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늦은 밤에 술에 취한 한 지인으로부터 불쑥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부러워 할 만한 직장에서 부러워할 만한 직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중년의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가지 못하는 그는 누가 봐도 배부른 소리를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누가 이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쉼 없는 인간의 욕구인 것을.
■ 자기결정성 이론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고 통제하며 살아가는 것, 모든 인간이 꿈꾸는 삶이다. 실제로 외부로부터 강제로 부여된 일을 즐거워하며 살아갈 사람은 별로 없다.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교수가 주장하는 자기결정성 이론(Self 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내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별도의 보상이나 승진 등과 같은 외재적 보상이 그리 중요한 요인이 되지 않는다.
반대로 외재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은 금전적 보상을 추구하거나 처벌을 회피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외재적 동기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일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도 사라진다. 따라서, 자발성에 기초한 일은 중간에 어려움이 있어도 끈기 있게 추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성취감 또한 높다. 반면에 마지 못해 하는 일은 ‘의무감’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대충하거나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 또한 높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 불편한 진실
자기결정성 이론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고 심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라는 벽이 가져다 주는 장애물을 결코 지나칠 수는 없다.
첫째, 장애물은 보통 사람들은 자기실현에 대한 욕구의 강도가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데 있다. 현실을 돌아보면, 생리적 욕구(식욕, 수면욕, 성욕)에 급급하며 그것만으로도 자족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 외에도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존경(지위)의 욕구가 충족되면 그것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많다. 어쩌면 일부의 사람들만이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자신의 이상과 꿈을 좇는지도 모르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실현의 욕구란 가끔씩 생각해 보는 사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두 번째, 장애물은 도대체 자기가 원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지 알기가 도통 어렵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훈련되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평생 질리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 한 평생이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다 보면, 가다 보면, 실패하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것이 ‘아, 내가 원하는 것이 이거였구나’ 라고 발견하는 것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데, 처음부터 자기결정성 이론을 들이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현실적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자기결정성 이론에서 말하는 자율성, 유능성, 관계성은 자기실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자율성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했다는 생각이고, 유능성은 내 힘으로 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며, 관계성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지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더욱 동기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인간은 아니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인간은 현실 안주적이고 익숙한 것을 선호하며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더 높은 단계를 추구할 용기가 부족하다. 두려움 때문이다. 자기실현의 욕구가 절실한 사람들조차 ‘언젠가 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겠지요?’ 라는 질문을 던지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하물며 보통사람들에게는 오죽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인가.
그러므로, 자기실현을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용기가 필요하다. 가장 쉽고 낮은 일부터 시작하여 작은 성공을 체험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시골의 작은 상추 밭을 가꾸는 일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따뜻한 밥 한 끼를 짓는 일이다. 조용한 삶을 위해 산 속으로 들어 가는 ‘자연인’으로 변신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태산을 오르는 일처럼 어려워 보이는 동서양 고전을 읽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필(feel)이 오는 일부터, 행동 가능한 것부터 ‘일단 시작’ 해 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주입한 일반적 가치로부터 자신에게로 향하는 첫 걸음이다.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글_최경춘 한국능률협회(KMA) 상임교수
► 리더십교육/ 성과향상 코칭/ 감정코칭 등 다수 경영분야 강의
►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미국 University of Washington(MBA)/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 박사(수료)/ LG 인화원 기획팀장(부장)/ 팬택 아카데미 본부장(상무)/ 엑스퍼트컨설팅 본부장(상무)/ LG CAP,Work-out Facilitator/ Hay Group Leadership Facilitator/ KMA Assessment Center Assessor