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는 전쟁과 가난, 쿠데타와 시위,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중의 나선고리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세월호 참사’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이 우리를 강타했고, 아직도 우리는 ‘세월호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 세월호 참사가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
우선,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보다 관계기업의 관리부실이나 관계당국의 초기대응 미흡 등 인재(人災)에 의한 트라우마가 훨씬 더 큰 정신적 외상이 된다. 전문가에 의하면, 자연재해를 겪었을 때에는 피해자의 5퍼센트 정도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가 발생하지만, 일반사고나 기술적 재난에서는 7~10퍼센트로 늘어나고, 대형참사나 총기난사와 같이 인간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35~50퍼센트로 급증한다.
둘째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에 비해 같은 인간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신뢰가 흔들린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다. 불신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 시키고, 사회적 비용의 증가는 경제주체들의 수익성과 체질을 약화 시키고, 이는 또 다른 불신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굴곡진 현대사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했던 신뢰비용만 해도 천문학적 숫자인데,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의 용어를 빌리자면,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이 또 다시 엄청난 비용만 유발하고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새로운 PTSD로 남지 않을까 우려된다.
■ 뉴 노멀(New Normal)을 찾아서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다. ‘세월호 이전’ 사회에서 ‘세월호 이후’ 사회로 빨리 이행하는 것이다. 누구나 찬성하는 말이지만, 누구도 진지하게 대안을 제시하고 논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최근에 경제용어로 자주 사용되는 뉴 노멀(New Normal)이 우리 사회 곳곳에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뉴 노멀이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을 뜻하는 말인데, 우리에게 과연 ‘정상적 표준(normal)’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각자는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새로운 표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춘추전국 시대, 선과 악의 구분조차 모호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심할 정도로 세상은 무너졌지만, 선각자들은 저마다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다. 맹자(孟子)는 인의(仁義)를, 순자(荀子)는 예의(禮義)를, 묵자(墨子)는 겸애(兼愛)를 새로운 세상의 표준으로 제시하였다.
■ 세 개의 가설 : 금도, 합리, 공감의 3중주
가설이라 전제하고, 첫 번째 표준은 ‘금도(襟度)를 지키는 삶’이다. 금도(襟度)의 삶이란, 자신의 주의주장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요구해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그러나 꾸준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 내는 것’을 말한다.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말만 앞세우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표준을 스스로 실천, 증명하는 것이 가장 큰 설득력을 보여 줄 것이다.
작금에 ‘금도(襟度)’는 싸구려 정치용어로 변질되어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금도(襟度)’를 한자로 풀이하면 ‘저고리를 함부로 풀어 헤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즉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사리에 맞게 판단하며, 직분에 맞는 능력을 보여주자는 뜻이다.
두 번째 표준은 ‘합리적 사고능력’이다. 세상은 어차피 유토피아가 아님을 알고, 자신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필요하다. 과도하게 부정적 감정에 휩싸여 ‘내 인생 끝났어’, ‘누구도 믿을 수 없어’라는 극단적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또는 흑백논리를 일컫기도 한다. ‘A는 악이고, B는 선이야’라는 이분법에 빠져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는 것이다.
세 번째 표준은 바로 ‘공감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다. 무한경쟁의 시대, 만약 경쟁도 이익도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면, ‘타인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不忍人之心’의 공감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길게 보면 더 이롭고 경제적일 것이다. 감정의 올바른 표현은 바로 공감능력의 확장과 개발에서 비롯된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몰라서 못하나요? 맞는 말이다. 알고서도 안 하는 아주 오래되고 무서운 우리의 습관이 문제이다. 더 늦기 전에 상호 금도를 지키고, 합리적 사고를 확장하며, 공감능력을 개발하는 교육, 제도, 법, 징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우리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나쁜 습관을 고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오늘도 팽목항에는 스산한 바람이 불어, 인간의 탐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런 말을 할 것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글_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 리더십교육/ 성과향상 코칭/ 감정코칭 등 다수 경영분야 강의
► 대구 성광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MBA)/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 박사(수료)/ LG 인화원 기획팀장(부장)/ 팬택 아카데미 본부장(상무)/ 엑스퍼트컨설팅 본부장(상무)/ LG CAP,Work-out Facilitator/ Hay Group Leadership Facilitator/ KMA Assessment Center Ass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