그러나 백10 젖히고 12로 웅크리리니 패. 흑이 한 수 여유 있는 패지만, 흑진에서 생긴 패니 이건 백의 꽃놀이패다. <4도>는 패싸움의 과정. 백10으로 팻감을 쓰고 12로 패를 따내자 흑은 13으로 먹여치는 팻감을 쓰고 우하귀쪽 백16의 팻감은 듣지 않고 흑17로 13 자리에 때려내며 패를 해소했다(백6 12…△, 흑9 15…3, 흑17…13). <5도> 백1부터 다시 패싸움. 흑이 버틸 수 없어 8로 이었고 백도 흑▲에 이었다(흑4와 백7은 패 따냄). <4도> 백16 자리는 원래 백이 둘 수 없는 곳이어서 흑의 한 집이 있던 자리였는데, <5도> 백1로 흑 한 점을 따냈고, 흑은 8로 이었으며 백은 가일수할 필요도 없어졌다. 합하면 4집이다. 흑이 하변을 돌보지 않고 <2도> 좌변 흑8로 내려서 <3도> 흑3으로 들어온 것도 안팎 3집 가치는 있었으나 반집이 아슬아슬한 국면에서 한 집의 차이는 곧 승부였고, 이 5단은 그 차이를 견디지 못하고 돌을 거두었던 것.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