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특별법이 위헌 심판대에 올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2004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성매매 여성 2000여 명이 정부의 특별 단속에 반발해 생존권 보장 요구 시위를 벌이는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성매매종사자인 김 아무개 씨(여·44)는 지난해 집창촌에서 대학생 손님과 성관계를 맺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 단속에 걸렸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갑작스러운 단속에 놀란 김 씨는 몸을 이불로 가리고 옷을 입으려 했지만 경찰은 김 씨가 옷을 벗고 있는 상태로 증거사진을 찍었다. 김 씨가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김 씨는 먹고살려고 성매매를 하고 있지만 다 벗은 상태에서 알몸까지 촬영당하는 상황에 처하니 ‘나도 인권이 있는데’ 하는 자괴감으로 눈물이 났다.
경찰 단속의 다음 수순은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을 비롯해 업소 사람들이 경찰서로 가 조사를 받는 것이었다. 경찰은 조사를 통해 알선자와 매수자, 성매매 종사자를 구분한다. 김 씨는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이었다.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사람의 보호와 자립을 입법 취지로 하고 있는 성매매특별법에 의하면 김 씨는 법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김 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성매매특별법에서는 강압적 성매매인지 자발적 성매매인지에 따라 성매매 여성에 대한 법적 처우가 달라진다. 교통사고 이후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적었던 김 씨는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발적으로 성매매를 선택한 여성이었다. 성매매여성들의 보호와 자립을 위해 제정된 성매매특별법 때문에 오히려 수많은 성매매종사 여성들이 ‘범법자’가 되는 아이로니컬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재판에 넘겨진 김 씨는 지난해 7월 성매매특별법이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착취나 강요가 없는 성인 사이의 성행위는 개인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며 김 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헌법재판소는 4월 9일 성매매특별법위헌심판을 위한 첫 공개변론을 가질 예정이다.
성매매특별법의 취지는 좋았다. ‘포주’의 폭력과 착취에 시달려 온 성매매종사자들은 법적으로 일정부분 ‘피해자’의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2000년과 2002년 군산에서 모든 유리창이 폐쇄된 공간에서 감금된 채 성매매를 강요받았던 여성들이 화재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성매매를 법으로 근절해야한다는 주장도 국민들의 공감을 샀다.
대표적 집창촌인 서울 미아리 텍사스촌(위)과 강남에 위치한 변종 성매매 업소. 일요신문 DB
성매매특별법 이후 업소를 단속하는 인력이 확보되지 않았고, 함정수사 형태로 굳어진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성매매업소 단속은 강화됐지만 단속인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경찰이 손님으로 위장, 업소에 잠입해 성관계 직전 성매매 여성을 적발하는 함정수사 방식도 부작용이 컸다. 지난해 11월 경남 통영에서는 티켓다방 종업원으로 일하던 조 아무개 씨(여·24)가 경찰의 함정수사로 적발되자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오전에는 성매매종사자 200여 명이 서울 종암경찰서 앞마당에 몰려들어 전날 밤 경찰의 ‘함정단속’을 항의하기도 했다.
15년 전 집창촌인 ‘미아리 텍사스’를 대대적으로 단속해 ‘저승사자’로 불렸던 김강자 전 서울종암경찰서장(70)도 성매매특별법 위헌론자로 돌아섰다. 김 전 서장은 비 생계형 성매매인 고급 룸살롱, 오피스텔 성매매 여성과 매수자는 규제하되 집창촌을 합법화해 생계형 성매매 여성은 보호하자는 입장이다. 김 전 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매매특별법으론 성매매 못 없앤다. 처벌법 만드니까 업소들은 더 음성화되고 변종 업소도 생겨났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로 김 전 서장은 4월 9일 헌법재판소의 ‘성매매특별법’ 위헌법률심판 공개변론에 참고인으로 나서 성매매특별법 폐지입장을 변론할 예정이다.
성매매 여성 및 업주 모임인 한터전국연합회(한터) 강현준 대표(61)는 “집창촌 여성들은 위헌심판 준비를 이미 예전부터 했다. 단속과정에서 심한 자괴감을 느낀 김 씨가 도움을 청해오면서 한터가 지원에 나선 것”이라며 “성매매의 완전합법화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성매매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나 소득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되 풍선효과로 나타난 음성적 성매매를 모두 규제하자는 거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이익의 목적 때문에 희생당하는 일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전면적 금지로는 실효성이 없다. 이번 헌법소원으로 성매매 종사자 여성들도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생활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비 범죄화’ 해야 한다는 것에는 여성단체도 동의한다. 하지만 알선업자나 수요자에 대한 법의 제재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미례 공동대표는 “법 제정 초기에는 여성들의 인권을 중심으로 성매매 여성들은 피해자로, 알선 행위와 관련된 업주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을 하는 듯이 보였다. 성을 사고 파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공동대표는 “성매매 금지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섣부른 ‘성매매 합법화’ 보다는 ‘성매매 여성들의 비 범죄화’를 우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현행법상 성매매가 이뤄지면 성을 공급한 여성과 성을 매수한 남성 모두 처벌하도록 돼있다. 성매매 여성들을 처벌하는 조항만 없애도 성매매 문제의 상당수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수요 차단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궁극적으로 성매매가 해결된다고 본다. 수요 차단에 초점을 맞추면 여성들은 피해자로서 참고인 정도의 법적지위를 갖게 된다. 성매매 여성을 비 범죄화하자는 주장도 이 때문”라고 설명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후 어땠나 단속 사각지대 뒷골목으로 ‘이동’ 2004년 9월 23일 성매매특별법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난 그해 11월, 거리의 홍등가는 ‘개점휴업’ 상태로 들어섰다. 텔레비전에는 연일 경찰의 집창촌 단속과 성매매 사범의 검거 소식이 흘러 나왔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였던 서울 청량리 집창촌에는 ‘홀복’을 입은 여성 대신 평상복 차림으로 앉아 있는 여성들이 더 많아졌다. 손님의 발길은 절반가량으로 줄어들었다. 간혹 손님이 있다 해도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사람들뿐이었다. 전화로 단속여부를 미리 문의하거나 성매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고 무조건 현금을 내 카드결제를 하는 경우가 없어졌다. 휴대폰에 단골 여성과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싶어 하는 손님들을 위해 구닥다리가 되어 폐기처분을 앞두고 있는 공중전화를 수리해 설치하는 업소가 생겨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직후 된서리를 맞은 것은 업소뿐만이 아니었다. 성매매업소의 필수품인 콘돔의 판매도 급속히 줄어들어 콘돔업체들은 울상을 지었다. 특별법 시행 직후인 2004년 9월부터 11월 말까지의 집중단속 기간은 콘돔업체가 ‘쓰나미’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한다. 두 달간 집중단속 기간에는 집창촌, 안마시술소, 스포츠마사지 업소에 대한 판매량이 0%에 가까웠던 것.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단속이 허술한 곳으로 숨어든 성매매업소가 서서히 기지개를 펴기 시작하면서 연말부터는 콘돔의 판매량도 40%가량 늘어났다. 하지만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것은 성매매 종사자들이었다. 업소의 매출이 줄어들면서 ‘엄마’(성매매종사자들이 업자를 이르는 말)들이 쌀밥을 챙겨주는 횟수가 줄어들어 주식이 라면으로 바뀌었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성매매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단속시 성매매 증거가 될 수 있는 ‘콘돔 인멸’을 위해 콘돔을 변기에 버리거나, 성매매 종사자라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갑에 콘돔을 1개씩만 넣고 다니라는 지침이 생기기도 했다. 일부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일본이나 홍콩, 미국 LA로 원정영업을 떠나면서 집창촌은 한동안 적막한 분위기였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나이트클럽이 때 아닌 호황을 맞이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였다. 성매매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이들 여성이 대거 나이트 클럽으로 몰려들어 여자들끼리의 부킹경쟁도 더 치열해졌다는 해프닝도 전해진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