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열린 국민참여연대 발대식에서 명계남 의장이 행사 시작을 선언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그동안 당내 역학구도에서 ‘균형추’를 자임하며 중립을 표방했던 원내외 친노그룹이 “당을 접수하겠다”고 나서면서 다른 계파들은 물론 같은 진영내에서도 반발이 대두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노사모 등 외곽 친노인사들이 전대를 겨냥해 정치세력화를 공식 선언하고, 일부 친노 직계 386의원들은 아예 차기 지도부 구성을 자기 입맛에 맞게 조정하려는 시도를 노골화하자 “‘친노’를 내세워 구태정치의 전형인 ‘줄 세우기’,‘대세 몰이’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 비판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친노그룹의 최근 움직임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지난 16일 ‘당권을 당원에게, 권력을 국민에게’를 모토로 발족한 국민참여연대(국참연)의 행보다. 노사모 전 회장인 명계남씨와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회장’인 이기명씨 등이 주축이 된 국참연은 회원 2천여 명 전원이 대의원과 중앙위원, 당원협의회장 및 여성·청년위원장 등 각종 당직선거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국참연이 발족과 동시에 현역의원 31명을 회원으로 가입시킬 만큼 세력 규합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만큼 가깝게는 전대 판세에, 멀리는 당내 역학구도와 차기 대권후보 경쟁 구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이 전대까지 회원수를 2만여 명으로 늘리고, 전체 대의원 1만5천여 명 중 3분의 1인 5천 명을 점유하겠다고 나서 일약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상태다.
실제 국참연의 대변인 격인 정청래 의원은 현역의원들이 대거 회원가입한 배경에 대해 “국참연이 가져올 영향력, 파괴력을 보고 참여하게 됐다고 본다. 당원에게 줄을 서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바람직한 것이다”고 말해 소속 의원들간에 ‘줄 서기’ 기류가 존재함을 과시했다. 그는 또 국참연의 목표를 “당권 창출”이라 공언한 후 “다음 대선 때도 분명히 수구세력에 맞서 승리할 수 있는 후보가 나오기를 바라고 그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열심히 뛸 것”이라고 말해 당내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문제는 국참연이 “당 조직을 건설해서 노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우리당을 통해 구현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국민과 정치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할 것”(명 의장)이라 표방하고 있지만 출범 배경의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점이다. 국참연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 구당권파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점이나, 내부에서 당내 친노그룹의 ‘좌장’ 격인 문희상 의원을 당 의장으로 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재야파의 한 386의원은 “국참연이 대외적으로는 ‘진짜 친노’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목표가 차기 당권과 대권경쟁 구도를 특정인에 유리하게 이끌고 가려는 것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회원으로 참여한 현역 의원들의 면면이나 정 통일장관 측근인 K씨가 명 의장, 정청래 의원 등 국참연 핵심인사들과 조직 결성작업을 진행해 온 것만 봐도 무슨 성격의 단체인지는 뻔히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의원은 “국참연이 진정 노 대통령을 위한다면 이런 식으로 전대 판도를 흐뜨려서는 안된다. 대통령이 ‘당정 분리’ 의지를 누누히 강조하고 있는 마당에 직계라는 사람들이 노선과 정책이 아니라 세력화를 통해 당 장악을 시도하는 것은 결국은 (노 대통령에) 누를 끼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고 덧붙였다.
당 지도부도 국참연 활동에 우려를 표시하고 나섰다. 임채정 의장은 “자발적으로 당원들이 참여해 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취지는 좋다”면서도 “다만 활동내용들을 잘 연구하고 정제할 필요가 있다”는 말로 경계심을 표출했다.
임시집행위 멤버인 한 의원도 “국참연의 활동목표가 당의 대중적 기반을 넓히는 쪽 보다 당내 권력투쟁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가세했다.
친노 진영내에서도 국참연에 대한 비판이 만만찮다. 대표적인 친노 논객 중 한 명인 공희준씨는 인터넷 매체 <미디어 몹>에 13일 올린 글을 통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산악회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청과 노사모의 차이점은 주요한 통신수단으로 각각 팩시밀리, 무선호출기, 핸드폰을 사용한 점뿐이라는 양식있는 시민사회의 비아냥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당원 게시판도 개혁당 출신 당원들을 중심으로 국참연을 비판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참여정치연구회 소속으로 개혁당 대표를 지낸 김원웅 의원은 “국참연은 참정연과 일란성 쌍생아”라고 동질감을 표시했지만 “이참에 아예당명도 국참연으로 바꿔라”(ID ktdgom), “국참연의 아마추어리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향일암)는 등 냉소적인 평가가 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명 의장, 정청래 의원 등의 과거행적을 거론하며 인신공격성 글을 올린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 지난 16일 열린 국참연 발대식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이 단상에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춘 김영주 송영길 염동연 장향숙 이상민 의원. | ||
이들은 친노그룹내에서 문희상 김혁규 염동연 의원 등이 지도부 경선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너나 없이 다 뛰어들면 공멸할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조정에 나섰다. 이들은 문 의원을 상대로 정세균 의원(3선)의 ‘무투표 당선’이 굳어진 원내대표에 출마할 것을 요청했고, 당 의장으론 의정연구센터 고문인 김혁규 의원을 미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중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13일 이후 이광재 의원 등이 나서 이틀간 문 의원을 상대로 원내대표 경선 참여를 요청했지만 문 의원이 거부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문 의원은 친노 386들의 거듭된 요구와 대해 언론에 “의정연구센터 회원들이 중국을 방문한 계기에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뜻과는 관계가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명했다. 그는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전대에 출마한다 하더라도 당 의장이 목표가 아니며 상임중앙위원 등 지도부에 드는 게 목표다. 내가 수도권 출신이고 연륜 등으로 볼 때 지도부에 끼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당내에서는 친노 386 의원들의 이 같은 시도에 대해 선수-계파 불문하고 “자신들의 위치를 모르는, 한마디로 오만방자한 행동”(재선 K의원)이라는 비판론이 고조되고 있는 상태. 한 3선 의원은 “친노 직계라는 젊은 의원들이 무슨 근거로 중진들의 당직 피선거권을 침해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항간에 의정연구센터 멤버들이 문 의원을 원내대표 출마를 권유한 배경이 모임의 고문인 김혁규 강봉균 의원을 각각 당 의장, 정책위의장으로 밀기 위한 의도라는 얘기가 있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개탄할 노릇”이라고 꼬집었다.
‘안개모’(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 소속 정장선 의원도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의원 등 의정연구센터 핵심들이 현 정권 초기 청와대에 몸담았던 점을 겨냥해 “이른바 청와대 출신들이 집단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당의 중립성과 독립성 차원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대통령이 표방했던 당정분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이다”고 유감을 표시했고, 김현미 대변인도 같은 구당권파인 정세균 의원의 원내대표 ‘무혈입성’을 저지하려는 의정연구센터측의 움직임에 대해 “매우 생뚱맞다”는 말로 비판론을 폈다.
한편 당내에서는 이번 사건을 청와대 출신 친노직계 그룹내에서 문희상 유인태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시니어 그룹과 이광재 서갑원 의원을 축으로 하는 주니어 그룹 간에 본격적인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실제 의정연구센터 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원내대표 문제와 관련, 문-유 의원의 주도하에 중진그룹에서 ‘정세균 대세론’을 확산시킨 것에 대해 “공공연한 비밀처럼 당에 퍼져 있는 이른바 ‘중진 기획’에 따른 것이라면 발상 자체가 구태스럽고 비민주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DJ(김대중 전 대통령)때도 이렇게까진 않했다. 어떻게 보면 중진그룹이 언론까지 장악해 세몰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고 맹비난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