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은 러닝개런티에 세심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영화가 1천만 관객을 돌파해 그도 돈방석에 앉을 전망. | ||
최민식도 만만치는 않다. 지난해 <올드보이>에 출연할 당시 최민식의 출연료는 3억원 남짓이었다. 흥행 결과만을 놓고 보면 역시 최민식도 그만한 자격은 충분하지만 개런티가 수직상승하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전작 <파이란>에서 최민식은 <올드보이> 개런티의 절반 수준인 1억5천만원을 받았었다. 불과 1년여 만에 두 배가 오른 셈이다.
이쯤 되면 스타 배우라는 것도 정말 돈 되는 장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수천만원, 수억원이 고스란히 주머니 속에 굴러들어오니까.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것 이면에는 마음고생들이 있게 마련이다. 화려한 스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억대 개런티를 받기 위해서는 곡절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최민식이 대표적인 경우다. 사실 최민식은 <올드보이> 이전까지만 해도 ‘흥행 배우’라고는 장담하기 힘들었다. 그는 분명 연기력이 뛰어난 훌륭한 배우였다. 그러나 상당수 제작자들은 최민식이 출연한 영화에 선뜻 돈을 대려 하지 않았다.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시장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 <파이란>과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었지만 임권택 감독의 전작인 <서편제>의 흥행에는 턱없이 모자랐던 <취화선> 같은 작품이 최민식의 ‘필모그래피’(출연작 목록)였다.
▲ 송강호 | ||
이유는 ‘단순’했다. 투자 과정에서 최민식의 개런티가 너무 높다는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최민식에게 줄 개런티 액수는 다름아닌 3억여원이었다. 그때까지도 아직 흥행성이 검증되지 못했던 최민식에게 3억원은 너무 큰 액수라는 주장들이 제기됐던 것. 결국 출연 계약은 없었던 일이 돼 버렸다.
최민식은 그후 <올드보이>에서 3억원의 출연료를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처음부터 <올드보이>에 출연할 때 3억원에 러닝 개런티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대신, 최민식은 혼신의 힘을 다할 준비가 돼 있었다. <올드보이>의 제작진도 최민식을 예우했다. 배우에게 개런티는 자존심이었고, 결국 그 자존심은 흥행 대박으로 나타났다.
감독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다. 요즘은 정말 능력 있는 감독들의 전성시대다. 영화사들마다 재능 있는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나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 같은 사람들이 주요 타깃이다.
역시 조건은 파격적인 대우다. <올드보이>에서 박찬욱 감독이 받은 연출료는 2억여원이었고, <장화, 홍련>으로 김지운 감독이 받은 연출료는 1억5천만원이었다. 물론 스타 배우들보다야 개런티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α’가 있을 수 있다. 바로 러닝 개런티 얘기다. 당시 김지운 감독은 <장화, 홍련>의 연출료 이외에 수익의 20%를 러닝 개런티로 받기로 약속을 받았다. 사실 <장화, 홍련>은 개봉 직전까지만 해도 평이 엇갈리면서 흥행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장화, 홍련>은 ‘터졌고’ 김지운 감독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다. 러닝 개런티로 김 감독이 받은 수익금은 연출료의 수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배우들은 러닝 개런티로 인해 명암이 갈리기도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장동건이 그런 경우다. 장동건은 이미 <친구>와 <태극기 휘날리며>로 단일 배우로는 2천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전대미문의 인기 배우가 됐다. 물론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개런티도 초특급으로 받았다. 하지만 장동건은 ‘아직은’ 돈방석에 앉지 못했다. 바로 러닝 개런티 때문이다.
▲ 최민식 | ||
요즘 충무로의 가장 큰 고민은 어느새 배우나 감독과의 개런티 협상에서 제작사들이 약자가 됐다는 점이다. 관객 동원과 영화의 완성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배우들과 감독들에게 제작사들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효자동 이발사>에 출연한 송강호의 경우는 이런 제작자와 배우의 복잡한 관계가 비교적 원만하게 풀린 사례다. 조만간 개봉할 <효자동 이발사>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발사였던 한 소시민을 통해 유신시대를 돌아보는 풍자 코미디.
시나리오는 훌륭했지만 송강호는 당시 <살인의 추억>의 촬영을 막 끝내고 차기작 선정에 신중을 기하던 시기였다. 송강호에게는 시나리오 말고도 고민할 거리가 많았다. <효자동 이발사>의 감독은 신인이었다. 제작사는 배급사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제작에는 처음 관여하는 ‘청어람’이었다.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제작사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4억8천만원 개런티에 제작사의 지분까지 일부 넘겨줬다. 그러나 돈이 문제는 아니었다. 그만큼 성의와 예우를 다하면서 신뢰를 쌓는 데 주력했다. 결국 <효자동 이발사>는 송강호, 문소리가 출연하는 올해 상반기 최대 기대작으로 모양새를 갖췄다. 이젠 단순한 스타 모시기 경쟁이 아니라 스타 사로잡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지형태 영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