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사면 논란으로 현 정부 내에선 기업인 특사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4월 3일 성 전 회장이 분식회계 등의 혐의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하기에 앞서 취재진에게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한 친박 전직 의원은 현 정부에서 로비를 통한 특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특사 얘기를 꺼낼 수 있는 인사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부터 본인의 권한이 침범되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했다. 그것을 어긴 인사들은 모두 변방으로 밀려났다. 참모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도 철저하게 주어진 일만 했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로비는 박 대통령에게 직접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인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은 특사의 엄격한 제한을 대선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2013년 1월 인수위원회 분과토론회에선 “죄를 짓고도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또 돈이 많다는 이유로 법망을 피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지도층 범죄에 대한 공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직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들이 포함된 마지막 특사를 강행하자 박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현재 정부는 박 대통령 지시에 따라 특사제도 개선을 위한 실무 작업반을 꾸린 상태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들어 특사가 단행된 것은 지난해 1월 설 명절 특사가 유일하다. 그것도 생계형 사범으로 범위를 국한했고, 정치인과 기업인은 그 대상에서 배제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몇몇 총수에 대해 특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면 그 횟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9회로 가장 많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각각 8회, 이명박 정부에선 7회 특사가 단행됐다. 한 친박 의원은 “여권에서 기업인 특사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불관용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 않느냐. 누가 나서서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에도 이러한 스탠스를 유지할 것으로 점친다. 여기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사면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현 정부 내에선 기업인 특사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재계의 우려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거나 또는 재판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몇몇 총수들 사면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해 2월 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 중인 최태원 SK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 수석 부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이호진 전 태광 회장 등이 특사를 기다리는 총수들이다. 그리고 최원영 전 예음그룹 회장 등 잊힌 과거의 총수들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경제 활성화라는 구호가 전혀 먹히지 않는 분위기다. 정권이 바뀌기만을 기다려야하는 것 아니냐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재벌 총수로는 최장기 수감생활(2년 5개월째)을 하고 있는 최태원 회장의 한 측근 인사는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을 순 없는 노릇 아니냐. 특사의 필요성을 알리는 여론전은 기본이고, 회사 차원에서 (회장님 특사를 위한) 다양한 루트를 찾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룹 입장에서는 정권 기조와는 무관하게 어떻게든 특사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노무현 정권 시절 법무비서관을 지내면서 사면업무를 맡았던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과거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의원은 2013년 1월 MBN과의 인터뷰에서 “형사재판 절차에서 피고인이 1심에서 받은 것보다 6개월이라도 줄이려고 거액의 변호사 선임료를 내 재판을 오랫동안 한다. 그런데 사면이라는 것은 판결로 모두 확정이 된 사람을 ‘한 큐’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 안에 거대한 지하 시장이 있다. 사면을 준비하는 법무부 행정관리들이나 대통령이 모르는 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오가는 돈이 꽤 있다고 본다. 이런 부작용과 심각한 폐해가 있기 때문에 사면권은 정말로 극도로 자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일요신문>은 사면 과정에 실제로 은밀한 부분이 존재하는지를 취재하기 위해 복수의 여권 핵심부 및 대기업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우선 앞서 언급한 친박 전직 의원은 “박 대통령이 정치인이나 기업인 특사는 없다는 방침을 여러 번 천명했다. 이는 적어도 현 정권에선 로비가 통하지도, 또 그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특사를 안 해주겠다는데 왜 로비를 하겠느냐. 지난 정권 때엔 공공연히 특사를 위한 로비가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선 아예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과거 두 차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사정당국 고위인사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2007년 사면법이 개정되면서 특사는 사면위원회가 심사하고 의결하도록 했다. 대통령은 위원회가 올린 명단을 재가해 최종 확정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청와대 민정라인과 위원회는 수시로 조율을 거친다.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는 하지만 이 작업을 일일이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기업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 틈새다. 특사라는 게 지금은 어려워 보이지만 상황이 바뀌면 단행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 그 때를 대비해 기업들이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 쪽에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대부분 “모른다”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A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특사와 관련된 비화를 들려줬다. A 사 총수 역시 형이 확정돼 특사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임원은 “작년에 특사 분위기가 잠깐 조성된 적이 있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재는 총리 후보자)과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잇달아 기업인 사면의 불을 지폈다. 조심스럽게 여권 기류를 살피던 중 박 대통령 멘토 그룹의 한 원로 정치인과 가깝게 지내는 변호사를 통하면 특사 같은 민원이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서초동 주변에서는 이런 소문이 제법 퍼져 있었다. 그 변호사와 우리 쪽 인사가 직접 만났는데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법조계에서도 몇몇 변호사가 과거 특사 로비에 활용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돈 바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사는 대통령 이외에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이 주도한다. 둘 다 법조인이다. 전관을 쓰는 것처럼 그들과 친한 변호사를 찾는 것이다. 또 아무래도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보니 변호사가 유리하지 않겠느냐. 여권 핵심 인사와 친한 변호사가 특사를 위한 로비에 안성맞춤이라는 말도 파다하다. 정식으로 선임계를 내는 것도 아니니 얼마나 많은 돈이 오갈지 짐작조차 안 간다”라고 설명했다. B 사의 경우 박 대통령 올케인 서향희 씨가 졸업한 고려대학교 법대 출신의 한 변호사를 접촉해 총수의 특사를 타진했다가 거절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B 사 임원은 “그 변호사가 서 씨랑 친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런 부탁을 어떻게 하느냐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또 서 씨는 그런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가 아니라고도 했다”면서 “그만큼 대기업이 특사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줄을 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됐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중견기업의 한 대표는 특사와 관련해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할 뻔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집행유예 기간 해외 출장을 가는 절차가 번거로워 혹시나 해서 특사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다 지난 2013년 5월경 박 대통령 친인척 중 한 명과 ‘호형호제’한다는 40대 초반의 남성을 만났다. 대통령 친인척과 같이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내 앞에서 통화까지 했으니 안 믿을 수 있겠느냐. 내가 특사 얘기를 꺼냈더니 선수금으로 1억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꺼림칙해서 알아보니 그 친인척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더라. 법조 브로커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연락을 끊었다. 특사 명단에 포함시켜준다는 브로커까지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느냐.”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