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가장 큰 궁금증은 왜 연예인이 일반인보다 마약에 쉽게 노출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연예인의 특성상 마약류의 유혹에 넘어갈 위험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면 유혹도 존재할 수 없다. 마약의 특성상 누군가 권하지 않는 이상 스스로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예계 마약 사건이 터질 때마다 거론되어온 ‘연예계 마약 공급 루트’ 내지는 ‘연예계 마약왕’(지난 2002년 서울지검 마약반에서 지목한 연예계 마약 공급책. 수사 결과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가수 K씨, S양, 연예제작자 H씨가 연루된 이번 마약 사건의 중심에는 강남 B룸살롱이 있다. 경찰청 외사과의 한 담당자는 “이 업소의 업주인 김아무개씨가 일본을 오가며 엑스터시를 밀반입해와 업소의 마담인 주아무개씨 등과 함께 엑스터시를 수차례 복용해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업소 단골이자 업주 김씨 등과 친분이 두터웠던 가수 K씨와 연예제작자 H씨 등이 함께 엑스터시를 복용하게 됐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연예인 마약 사건 가운데 가장 흔한 케이스다. 과거 성현아와 황수정은 모두 애인 관계인 남성을 통해 처음 마약과 접하게 됐다. 그런데 이들 애인이 갖는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강남 유흥업소의 영업사장(일명 ‘바지사장’)이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 역시 룸살롱 업주가 관련돼 있고 H씨가 한동안 잘나가던 영업사장 출신임을 감안하면 세 사건이 매우 유사한 형태로 진행돼 왔음을 알 수 있다.
강남 소재의 유흥업소 대부분은 소위 말하는 전주(돈을 투자하는 실제 사장)와 바지사장의 계약을 바탕으로 운영된다. 전주가 돈을 대고 가게를 오픈하면 바지사장이 영업을 책임지는 것이다. 수익 분배는 기본적으로 고정 월급제이나 바지사장과 관련된 고정 손님의 매출 중 일정 부분(20~30%)을 바지사장이 가져가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바지사장의 능력은 단연 얼마만큼 단골손님을 유치할 수 있느냐의 여부로 판가름 난다. 이를 위해 바지사장은 기존 단골손님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해서는 자신의 명성과 업소의 지명도를 높여야 한다. 따라서 연예인 출입만큼 훌륭한 홍보 수단도 없다. 연예인 손님이 찾아오면 공짜 술을 내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여겨질 정도다.
연예인이 방문할 경우 바지사장은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연예인에게 남의 이목을 피해 사적인 휴식처가 될 수 있도록 믿게끔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과 바지사장 사이에는 상당한 친분이 쌓이게 마련. 때론 연인 사이로 발전하기도 하고 마약을 나눠 복용하는 관계로까지 확대된다. 물론 일부 몇몇 사람들의 얘기다.
가요계가 전성기를 달리던 당시에는 가수들의 마약 복용 사건이 가장 많았던 데 반해 영화계가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요즘에는 영화배우들의 마약 복용 사건이 증가 추세다. 영화계의 마약류 확산은 배우들보다는 스태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몇몇 스태프들이 마약류를 복용하다 배우에게도 권하게 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것. 지난 200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긴급 체포된 영화배우 정찬의 경우 역시 촬영 스태프 김아무개씨의 권유로 마약에 접하게 됐다. 또한 지난 2002년에는 촬영감독 홍경표씨가 엑스터시 복용 혐의로 적발된 바 있다.
이런 식으로 몇몇 스태프를 통해 충무로에 마약이 들어온 경위는 해외 유학파 스태프가 증가하는 것과 같은 궤적을 보이고 있다. 요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젊은 영화인들 가운데 해외 유학을 통해 실력을 다진 이들이 상당수다. 대마초나 엑스터시 등을 접하는 게 비교적 용이한 외국에서 대학을 다닌 이들은 마약에 쉽게 노출된다. 물론 대다수가 아닌 극소수의 이야기다.
하지만 외국에서 마약에 손을 댄 경험이 있는 이들은 대부분 귀국과 동시에 마약을 끊게 된다. 처벌 규정이 엄격한 국내 현실을 알고 있으므로 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것. 하지만 극심한 스트레스가 따르는 현장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다시 손을 대는 이들이 종종 발생한다. 정찬 역시 “감정 연기 몰입에 힘겨워하는 나에게 촬영 스태프가 대마초 흡연을 권유해 처음 접하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가요계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 200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적발된 가수 싸이 역시 “미국 유학시절 대마초를 피우기 시작했다”면서 “귀국 이후 마약에서 손을 뗐지만 2집 작업을 하며 부담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다시 대마초에 손을 댔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이런 영화계의 마약 유입이 체계적이거나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미국 유학파 촬영 감독은 “매우 극소수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만약 현재 마약을 하는 이들이 있을지라도 개인적으로 남몰래 이뤄져 어떤 공급 루트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른다”고 얘기한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연예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연예계가 점차 마약과 멀어지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이유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스타만 양산되는 현재의 연예시스템 때문이다. 가창력이나 연기력보다 이미지가 중시되고 조직화된 연예기획사의 관리를 받고 있어 마약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이들이 많다고 얘기한다. 물론 문란한 사생활로 인해 마약에 손을 대는 연예인이 간혹 생길 수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기존의 연예인 마약 사범과는 별개의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