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월1일 동교동을 찾은 시민들의 세배를 받는 김대중 전 대통령 부부. 국회사진기자단 | ||
이와 같은 DJ의 활발한 활동은 불과 2년 전과 비교하면 매우 대조적이다. 그는 지난 2003년 초 퇴임한 뒤부터 무려 석 달여 동안 일체 대외 활동을 하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DJ는 퇴임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첫 외부 강연을 필두로 꾸준히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요즘 들어 부쩍 활발해진 DJ의 ‘훈수정치’를 따라가 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퇴임한 지 3년째로 접어들고 있다. DJ의 퇴임 초기는 ‘외로운’ 시기였다. 그는 지난 2003년 2월25일 퇴임한 뒤 80여 일 동안 두 차례만 바깥 나들이에 나섰을 정도로 외부 시선과 철저히 차단된 채 지내왔다. 이런 과정에서 일각에서는 DJ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칩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해 5월 중순경 DJ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심장혈관 확장 수술을 받았던 것이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퇴임 뒤 세 번째 입원이었다. 4월13일 종합검진을 위해 국군서울지구병원에 2박3일 동안 입원했고, 어버이날인 5월8일에도 서울 순천향병원에 입원해 위 기능 검사를 받았던 것이다. 여기에 일주일에 3번 실시하는 신장 투석 때문에 체력도 많이 떨어져 병세가 심해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DJ는 심혈관 수술 3개월 뒤인 2003년 8월21일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여론의 중심에 등장한다. 그는 퇴임 뒤 처음 행한 외부 강연에서 맹자의 ‘혁명론’을 인용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괴롭힌다면 백성들은 임금을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발언한 것.
당시는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해 정권 퇴진까지 거론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미묘한 시기에 DJ가 ‘임금 추방’ 운운 하자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DJ가 노 대통령을 간접 비판했다고 해석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박진 의원도 “정치인의 말, 특히 ‘말의 정치’에 능한 김 전 대통령의 말에는 우연이 없다”고 말했다.
그때 현장을 취재했던 일간지의 한 기자는 이에 대해 “DJ가 퇴임 뒤 처음 행한 외부 강연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에 관심이 많이 쏠렸다. 그것을 DJ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 평소 신문을 정독하며 치밀하게 정치권을 분석하는 DJ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맹자의 ‘혁명론’을 거론했던 것을 두고 그 이면에 노무현 정권을 향해 대북 송금 문제와 호남 소외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DJ의 ‘비판’ 발언 일주일 뒤인 8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은 전남 광양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도 별 것 아닌 문제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해 노 대통령이 DJ에게 ‘우호’의 손짓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말들도 나왔다. 그로부터 며칠 뒤 DJ는 노 대통령의 추석선물을 갖고 동교동 자택을 찾아 온 서갑원 청와대 정무1비서관에게 “경제가 어렵고 또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때인데 노무현 대통령이 고생이 많다”며 “앞으로 나랏일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건넸다. 그리고 한달 뒤인 10월 중순 청와대는 DJ정부 시절 고위직을 지낸 정치인들을 배려하는 인사를 하며 DJ에게 ‘화답’했다.
그 뒤 DJ는 8개월 동안의 ‘칩거’를 끝내고 2003년 11월3일 아태재단 후신인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을 여는 것과 동시에 공식적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노 정권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복원한 DJ는 이때부터 적극적인 외부활동을 펼치게 된다. 사실 DJ는 도서관 개관식 전까지는 정치인 접견을 하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 분당과정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면담을 요청해 왔지만 일절 응해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뒤 DJ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새 지도부의 예방을 받는 등 정치인들을 예방하고 있다.
DJ와 만나는 정치인들은 항상 그가 던진 말의 ‘속내’를 먼저 생각한다. 그는 절대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던진 그의 말속에는 ‘뼈’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 신년에 DJ에게 새해 인사를 했던 한 거물급 정치인은 “평소 악수할 때 말을 잘 건네지 않는 DJ가 내게 갑자기 ‘요즘 일을 많이 하시더라’고 한마디 툭 던졌는데 순간 흠칫 놀랐다.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신문 등을 통해서 세세하게 나의 모든 것을 꿰뚫고 난 뒤 던진 그 한마디에 ‘과연 DJ는 치밀한 정치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올해 DJ가 ‘세배정치’에서 정치권에 던진 ‘화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는 정치인들과 새해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정치인은 백성을 하늘같이 생각하면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적절히 조화해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지난해 정기국회 때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싸고 여권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벌어진 갈등에 대한 ‘코멘트’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서생적 문제의식만 내세운 열린우리당 강경파에 대해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정치력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희상 의원도 당내 강경파들의 정치적 미숙함을 지적하면서 DJ의 발언과 똑같은 말을 해 이 해석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또한 DJ는 지난해 10월께부터 퇴임 이래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먼저 그는 최근 석 달 동안 무려 4차례나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지난 10월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22일에는 CBS 라디오, 1월에는 매일경제신문, SBS 등에도 모습을 나타내 퇴임 이래 가장 많은 언론 인터뷰를 기록했다. DJ는 이 자리에서 “대북 특사 측면 지원”(경향), “헌재 결정 승복해야 한다”(CBS) 등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DJ의 강연 정치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는 지난 10월에만 ‘퍼그워시 회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창립 30돌 기념식, 세계지식포럼 등의 큰 행사에서 강연을 했다. 또한 11월에는 건국대 특강에 참석해 “한국엔 좌파도 없고 386들도 정치 이념에 큰 문제가 없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12월에는 노벨상 수상 4주년 기념식에서 “노 대통령이 한-미, 남북 관계를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1월에는 자신의 연설문을 묶어 <21세기와 한민족>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정치인들과의 접촉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해 8월 그는 야당의 박근혜 대표와 만나 덕담을 주고받은 바 있다. 이어 9월에는 열린우리당 386 세대 초재선 모임인 ‘새로운 모색’ 소속 의원 20여 명을 만나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 뒤에도 열린우리당 전병헌 최성 윤호중 의원 등 DJ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등을 지낸 의원들도 예방했다. 11월에는 김원기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4대 입법은 기다리면서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언론에 알려진 공개 만남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을 ‘비공식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외 순방도 부쩍 늘었다. 그는 지난해 5월 퇴임 후 첫 외유에 올라 유럽을 순방한 데 이어 7월에는 중국을 방문해 장쩌민 주석 등과도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11월에는 스웨덴과 이탈리아 등을 잇따라 방문하고 그 뒤 12월 초순 말레이시아도 순방하고 돌아왔다. 올해 굵직한 해외방문만 4차례나 소화한 셈이다.
DJ의 이런 바쁜 걸음걸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그의 ‘훈수정치’가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동교동측에서는 “김 전 대통령은 정치에는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고 특히 올해에는 회고록 정리에 집중할 계획이다”라고 전하면서 “올해 아직 해외 방문 일정이 계획된 것은 없고 필요에 따라 나갈 것이다. 그리고 건강은 많이 좋아진 편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DJ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햇볕정책’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고려해 ‘적절한 때에 적절한 정도의 정치적 언급’을 함으로써 자신의 위상을 유지해나가려고 한다. 이런 기조는 올해 들어서도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DJ 어록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으면 백성은 추방할 권리가 있다” -2003년 8월 21일
“대북특사 측면 지원”,“헌재 결정 승복해야” -2004년 10월
“4대입법 기다리며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 -2004년 11월
“정치인은…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조화해야” -2005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