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13일 새천년민주당 마포당사 입주식에서 한화갑 전 대표와 손봉숙 의원 등이 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서 두 번째가 입각을 제의받은 김효석 의원. | ||
‘집권 불가론’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한나라당에서 민주당, 자민련, 뉴라이트 운동과의 결합을 주장하는 정계개편론이 공식 제기된 데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김효석 의원에게 교육부총리직을 제안한 것이 확인되면서 정계 개편의 서막이 오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발 정계개편론은 민주당(호남)이라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던 영남 보수파에 의해 제기됐고, 영·호남 및 충청권 등 지역통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지역적으로 영남에 고립돼 있는 한나라당이 2007년 차기 대선에서 단독으로는 정권 ‘회수’가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넓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지역통합을 통한 정계개편론은 시기가 문제였지, 언젠가는 터져 나올 문제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여기에 오는 4월 재보궐선거에서 과반의석 붕괴가 사실상 확실한 열린우리당의 ‘수성’을 위해 노 대통령이 김효석 의원을 영입하려 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정계개편을 둘러싼 논의는 한층 복잡해져 가는 양상이다.
2006년 지방선거 이후에나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됐던 정계개편론이 시기를 앞당겨 시작된 셈이다.
특히 차기 대선 구도가 어떻게 짜일지 예단하기 힘들지만, 현 참여정부의 ‘개혁세력’ 대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등의 ‘지역통합세력’간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경우 민주당, 자민련 등 다른 정파들도 한나라당의 제안이 승산 있는 게임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안티 한나라당’ 정서가 여전히 강해 이 같은 프로그램이 현실화될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여권의 김효석 의원 ‘빼가기’ 시도를 ‘민주당 고사작전’으로 보고 강력 반발하고 있으면서도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노선 변경이 전제되지 않은 통합론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민주당의 선택이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내각제 등 권력구조 개편론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정계 개편론은 한나라당에서 먼저 제기했다. 한나라당 보수모임인 ‘자유포럼’ 이방호 의원은 최근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남 이외의 충청이나 호남과의 연계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 의미에서 그 지역에 있는 특정 정당과 합당을 하든지, 아니면 그 지역에 있는 많은 인재들을 수혈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당이 발전적인 해체를 해서 호남, 충청과 연합한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의 발전적 해체론’을 주장했다. 집권을 위해서라면 한나라당이 모든 기득권을 먼저 포기해 ‘올인’할 수 있다는 강경한 어조다.
이 의원은 정계개편 시기와 관련,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전제하고,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는 서로가 상황을 주시하고, 저울질하는 상황이 계속되겠지만 지방선거 결과가 정계개편이나 정치권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라며 내년 5월31일 지방선거 이후를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특히 “물밑 접촉은 없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나 김학원 자민련 대표와 의원회관에서 자주 만나 가볍게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다”고 밝혀 ‘묘한 여운’을 남겼다.
실제 보수파들은 박근혜 대표를 만나 한나라당 집권 전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정계개편론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보수파 의원은 “일부 보수성향 의원들이 박 대표와 독대해 ‘한나라당이 집권을 위해서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다른 정파와 결합하기 위해 삼고초려라도 해야 한다. 지금은 나라와 한나라당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지, 당권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표는 “좋은 말씀”이라면서도 즉답은 피했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진행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명개정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보수파의 입을 먼저 열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단 한 인사는 “한나라당 혼자서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은 다 알려진 얘기 아니냐”며 “정계개편론 공론화 시점이 문제였는데 보수파들이 너무 앞서 나간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이런 조바심이 싫지 않은 내색이다. 민주당 한 인사는 “한국 정치에서 남은 과제는 남북통일과 지역주의 극복”이라며 “영·호남과 충청이 한덩어리가 되어 국민통합을 이룬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DJ(김대중 전 대통령)를 탄생시켜 민족의 숙원인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호남사람들에게 이제 남은 숙제는 지역통합”이라며 “한나라당이 조금만 변하면 안 될 일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인사는 노 대통령의 김효석 의원 영입시도에 대해 “민주당을 열린우리당 2중대로 만들려는 처사”라며 “민주당 의원이나 지지층들의 감정만 악화시킨 꼴이 됐다”고 말했다.
충청의 맹주였던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정계은퇴와 의석 4개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자민련은 정계개편에 대해 대환영이다.
자민련에게 지역대통합론은 충청의 대변자로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데다 보수정당인 한나라당과의 통합은 이념적 이질감을 극복하는 데 별다른 문제가 없어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자민련 한 관계자는 “때가 무르익으면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고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야 3당이 이념적 합일점을 도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 핵심이다. 또 통합의 키를 쥐고 있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자민련보다는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지역통합론은 말 그대로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 ‘친노’ 그룹 실세인 염동연 의원은 오는 4월 지도부 경선에 출마를 선언하면서 민주당과의 합당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중진 의원들도 지속적인 개혁과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민주당과의 합당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의 민주당 김효석 의원 영입시도를 “반인륜적인 정치행태”라며 강력하게 성토하는 것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연결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한편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향해 분명한 ‘좌 클릭’을 통한 ‘이념적 변신’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인사는 “합당을 한다고 6개월 후에 죽을 것이, 1년 후에 죽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나라당의 당내 노선투쟁과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움직임을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구원을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환골탈태하거나, 여권이 자신들을 확실한 정권 파트너로 대접하는 하느냐 하는 경우의 수에 따라 민주당의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유영욱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