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사 명단에서 제외됐던 성완종 회장이 며칠 뒤 단독으로 추가된 것을 두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간에 회동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돌고 있다. 2007년 12월 28일 당시 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 들머리에서 이 당선인을 마중한 뒤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만찬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2007년 11월 23일 성완종 전 회장은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행담도 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증재)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재판 과정 내내 자신의 혐의를 억울해 했던 성 전 회장은 상고를 포기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성 전 회장이 연말 특사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성 전 회장은 2008년 1월 1일 발표된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성 전 회장은 2005년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성 전 회장은 2002년 회사 자금 16억 원을 빼돌려 자민련에 불법 기부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됐다. 2004년 7월 1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성 전 회장은 항소를 했다가 바로 취하했다. 성 전 회장은 그로부터 10개월 만인 2005년 5월 특별사면을 받았다. 한 정부에서 두 차례나 특사에 포함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는 새누리당이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11월 23일 선고를 앞두고 일찌감치 상고하지 않을 것임을 지인들에게 알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면이 이뤄질 것이란 확신을 갖고서였단다. 이에 대해 친이계는 성 전 회장 재판이 대선 전이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 특혜 의혹을 제기했고, 친노에서는 이 전 대통령 당선이 확실하던 시기임을 강조했다. 성 전 회장 상고 포기가 특사와 연관이 있을 것이란 추측에 대해선 양측 모두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그 배후에 있어선 상대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성 전 회장과 가깝게 지낸 한 사업가 A 씨는 “MB 정권 시절이던 2010년경 성 전 회장이 2007년 사면에 대해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었다. 성 전 회장은 가장 확실한 줄을 잡으려 했다. 사면권을 가진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들이 대상이었다. 2005년에 이미 비슷한 루트로 사면을 받았다고 했다. 성 전 회장이 ‘라인이 있다’고 말한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MB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긴 했어도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맡기기엔 불안했던 모양이다. 12월 특사를 대비해서 노무현 정부 실세들과 집중적으로 접촉한 게 맞다. 상고하지 않았던 것도 (특사에 포함될 것이라고) 미리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성 전 회장 특사는 순탄치 않았다. 2007년 12월 초부터 청와대가 4차례나 ‘성 전 회장을 특사 명단에 포함시켜라’고 했지만 법무부가 난색을 보였던 이유에서다. 일반 사면과는 달리 특별 사면은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대통령 ‘통치행위’로 이해된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법무부가 청와대 주문을 거절한 것은 그만큼 성 전 회장 특사가 부당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2년 전에 사면을 받았을 뿐 아니라 또 집행유예기간이 1년에 불과한 성 전 회장 특사를 (법무부가) 납득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은 12월 28일 성 전 회장을 제외한 74명의 특사 명단을 재가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사흘 뒤인 12월 31일 성 전 회장은 특사 명단에 단독으로 추가됐고, 다음날인 2008년 1월 1일자로 사면된 것이다. 이 기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눈여겨볼 장면은 2007년 12월 28일 노 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 간 회동이다. 특사라는 정치적 의미를 감안했을 때 어떤 식으로든 성 전 회장 거취 문제가 둘 사이의 대화 테이블에 올라왔을 가능성이 높다. 성 전 회장은 회동 이틀 뒤 MB 인수위 자문위원으로 선정된 데 이어 특사 대상에까지 포함됐다.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는 물론 새로 출범할 정권과도 선이 닿아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성완종 전 회장이 4월 3일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최준필 기자
A 씨는 “노무현-이명박 회동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성 전 회장이 친노뿐 아니라 MB 측에도 사면 얘기를 꺼냈던 것은 맞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특사 문제를 차기 대통령 측과도 협의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MB 캠프 최고 실세 인사에게 민원을 넣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A 씨는 “맞다. 그것 때문에 친이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 “경선이 끝난 후부터 MB 측과 가깝게 지내려 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은 사면을 부탁했던 MB 캠프 핵심 인사와 ‘다이렉트’로 연결돼 있었다”고 답했다. MB 캠프에 참여했던 한 친이계 의원도 “성 전 회장이 인수위 자문위원에 포함된 것을 놓고 말이 많았다. 대선 승리에 기여하지 않았던 성 전 회장이 MB 최측근 인사 때문에 ‘무임승차’한 것을 두고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성 전 회장은 친노 실세는 물론 MB 측 인사와도 특사를 위해 물밑에서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친노와 친이가 사활을 건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양측 모두 성 전 회장 로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뜻이다. 물론 정치권에선 노 전 대통령 뜻이 더욱 강하게 반영됐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긴 하다. 친노 진영의 한 의원조차 “특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인수위 요청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일 뿐이다. 인수위에서 부탁했다고 하더라도 성 전 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이 당선자 측 간 이해득실이 맞아 떨어져 성 전 회장 특사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박근혜 당선인의 공개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며 2013년 1월 29일 특사를 강행한 바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특정인 사면 과정에 부적절한 영향력이 행사된 것에 대해선 마땅히 진위 규명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금품 살포 등 로비가 이뤄졌다면 더욱 그렇다. 성완종 게이트를 수사 중인 특별수사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수사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사망했고, 이 전 대통령이 입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실체가 드러날지는 불투명하다. 여의도 주변에선 친노와 친이가 배수진을 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란 비아냥거림도 나온다. 결국 소모적인 정치 공방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새정치연합 비노계 중진 의원은 “성 전 회장 사면을 둘러싼 공방은 ‘성완종 게이트’ 본질이 아니다. 친박 실세들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이 묻혔다. 여권이 국면전환용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데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친노가 여기에 휘말린 것 역시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