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희상 의원 | ||
이해찬 총리와 정동영 통일-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차기 주자들이 모두 내각에 차출된 탓에 당권 경쟁이 ‘빅 매치’가 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배제되면서 계파 불문하고 내세울 인물을 찾기가 힘들어진 탓에서다. 일부 계파의 경우 당 의장직 출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힌 인사들이 있지만 ‘흥행적 요소‘나 ‘대중적 파괴력’에서 기준에 미달한다는 평가가 많고, 또다른 계파에선 독자 후보를 낼지 여부와 후보 난립 양상이 노정되면서 심각한 내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친노그룹의 경우 문희상 의원에 대한 일부 386의원들의 원내대표 출마 압력 행사를 계기로 불거진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다. 당사자인 문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중진이라 불리는 그룹과 일부 젊은 의원들 사이에 커다란 견해 차이가 있거나 심지어는 갈등이 있는 것처럼 일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지만, 이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며 부인하고 나섰지만 중진-소장파 양측 모두 “후유증이 적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문 의원측은 이광재 서갑원 의원 등 친노 386핵심 의원들이 주축이 된 의정연구센터측이 중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13일)하자마자 “원내대표 경선에 나서시라”고 압박한데 대해 불쾌감 속에 진의 파악에 부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당내 현안에 대해 이렇다할 입장 표명을 유보해 온 의정연구센터측이 이미 당 의장직 출마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힌 자신에게 ‘딴 길’을 제시한 것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
문 의원과 가까운 한 초선 의원은 “친노 386의원들의 느닷없는 원내대표 출마 압력을 놓고 크게 두 가지 점이 논란이 됐다. 첫째는 이들이 문 의원에 출마를 권유한데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이 담겼는지 여부였고, 둘째는 ‘문희상 원내대표’ 카드를 내민 배경이 친노 386그룹이 자신들의 중국 방문기간 중 동행한 김혁규 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그를 당 의장으로 밀기 위한 목적에서 나왔느냐는 점이었다”며 “문 의원은 둘째 사항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짐만 첫 번째 문제에 대해선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 확인을 한 후 ‘원내대표 불출마’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문 의원은 친노 386의 출마 압력에 ‘노심’(盧心)이 실렸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해찬 총리와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의원과 이 총리는 90년대 초반부터 DJ(김대중 전 대통령)진영에서 인연을 맺은 후 남다른 사이를 유지해왔다. 특히 지난해 5월11일 원내대표 경선과정에서 문 의원이 이 총리를 적극 지원했던 사실은 여권내에 둘의 ‘끈끈한 관계’를 새삼 확인해준 케이스로 꼽힌다.
여권 한 관계자는 “문 의원이 1월14일 자신의 의원회관을 찾은 이광재 의원으로 부터 원내대표 출마를 재차 권유받은 뒤 이틀 뒤 이 총리를 만나 당내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안다”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시기적으로 문 의원이 자신에 대한 친노 386들의 원내대표 출마 압박에 담긴 의도에 대해 이 총리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 의원으로선 애초 부터 정세균 의원을 원내대표로 적극 지지했던 만큼 친노 386들의 압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입장이었지만 뭔가 꺼림칙해 했다. 그러나 이 총리를 만난 이후 당권도전 의사를 보다 분명하고 직접적으로 밝혔던 것으로 볼 때 둘 사이에 뭔가 밀도있는 얘기가 오갔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이해찬 총리 | ||
친노그룹으로선 ‘좌장’ 격인 문 의원이 내부 견제에도 불구하고 ‘마이 웨이’를 선언하자 지도부 경선 출마에 뜻을 둔 다른 인사들과의 ‘교통정리’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당장 당 의장 도전을 염두에 두고 활발한 행보를 해 온 김혁규 의원의 경우 지금대로라면 성향과 지지기반이 상당부분 중첩되는 문 의원과 경쟁을 벌여야 되는 상황을 맞게 돼 고민이 깊게 됐다. 특히 김 의원이 문 의원에 대한 원내대표 출마 압력과 연관이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도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친노그룹내에선 문-김 의원 외에 염동연 의원까지 지도부 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나선 터라 벌써부터 누구로 ‘선택-집중’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386그룹의 경우 이미 김 의원쪽으로 기울었다는 해석이 많은 반면 중진들은 문 의원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광주-전남권에선 경선이 ‘1인2표제’로 실시된다는 점을 감안해 지역 출신인 염 의원에 한표를 던져 지도부에 진입시키겠다고 나서는 등 복잡다단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원내세력으론 최대 계파란 평가를 받고 있는 국민정치연구회(재야파)도 이사장인 장영달 의원(4선)이 당 의장 출마를 선언하고 나섰지만 이래저래 고민이 많다. 여러모로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새 원내대표에 정세균 의원(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이 선출된 터에 당 의장까지 같은 전북(전주)인 장 의장이 맡겠다고 나서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장 의원이 유권자들인 대의원에 얼마나 어필할지도 걱정거리다. 국정연내에선 장 의원이 지도부 진입의 커트라인인 5위 안에 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란 분석이지만, 당내 최대 계파를 대표해 당 의장직 도전을 선언한 만큼 2위권 밑으로 떨어질 경우 ‘체면을 구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문제는 장 의원이 지난해 1월 전당대회에서도 재야파 대표로 지도부 경선에 나섰다가 6위로 낙선했던 ‘아픈’ 기억이 있어 상황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개혁당 그룹이 주축을 이룬 참여정치연구회은 친노그룹과 국정연이 고민이 ‘짬뽕된’ 상황이다. 참정연내에선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중국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15일 이후 “당 의장을 희망한다”며 출마 뜻을 밝힌데 이어, 개혁당 대표를 지낸 김원웅 의원도 20일 부산에서 “차기 당 지도부는 개혁을 선도하는 리더십을 구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 당 의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출사표를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참정연내에선 “4월 전대의 중요성에 비춰 보다 경쟁력있는 카드를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의 논리는 ‘양김’(兩金)으론 엄밀한 의미에서의 당권도전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뼈대.
구체적으로 김 전 장관은 ‘원외’란 핸디캡에 전국적 판도에서 기반과 지명도가 낮은 점이, 김 의원은 개혁선명성에선 다른 누구에도 뒤처지지 않지만 60대란 연령대로 참정연의 핵심 기반인 젊은 층을 공략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지난 전대(2004년 1월11일)를 앞두고 두 사람이 지도부 경선에 출마했다가 본선에는 나서지도 못하고 예비선거에서 탈락했던 전력도 ‘양김 불가론’의 근거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은 ‘양김’ 대신 참정연의 실질적 리더로 대중적 파괴력을 갖춘 유시민 의원을 당 의장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K의원은 “노 대통령 못지 않은 열성 지지층을 갖고 있는 유 의원이 나서야 구당권파-친노그룹 연합군에 맞서 ‘제대로 된’ 당권투쟁을 펼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참정연내에서 대세를 이뤄가고 있다”며 “이미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나타난 중진그룹의 당권독점 의도를 분쇄하기 위해서는 김 전 장관과 김 의원이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구당권파는 독자 당 의장 후보를 낼지 여부를 놓고 핵심인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고민거리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경우 친노그룹과의 전략전 연대의 틀 속에서 문희상 의원을 당 의장 후보로 지원하자는 입장인 반면 부친의 일제하 헌병복무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명예 퇴진’한 신기남 전 의장은 본인이 당권 도전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신 전 의장은 “단순히 나 자신의 정치적 재기나 부활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고 있는 당의 정체성을 바로잡고 분열된 당을 다시 단합시키기 위해 나서겠다. 초심으로 돌아가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는 내 생각에 많은 분이 공감하리란 믿음을 갖고 있다”며 출마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기간당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도 예상 이외로 높게 나왔다며 “출마하기만 하면 의장 당선이 유력하다”는 얘기도 유포하고 있다.
반면 정 장관측은 이번 전대에서는 구당권파가 후보를 내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집권 3년차를 맞아 여권이 노 대통령의 국정운용을 적극 뒷받침해야 하는 마당에 그동안 지도부를 형성했던 당권파가 다시 당권도전에 나설 경우 계파갈등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를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당권 도전 여부는 신 의원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출마를) 한다 해도 개인 차원의 일”이라며 ‘거리 두기’를 공공연히 표명해 향후 ‘천-신-정’의 분화 전망을 낳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