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왼쪽)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총선 승리’라는 공동의 목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거듭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일단 박 대통령에게 김 대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돼 가고 있다.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청와대의 당내 장악력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비박(비박근혜)계를 컨트롤해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사실상 김 대표밖에 없다고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4·29 재·보궐 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로 촉발된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허태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이병기 현 비서실장까지 거명되고, 이완구 전 국무총리 등 여권내 실세들과 친박 핵심 인사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되면서 ‘도덕성’을 강조해왔던 박근혜 정부는 집권 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은 ‘부정부패 정권심판론’을 꺼내들며 공세를 쏟아 부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출발 시간도 미루고 김 대표와 독대를 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긴 했지만, 김무성 대표도 박 대통령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당내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사퇴 요구가 거셌음에도 불구하고 파열음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 같은 신뢰는 재보선을 앞두고 김 대표가 이 전 총리의 사퇴 불가피론을 청와대에 전달했을 당시 박 대통령이 곧바로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출된 이 전 총리의 사의표명은 결국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완승하는데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여권내 역학구도 등을 볼 때 박 대통령에게 김 대표만큼 여권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인사가 없기 때문에 박 대통령도 김 대표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어찌됐든 두 사람은 오랜 기간 함께 해 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지 않느냐. 불편하더라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람보단 김 대표가 훨씬 박 대통령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대통령으로선 집권 후반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선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은 이미 당내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김 대표와 손을 잡고 갈 수밖에 없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김 대표가 중국에서 개헌 발언을 한 이후 몸을 낮추고, 고위 당·정·청 회의를 할 때나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 발의 때 총대를 메주는 등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극 협력하고 있지 않느냐”며 “박 대통령으로선 임기 후반기에 접어드는 내년에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선 총선에서의 과반 의석을 얻는 승리가 필요하고, 김 대표로서도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생각한다면 총선에서의 승리가 있어야 하는 등 ‘공통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최소한 내년 총선 때까진 두 사람이 함께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4월 재보선을 거치면서 청와대가 다소 김 대표에게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데 대한 불편한 시선도 청와대 내에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최근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는 과정은 이 같은 기류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지난 2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한 여야 합의 발표를 앞두고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에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로 인상’을 명기하는 것에 대해 “월권”이라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를 무시하고 합의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물론 언론까지 나서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로 인상’에 대한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결국 공무원연금 개혁안의 6일 본회의 처리는 무산됐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사실상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월권’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무시하고 합의한 것은 분명하게 대통령의 뜻을 거스른 것”이라며 “(김 대표가) 나가도 너무 나간 것 아니냐. 청와대 내부에선 이럴 바엔 합의를 깨는 게 낫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김 대표가 재보선 승리에 너무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는 불쾌감이 어린 목소리도 들린다. 청와대가 지난 2일 여야간 공무원연금 개혁안 등에 대한 합의는 물론 지난 6일 본회의 처리 무산에 대해 발빠르게 ‘유감’ 등 입장표명을 하고 나선 것도 이런 기류가 반영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상 조만간 있을 국무총리 후보 인선을 통해 김 대표에 대한 견제를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제기된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 기간 이 전 총리가 사퇴하자, 곧바로 후임 인선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 김 대표가 재보선 기간 언급한 ‘호남 총리’ 가능성은 물론 박근혜 정부의 개혁과제를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인물 등 폭넓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만약 김 대표에 대한 ‘견제’를 염두에 둘 경우,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을 발탁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이 이런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박 대통령과 호흡이 무난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점으로 인해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현경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